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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들의 피와 눈물로 건설된 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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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야 놀자
신현배
신현배

조선인들의 피와 눈물로
건설된 철도

일제는 미국인 모스가 갖고 있던 경인 철도 부설권을 넘겨받아 경인선 철도를 놓았다. 그리고 경부선ㆍ경의선 등 모든 철도 부설권을 얻어 철도 건설에 나섰다. 일제는 경부선ㆍ경의선을 놓으면서 1,933만 평에 이르는 철도 용지를 시가의 10분의 1에서 20분의 1에 이르는 헐값에 사들이거나 거저 빼앗아갔다. 강제 동원한 철도 노동자도 연인원 1억 5천만 명에 이르렀다.
일제는 경부선을 놓을 때 철도 노동자들에게 품삯 대신 500냥짜리 군표를 주었다. 철도가 완성되면 현금으로 지급하겠다며 어음을 준 것이다. 하지만 일제는 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군표를 받은 조선인들은 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일제는 이런 착취와 약탈에 힘입어 세계에서 가장 싼 값으로 철도를 건설할 수 있었다. 당시 경부선ㆍ경의선 1마일(약 1.6킬로미터) 평균 건설비가 각각 10만 6천 원, 6만 2천여 원이었다. 세계 철도 평균 건설비가 1마일에 16만 원이었으니 세계 철도사에 유례가 없는 헐값이었다.
철도는 조선인들의 땀과 피와 눈물로 건설된 것이었다. 일본군은 강제 동원한 조선인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죽어라 일만 시켰다. 건설 현장에서 죽어 나가는 철도 노동자들이 수없이 많았다.
1907년 헤이그 만국 평화 회의에 나갔던 이상설은 세계 언론에 경의선 철도 공사의 잔학성을 고발하기도 했다. 그에 따르면, 건설 현장에는 농민들과 부녀자들은 물론, 어린이들까지 아무런 보수 없이 노동자로 동원했다고 한다. 일본군은 일을 시키며 걸핏하면 채찍을 휘둘렀고, 철로 위에서 몽둥이를 갖고 놀았다는 죄로 일곱 살 어린이를 총살시킨 적도 있었다.
일본군이 농민들을 강제로 건설 현장으로 끌어가고 식량과 가축을 마구 빼앗아가, 철도가 지나는 곳마다 일본에 대한 원성이 높았다. 얼마나 착취를 당했는지 《대한매일신보》 1906년 5월 15일자에는 “철도가 통과하는 지역은 온전한 땅이 없고 기력이 남아 있는 사람이 없으며, 열 집에 아홉 집은 텅 비었고, 천 리 길에 닭과 돼지가 멸종하였다.”고 밝힐 정도였다. 조선 사람들에게 철도는 일제 침략의 상징이 되고, 기차는 고통과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하여 조선의 의병들은 수시로 기차와 정거장을 공격하거나 철로를 끊기도 했다.
기차가 개통되자 이 신기한 개화 문물을 보려고 사방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역이나 기찻길 옆에는 구경꾼들로 가득했다.
1905년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었을 때의 일이다. 스웨덴 기자 아손은 러일전쟁을 취재하려고 우리나라에 왔다가 경부선 철도의 첫 승객이 되었다. 그는 그 때 역 주변으로 기차를 구경하러 나온 사람들을 보고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8시였다. 5분 후에는 기차가 출발할 예정이었다. 기차에는 열 개의 작은 객차가 달려 있고, 각 칸에는 전차에서처럼 옆으로 긴 의자가 놓여 있으며, 가운데에는 난로가 있었다. 새 철로를 개통하는 민간용 열차여서 기관차는 조화와 일장기로 치장되어 있었다.
역 주변에는 구경하러 나온 조선인들로 온통 흰색 물결을 이루었는데 대부분 어른들이었다. ……겁에 질린 눈들은 기관차를 살피면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이 처음 역에 나와 보았으며 기관차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들은 기관차의 원리에 대해 조금도 아는 바가 없었기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대단히 망설이는 눈치였다. 이 마술차를 가까이에서 관찰하기 위해 접근할 때는 무리를 지어 행동했다. 여차하면 도망칠 자세를 취하면서 서로 밀고 당기고 했다. 그들 가운데 가장 용감한 사나이가 큰 바퀴에 손가락을 대자 주위 사람들이 감탄사를 터뜨리면서 그를 우러러보았다.
그러나 기관사가 장난삼아 환기통으로 연기를 뿜어내자, 혼비백산하여 달아나느라 대소동이 일어났다. 이 무리들은 우왕좌왕하는 한 떼의 우둔한 양들을 연상케 했다. 그들은 ‘위험한 짓이야. 천만금을 준다 해도 다시는 이런 짓 안 해. 도깨비가 장난치는 거야. 요란한 숨소리를 내뿜는 이 괴물은 악령이 붙었어.’라고 생각하는 듯 보였다.
나는 객실 창가에 서서 이 소동을 지켜보았다. 참으로 흥미진진했다. 가장 웃음이 나오는 것은 키가 난쟁이처럼 조그마한 일본인 역원들이 얼마나 인정사정없이 잔인하게 조선인들을 다루는가를 지켜보는 것이었다. 그들이 그런 대접을 받는 것은 정말 굴욕적이었다. 그들은 일본인만 보면 두려워서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갔다.
기차가 개통되면서 역에서는 종종 진풍경이 벌어졌다. 그 때는 기차 삯이 경인선의 경우, 외국인만 이용하는 1등 실이 1원 50전, 내국인만 타는 2등 실이 80전, 3등 실이 40전이었다. 기차 승객의 80퍼센트가 한국인이고, 그 가운데 80퍼센트가 3등 실 승객이었다. 당시에 40전이면 닭 두 마리, 80전이면 달걀 100개를 살 수 있었으니 싼 값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때 사람들은 기차 삯을 엽전으로 냈다. 한 닢 두 닢 헤아리는 사이 기차가 떠나 버려, 손을 흔들며 기차를 쫓아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역에 와서 가마를 탄 채 플랫폼까지 들어가겠다고 우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철로에 누워 낮잠을 자는 사람도 있었다. 또, 기차가 얼마나 힘이 센지 시험해 보겠다며 바위를 철로 위에 놓고 가는 사람까지 있었다. 어이없는 것은, 철도를 미신의 숭배 대상으로 삼아 기차에게 절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계룡산에서 도를 닦는 도사들이었는데, 기차가 한 시간에 백 리를 달린다는 소문을 듣고 철로로 달려왔다. 기차로부터 먼 거리를 단숨에 가는 축지법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도사들은 신통력을 얻으려고 기차를 숭배 대상으로 삼았다. 그래서 철로에 엎드려 기차를 향해 끊임없이 절을 했다. 경부선을 달리는 기차 기관사들은 이런 사람들 때문에 하루에도 세 번 이상 급정거를 해야 했다. 기차는 그렇게 신기한 개화 문물로 사람들 앞에 나타났지만, 10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국민들의 발이 되어 주고 있다

기고자 소개

신현배
시인, 역사 칼럼니스트
1986년 조선일보, 199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1983년 창주문학상, 2012년 소천문학상 수상
저서 :
<엉뚱 별난 한국사>, <엉뚱 별난 세계사>, <2000년 서울 이야기>, <세계사로 배우는 법 이야기> 외 다수
시집 :
<매미가 벗어 놓은 여름>, <햇빛 잘잘 끓는 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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