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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으로 간직된 몽골의 게르(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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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세상
박선희
박선희

추억으로 간직된 몽골의 게르(Ger)

다시 여름이 찾아왔다.
연일 이어지는 폭염에 코로나로 더욱 답답한 날들을 보내고 있자니, 3년 전 여름 세 자매가 함께 시원한 몽골로 여행을 갔던 생각이 난다.
여름 여행이라면 시원한 곳을 찾는 것이 인간의 본능, 그래서 택한 곳이 몽골이었다.
몽골은 고원에 위치하고 있어 겨울이 길고 무척 추운 나라이다. 5월에서 9월까지는 날씨가 좋아 하늘이 무척 높고 청명하다. 몽골에도 한국 카페브랜드인 '탐앤탐스'가 이미 들어와 있고 최근엔 이마트가 칭기즈칸 호텔 옆에 위치하여 필요한 것들을 모두 구입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 세 자매 일행은 인천국제공항을 오후 1시 출발하여 비행 4시간 만에 울란바토르 공항에 도착하니 마치 에어컨을 켜놓은 것처럼 드넓은 초원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일단 이 무더운 여름에 시원한 곳으로 온 것만으로도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는 넓은 초원 위에 지어진 도시 같았다. 한눈에 도시 전체가 들어온다. 무엇보다 상쾌하고 시원한 공기가 기분을 좋게 한다.
길을 지나다니는 몽골 사람들을 보니 칭기즈칸의 후예답게 기골이 장대하다. 무사다운 몸집과 표정, 여성들까지도 키가 크고 뼈대가 굵어 힘이 세고 튼튼해 보였다.
사실 우리나라와 몽골과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보면 그다지 우호적이지 못하다.
고려 시대에 끊임없이 몽고의 침입을 받아 우리나라는 엄청난 피해를 입기도 했다. 그러나 1990년에 국교가 맺어지면서 경제적 교류가 활발해지고 최근에서야 서로의 발전을 위해 협조하고 있다.
풍부한 자원과 넓은 땅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인구는 3백만 명 밖에 안 되는 아직 개발도상 국가인 몽골은 우리나라에 무한한 기회의 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를 타고 끝없는 초원을 달려 모래사막 '비얀고비'로 향했다.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초원이 제일 인상적이다. 마치 융단을 깔아 놓은 것처럼 부드럽고 아름답다. 능선이 완만한 산들도 나타나고 소와 말, 그리고 양과 염소 등이 무리 지어 자유로이 풀을 뜯는다. 가끔가다 소 떼나, 양 떼들이 길을 건너느라 차들이 한동안 기다려 주기도 한다. 맑고 파아란 하늘, 그리고 시원한 공기가 더없이 청명하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온 듯하다.
'비얀고비'의 모래언덕을 오르고 사막에서 부는 바람을 맞으며 우리 세 자매는 게르 마을에 도착하였다.
'게르'는 몽골의 유목민들이 옮겨 다니며 살기 좋게 지은 천막집이다. 보통 지붕 위에 양털을 씌워놓아 보온이 되고 안에는 난로가 있다. 우리가 묵을 방엔 침대 세 개가 벽 쪽으로 둘러 가며 놓여있었다.
여름인데도 밤에는 춥기 때문에 장작 난로를 피워준다. 심하지는 않아도 양털 때문인지 비릿한 냄새가 난다. 디지털 노마드 시대에 진정한 노마드의 진수를 보는 것 같았다.
