닫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청소년지도연구원

대전청소년

2021년 봄호
청소년이 힘들 때
국번없이 1388
24시간 연결됩니다

최치원은 조기 유학생이었다

본문

역사야 놀자
신현배
신현배

최치원은 조기 유학생이었다

최치원은 12세의 어린 나이에 당나라로 건너간 조기 유학생이었다. 그는 당나라의 최고 국립 교육 기관인 국자감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했다. 국자감은 당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능력이 뛰어나다는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학교였다. 이들에게 뒤지지 않으려면 밤낮없이 공부에만 매달려야 했다.
하지만 최치원은 곧 어려움에 부딪쳤다. 낮에는 괜찮은데 밤이 되면 졸음이 쏟아지는 것이었다. 꾸벅꾸벅 졸다가 그대로 잠들어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젠장, 지난밤에도 공부를 전혀 못했네. 난 왜 이렇게 잠을 못 이기지?’
최치원은 졸음이 밀려오면 잠을 쫓으려고 허벅지를 꼬집거나 찬 물에 얼굴을 씻었다. 또한 밖에 나가 찬바람을 쐬고 들어왔다. 그러나 그 때 잠깐 정신을 차릴 뿐, 쏟아지는 잠을 막을 수가 없었다.
“나는 왜 이 모양이지? 잠을 못 이기니 장차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
최치원은 아침에 깨어나면 절망적인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최치원은 당나라 학생들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나는 잠이 많아서 큰일이야. 밤에 공부할 때 어떻게 하면 졸음을 쫓을 수 있지?”
당나라 학생 하나가 말했다.
“내가 시키는 대로 할래? 천장 대들보에 끈을 묶은 뒤, 그 끈의 다른 한쪽 끝으로 머리를 묶는 거야. 그러면 꾸벅꾸벅 졸더라도 머리카락이 뽑히니 금방 깨어나겠지?”
“카아! 기막힌 방법이네!”
“한 가지 방법이 더 있어. 밤송이를 준비하여 졸음이 쏟아질 때 가시로 허벅지를 찌르는 거야. 이 두 가지 방법이라면 졸음을 쫓으며 밤새 공부할 수 있겠지?”
“정말 그렇네. 좋은 방법을 알려 줘서 고마워.”
최치원은 매우 기뻐하며 당나라 학생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이때 당나라 학생은 다른 학생들에게 눈을 찡긋했다.
‘후후, 자기를 골려 주려고 엉뚱한 방법을 일러 줬는데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네.’
‘그러게 말이야. 곰탱이처럼 미련한 녀석이야.’
당나라 학생들은 눈짓으로 이런 뜻의 말을 주고받았다. 그날 밤 최치원은 끈을 구해 와 천장 대들보에 묶었다. 그러고는 그 끈의 다른 한쪽 끝으로 머리를 묶었다. 최치원의 책상 위에는 밤송이도 놓여 있었다.
‘이제 됐다. 졸음을 쫓으며 밤새 공부할 수 있겠지?’
최치원이 예상한 대로였다. 꾸벅꾸벅 졸더라도 머리카락이 뽑히니 금방 깨어났고, 밤송이 가시로 허벅지를 찌르니 잠들지 않고 공부에만 열중할 수 있었다.
최치원은 뒷날 이 시절을 떠올리며 자신의 저서인 『계원필경』 서문에 이런 기록을 남겼다.
‘나는 당나라에서 공부할 때 졸음을 쫓으려고 머리끝을 천장에 묶고 밤송이 가시로 허벅지를 찔렀다. 또한 남들이 책을 백 번 보면 나는 천 번 보았다.’
최치원은 이처럼 피나는 노력을 한 끝에 874년 당나라의 과거 시험에서 장원 급제를 했다. 그의 나이 18세, 유학을 온 지 겨우 6년 만이었다.
신라가 당나라에 최치원 같은 유학생을 보낸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처음으로 당나라에 유학생을 보낸 것은 640년(선덕왕 9년)이었다. 당나라 태종은 국자감 건물을 1200칸으로 늘려 학생들을 받아들였다. 그 뒤 신라 유학생의 수는 점점 늘어나 837년(희강왕 2년)에는 216명이나 되었다. 유학생은 유학 비용을 스스로 마련하는 사비 유학생과 나라에서 유학 비용을 대주는 국비 유학생이 있었다. 국비 유학생은 신라와 당나라에서 학비와 체류 비용을 지원받았다. 유학 기간은 10년으로, 국자감에 입학하여 학업에 힘을 쏟았다.
국자감의 외국 유학생은 신라ㆍ고구려ㆍ백제ㆍ투르판ㆍ고창ㆍ토번 등지에서 온 학생들이었다. 고구려ㆍ백제가 멸망당한 뒤에는 발해에서도 유학생을 보냈는데, 외국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신라 유학생과 발해 유학생이 경쟁 관계에 있었다. 당나라의 과거 시험에는 외국인들을 위한 ‘빈공과’가 있었는데, 신라 유학생과 발해 유학생이 장원 자리를 놓고 다퉜다. 최치원은 빈공과에서 장원 급제를 하고는 “전해에 신라 유학생이 발해 유학생에게 장원 자리를 빼앗긴 수치를 씻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고려 때 사람인 최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빈공과에서 급제한 신라 유학생이 모두 58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유학생이 과거에 급제한다고 해서 당나라 관리로 모두 임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최치원처럼 실력이 뛰어나야 당나라 관리로 뽑혔다. 과거 시험도 경쟁이 치열하여 급제하는 사람은 극소수였고, 대부분 국자감 수업을 마치면 신라로 돌아갔다. 하지만 급제하는 사람은 물론 급제하지 못한 사람도 신라 조정에서 유학 경력을 인정받아 관리로 임용되는 등 우대를 받았다고 한다

기고자 소개

신현배
시인, 역사 칼럼니스트
1986년 조선일보, 199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1983년 창주문학상, 2012년 소천문학상 수상
저서 :
<엉뚱 별난 한국사>, <엉뚱 별난 세계사>, <2000년 서울 이야기>,
<세계사로 배우는 법 이야기> 등과 <매미가 벗어 놓은 여름>, <햇빛 잘잘 끓는 날> 등이 있다.
맨위로 이동 맨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