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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지도연구원

대전청소년

2021년 여름호
청소년이 힘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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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 不和

본문

함께 사는 세상
방희섭
방희섭

불화 不和

가끔은 정말 내가 몸만 나이가 들어가는 소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세상은 무얼까? 나는 또 누굴까? 즐거운 사람들, 그렇지 못한 사람들. 내가 마주한 세상은 여전히 눈부시고 소란스럽고 그래서 나는 한낮이면 나른해지고 졸리고.
벌써 십여 년 전 고등학교 다니던 때, 수업 시간 내내 졸다가 세상이 잠들어가는 밤이나 새벽이 되어서야 또롱또롱 깨어나던 그때 그 청소년 시기의 습관이 지금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다. 아니, 그 야행성을 지키려고 음악과 영화, 또 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여태껏 소위 예술 나부랭이로 살아온 것 아닌지 싶다.
어느 때는 음악을 사랑한다며, 어느 때는 영화 학도가 되겠다며 당시 다니던 인문계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에게 편지를 써 입시 위주의 교육에 대한 거부를 선언하며 조금의 문제를 일으켰는데, 나는 수능을 보지 않고 실기 100%로 입시 전형을 하는 예술 계통 대학 진학을 실제 목표로 정하고 있었다. 인문계였기 때문인지 나는 담임선생님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야유 섞인 볼멘소리를 늘 들어야 했고, 결국 일방적인 통보 수준의 편지글을 통해 담임으로부터 나를 포기하도록 만들어 버리고 만 것이다.
그 시기 많은 두려움이 따랐지만, 나를 붙잡고 가는 것은 순전히 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나는 나의 선택에 눈을 질끈 감고 그저 밀어붙일 수밖에는 없었다.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평범하지 않음’에 늘 지지를 못 받던 터라 나는 그때부터 나 자신만을 따르는 고집쟁이가 되기로 했다. 지금도 고집쟁이 아닌가 싶다. 누가 내 인생을 대신 살아 줄 것도 아니니 자기 선택에 대한 그 고집은 스스로를 책임지는 자세로써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한번은 그런 일이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던가, 영화과 입시를 준비하던 학생으로서 그해 부산에서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에 토,일 1박 2일 연이어 참여하고 싶어 담임 선생님에게 토요일 하루 수업에 못 나올 것 같다고 얘기했다가 결국 얻어맞았다. 그냥 토요일 아침에 전화를 걸어 몸이 아프다고 하고 병결 처리로 학교 수업에 하루 빠질 수도 있었는데, 순진했던 건지 나는 너무도 솔직하게 내 계획과 의사를 전했고, 당시 반의 시험 성적이 좋지 않아 심기가 불편했을지도 모를 선생님을 그래서 그토록 화나게 만들었나 보다.
나는 교무실에서 아주 시원하게 뺨을 한 대 얻어맞고 쫓겨났다. 담임은 그런 일로 학교 수업에 빠지는 것을 허락해 주지 않았고, 만약 빠진다면 무단결석처리를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나는 맞은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채 어안이 벙벙해서 학교에서 나오는데 뺨을 맞은 그 강도가 눈가의 실핏줄이 터질 만큼이어서 처음은 매우 당혹해했던 것 같다.
나는 고민 끝에 예고대로 토요일 일찍 나 살던 울산에서 부산으로 출발하여 토요일 하루 학교에 빠지고 일요일 밤 귀가하였다. 영화제에 참여하는 주말 내내 나는 한편 담임과의 마찰 문제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때 나보다 나이가 열 살은 많은 벗들, 영화를 좋아하는 내 지인들과 함께였고 혼자서 고민한 것은 아니었다.
뺨을 맞은 나로서 담임에게 감정이 상한 것이야 어쩔 수 없었는데 나는 동행한 지인들과의 이야기하며 덕분에 화를 좀 가라앉히고 그때의 나의 마음부터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담임선생님에게 이미 수능 거부를 선언했던 터라 얘기가 통할 줄로 알았다. 그렇게 솔직 당당하게 학교에 빠지겠다고 얘기한 것이 어쩌면 내가 담임에게 지지받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불만 섞인 반항이 아니었을지, 그렇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행동과 표현이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냥 잔꾀를 부릴 걸 그랬다며 지인들에게 억지로 웃어보였지만, 아무래도 좀 우둔하게 그리고 너무 눈치 없이 선생님에게 말을 내뱉은 게 아닌가 싶었다. 고3 담임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이다. 그것도 시험 평균 성적이 전체에서 거의 최하위였던 반을 맡고 있는 담임의 입장에서 말이다.
맞은 사람이나 때린 사람이나 마음이 좋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라서 더욱 그럴 것이다. 담임선생님 역시 주말 내내 마음이 불편했을지 모른다. 연락 없이 토요일 출석하지 않은 나의 빈자리를 보면서도, 어쩌면 당신의 손을 가만 펼쳐 보면서도.
나는 월요일 아침, 별 일 없었다는 듯 다시 학교로 갔다. 담임선생님의 아침 조회 시간이 끝나고 내가 먼저 담임을 찾아갔다. 나는 지난 일에 대해 사과하고 또 사과 받길 원했다. 그래선지 그때의 나의 태도는 물러섬 없이 당당한 쪽이었다. 그러면서도 선생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니 손찌검을 하실 만했다고, 제가 예의 없고 경솔하게 굴어 죄송하다고 사과를 드렸다. 그러나 뺨을 맞을 때 그 체벌이 너무 감정적이라 느껴졌고 때린 일에 대해서는 사과를 받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곧장 때린 것은 미안하다며 사과하셨고, 나의 반성과 사과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말씀하셨다. 하지만 무단결석 처리는 불가피하다고 못 박았다.
먼저 사과를 하고 또 사과를 받으며 그렇게 사건이 정리가 되었다. 한편 마음이 후련했다. 고등학교 졸업식 때까지 담임선생님과 조금 서먹하지 않았나 싶기도 한데 마지막에 가서는 선생님께 내가 걷고자 하는 길에 대해 짧은 응원의 말을 들었던 것도 같다.
나는 이 일 이후로 누군가의 의사소통에서 상대방의 어떤 처지나 입장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게 되는 것 같다. 삶의 지혜라고도 볼 수 있겠다. 나처럼 자신에 대해 고집스러운 사람이 상대방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본다는 게 그리 쉽지는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고3 그때, 우리 반 담임선생님께 참 감사하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니 내심 꼭 그렇게 지지를 받고 싶었을까? 가까운 친구들에겐 곧잘 지지를 받곤 했지만 어른들에게는 거의 그러질 못했는데, 응원과 격려를 받고 싶은 그 마음이 왜 그리 부질없고 철부지처럼 어리게만 느껴지는지, 그리고 한편 그 마음이 지금도 여전하지 않은지 생각해 본다.
그래서 가끔은 정말 내가 나이만 들어가는 소년에 머물러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본다. 웃으며 생각해 본다

기고자 소개

방희섭(方希涉)

아동문학가

대학에서 영화제작, 문예창작 전공

2012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문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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