첫날, 날이 어두워지자 갑자기 일기예보에 없던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사막에서 별 보기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몽골의 밤하늘에서 쏟아지는 별을 보고 싶었는데, 정말 별 볼 일 없는 날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별 걱정은 사치였다. 지붕 위로 엄청난 양의 비를 쏟아붓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크게 들리는지 낭만은 어디 가고 무섭기까지 하다. 옆에서 말하는 소리도 안 들릴 지경이다. 소나기가 마구 퍼붓는 것 이상으로 지붕을 뚫을 듯 빗소리가 요란하였다. 더구나 벽으로 비가 새어서 방바닥이 물로 흥건하다. 각 '게르'는 뚝뚝 떨어져 있어 어찌 보면 고립된 느낌이고, 게다가 밤 11시부터는 정전이 되는 시간이다. 비 때문에 '게르' 안의 냄새는 더욱 역겨워졌다.
겨우 핸드폰으로 연락을 하여 관리인이 와서 바닥의 물을 퍼낸다. 그때 연두색 작은 개구리 한 마리가 폴짝 '게르'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개구리도 쏟아지는 비를 피해 들어온 모양이었다. 주인아주머니가 들어오더니 '게르'를 옮겨 주겠다고 하여 우산을 뒤집어쓰고 짐을 다시 챙겨 이사를 했다.
새로 옮긴 '게르'에도 이미 개구리가 들어와 있다. 비를 피해 살려고 들어온 개구리를 쫓아낼 수는 없었다.
엄청난 폭우가 밤사이 쏟아졌다.
여행 처음부터 고생을 하니 동생들이 실망할까 봐 걱정이 되었으나 고생해야 기억에 남는다며 다들 웃으며 넘어가 주니 고맙고 흐뭇하였다.
다음 날은 언제 그랬냐는 듯 활짝 개었다. 너무나 청명한 공기, 깨끗한 초원, 융단이 펼쳐진 듯 끝없는 초원은 마음을 탁 트이게 만들었다.
이날은 산으로 둘러싸인 ’테를지 초원‘으로 갔다. 이곳에서 놀라운 장면이 펼쳐졌다. 저녁 무렵이 되자 주인 없는 스무 마리 정도의 소 떼가 몰려와 우리 게르 바로 앞에 와서 풀을 뜯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가까이 소를 보기는 처음이다. 풀 뜯는 소리가 ‘쭉! 쭉 !쭉!‘하고 들린다. 마치 사람이 손으로 풀포기를 세게 뜯는 것 같다. 한 곳에서만 뜯는 게 아니라 자기들끼리 약속한 길이 있는지 풀을 뜯으며 함께 옮겨간다. 자유로운 가운데 그들만의 룰이 있는 모양이다. 익숙한 그들의 모습이 신기하다.
이날 밤 묵은 ’게르‘는 아주 깨끗하고 24시간 온수도 나오고 전기도 들어왔다. 난로를 피웠는데도 밤새 추위에 떨며 잤다. 한창 폭염인 이때 추위에 떤다는 자체가 신기하고 고맙기까지 하다. 새벽에 깨어나서 보니 이번엔 말 떼다. ’게르‘ 주위에 말들이 단체로 와서 자유롭게 풀을 뜯으며 점점 산으로 이동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이런 풍경이 정말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사람과 동물이 함께 어울려 사는 모습을 보니 나도 자연의 한 부분임을 다시 깨닫게 된다.
해가 떠오르자 얇은 패딩을 입고 산책을 나갔다. 게르 뒤에 있는 언덕을 한참 올라 능선에 도착하니 발밑으로 저 멀리 끝도 없이 펼쳐진 초원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이게 바로 광야라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목민이 말 달리던 그 광야... 가슴이 탁 트이는 시원함과 함께 아름다운 그림 속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태곳적부터 그대로 이 모습을 지키고 있었을 대자연을 보는 것은 정말 감동 그 자체다.
캐나다 밴프에 가서 로키산을 바라보았을 때 느꼈던 감동이 다시 밀려왔다. 랍슨봉 아래에서 느꼈던 자연의 위대하고 장엄함,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이 작은 인간이라는 한계에 대한 숙연함, 역사 이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지났을 것이고, 사라졌을 것이고, 이제 지금 나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던 그때의 감동이 되살아났다.
’코로나19‘로 발이 묶인 이때 자유롭게 다니던 그 시간이 그립다.
추억으로 남아 있던 그해 여름을 떠올리며 잠시나마 행복한 시간에 젖는다

기고자 소개

박선희

수필가, 투데이플러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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