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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지도연구원

대전청소년

2021년 가을호
청소년이 힘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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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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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세상
김영희
김영희

한 아이

봉사활동 신청을 하였더니 ‘청소년 문화의 집’ 방과 후 아카데미 강사 자리에 연결이 되었다. 내가 맡은 독서 수업은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책을 읽고 생각과 느낌을 자유롭게 표현해 보는 시간이었다. 주제를 찾고 토론한 내용을 바탕으로 독서그림을 그리거나 감상문을 쓰는 일도 포함되어 있었다.
‘문화의 집’ 선생님들은 담임을 정해 아이들의 개개인에게 신경을 썼다. 아이들이 아파서 병원에 다녀오면 식사 후 약을 챙겨 먹였다. 아이들이 규칙에 벗어난 행동을 하면 주의를 주며, 잘 한 행동은 칭찬과 격려로 사기를 북돋워 주었다. 한 달에 한 번 주말에는 아이들과 현장학습을 통해 유대감을 돈독히 하는 기회를 마련했다.
또한,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면 공부의 미진한 부분을 보충할 수 있도록 과목별 수업을 하고 저녁을 제공했다. 정서적으로 메마르지 않게 그림, 만들기, 악기, 식물 기르기 등 다양한 체험 기회도 마련했다. 아이들에게 구체적인 경험을 통하여 감성을 기르고 학습 효과도 높이는 일석이조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과는 일주일에 한 번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학생 중에 까무잡잡한 피부에 갸름한 얼굴을 한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가정환경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였다. 해맑아야 할 눈동자는 근심으로 어둡게 느껴져 아이의 속을 가늠하기 힘들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산만하고 분주했다. 차갑고 모난 돌에 부딪치고 다칠까 봐 친구들도 가까이하기를 꺼려했다. 아이의 행동은 선생님들의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아이의 행동은 내면의 상처 때문인 것 같았다. 부모가 헤어지고 각기 다른 사람과 재혼하여 가족들은 하루아침에 뿔뿔이 흩어졌다. 아이는 큰집에 맡겨졌다. 몇 달간 큰아버지 집에서 학교에 다녔지만 그곳 형편도 여의치 않아 할머니 집으로 옮겼다. 여기저기 떠돌며 눈칫밥을 먹은 아이는 내면의 불안 증세를 행동으로 표출하는 것이었다. 부모를 생각하며 눈물을 훔쳤을 아이가 측은했다.
하루는 지나가는 아이를 불러 친근하게 안아주었더니 체취를 맡는지 코를 킁킁거렸다. 하지만 잠시 안기는가 싶더니 감싸 안은 팔을 거세게 밀쳐냈다. 거부의 몸짓인지 주먹을 꽉 쥐더니 누구도 믿지 않겠다는 듯 눈을 노려보며 씩씩거렸다. 왜 자신의 몸을 만지느냐고 했다. 순간 당황했지만 아이의 행동에 무관심한 척 한 번 더 안아주었더니 작은 체구의 아이는 팔 밑으로 쏙 빠져나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달아나버렸다. 아이는 날을 세우고 스스로를 방어하고 있었다.
엄마는 다른 곳으로 떠나고, 아빠도 외지를 떠돌다 잠깐 얼굴을 보는 것뿐이니 아이 곁에는 늘 할머니뿐이었다. 얼굴에 비친 검은 그림자가 아이의 마음인 듯 보여 가슴이 무지근했다.
아이는 철없는 개구쟁이처럼 천방지축이지만 가끔은 속 깊은 행동을 보였다. 한번은 동시를 읽으며 ‘어머니’라는 단어에 갑자기 읽기를 멈추었다. 가슴이 먹먹한지 입술을 깨물더니 스타카토로 한자 한자 끊어서 읽었다. 눈에 힘을 주며 슬픔을 애써 참는 것 같았다.
아이는 가족의 소중함을 일찍 깨친 탓에 어린 동생을 끔찍이 챙겼다. 동생이 학교 준비물을 빠트릴까 봐 알림장을 확인하고 숙제와 가방도 챙기며 부모가 해야 할 일을 대신했다. 형제애가 돈독해 동생은 형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의지했다. 거친 세상에 휘둘려 제 속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마음은 분명 따뜻하고 주변을 잘 관리하는 아이였다.
아이는 평소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처음에는 색감이 어둡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언제부턴가 차츰 밝은 색으로 사물을 표현했다. 열심히 밑그림에 색칠을 반복하더니 사생 대회에서 상을 타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 아이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지나갔다. 더딘 변화가 시작되었다. 지속적인 애정과 온정 덕분이었다. 산만한 행동에 조금씩 변화를 보이더니 학업 성적도 올랐다며 기뻐했다. 선생님은 그림이 변화되는 과정을 게시판에 걸어두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이는 모둠 북 시간에 땀이 흠뻑 젖도록 혼신의 힘을 다해 집중했다. 머지않아 있을 발표회를 준비하며 아이는 북채를 휘두르며 신명 나게 큰 북을 두드렸다. 땀을 훔치는 아이의 입에 굳은 의지가 보였다. 그런 아이를 보는 내 코끝이 매워졌다.
자신감이 생긴 아이는 차츰 표정에 생기가 살아난다. 큰 북을 두드리며 세상을 향해 내디디는 발걸음에 당찬 기운이 느껴진다. 부디 꺾이지 않고 튼튼한 나무로 자리기를 바라는 미음이 간절해진다

기고자 소개

김영희

수필가, 《수필세계》 신인상 등단

대구일보 전국수필대전 입상

수필집 『오래된 별빛』(2017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수혜)

수필세계작가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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