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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지도연구원

대전청소년

2020년 가을호
청소년이 힘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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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킹

본문

함께 사는 세상
강승택
설성제

버스킹

공원 광장에서 한 청년이 버스킹(busking)을 하고 있다. 관객이래야 전날까지 있었던 축제를 잊지 못해 나온 듯한 몇몇 사람이 고작이다. 허스키한 음색에 바이브레이션이 섞인 버스커(busker)의 낮은 목소리가 축제 다음날의 쓸쓸함을 메우고 있다.
이 공원에서는 시에서 허락한 큰 축제가 열릴 뿐만 아니라 소소한 단체들이나 개인이 날을 잡아 그들의 재능을 마음껏 펼쳐 보이는 공연이 자주 열린다. 시낭송, 국악, 가요제, 댄스, 미술전시회 등을 보며 각각 타고난 달란트가 참으로 경이롭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각자의 재능을 갈고 닦느라 분명 눈물겨운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슬픈 발산도 종종 보게 된다.
어둠을 등지고 서서 노을을 향하여 불어 올리는 트럼펫소리, 갈대숲가에 펼쳐놓은 화폭 위로 붓 잡이의 손끝에서 살아나는 색채, 아침 햇살이 강물 위로 내리꽂힐 때 피어나는 눈부신 발광을 볼 때 사람이든 자연이든 그 재능이 아름다우면서도 서러워 보이기도 한다. 누군가는 아직 재능을 찾지 못했다며 부러워할 수도 있지만, 또 누군가는 주체할 수 없어 쏟아낼 수밖에 없는 그 끼가 힘겹기도 하다는 것을. 그것이 발산이든 발광이든 뿜어내야만 살아있음을 느낀다. 반딧불이가 어두워져서야 불을 달고 춤을 추듯 이들의 속도 어두워질 대로 어두워졌거나 깊어질 대로 깊어졌을 때 불꽃이 새어나오는 것일까.
공원에 어둠이 짙어져간다. 청년은 관객이 없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절절히 노래를 울려낸다. 기타 줄을 오르내리는 그의 손가락들이 점점 어둠 속에 희미해져 가는데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져 내린다. 남아있던 몇몇 관객들마저 서둘러 돌아간다. 이제 스무 살이 조금 넘어 보이는 대학생이거나 빠르면 직장 초년생 같아 보이는 그가 하루의 남은 시간까지 부여잡으며 자신의 꿈을 쫓아가는 중일까. 그렇다 해도 축제가 끝난 뒷날의 쓸쓸한 공연에 나는 그만 가슴이 저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행여 돌아가지 않고 있는 나 때문에 그가 노래를 멈추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멋쩍은 관객이 된 것만 같다. 발걸음을 돌리는 척하며 축제 때 쳐놓은 천막 속으로 몸을 감춘다. 아무도 바라봐주는 이 없는데도 멈추지 않는 그의 행복을 벌어진 천막 귀퉁이를 통해 관람한다. 비는 사선을 긋기 시작한다. 끝날 것 같지 않던 노래도 드디어 막을 내리려는가 싶더니 그가 텅 빈 광장을 향해 멘트를 날린다.
“이제 마지막 곡을 들려드릴 차례입니다.”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다시 기타 줄을 쓰다듬는다. 조명도 없는 무대에서 그를 오도카니 덮은 어둠이 그의 애끓는 가슴을 더욱 열어젖히는 것만 같다. 드러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열정을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는 외로움과 슬픔이 천막의 벌어진 귀퉁이 사이로 흘러와 내 눈시울을 붉게 물들인다. 마지막 곡 전주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버스킹을 끝내고 싶어 하지 않는 그의 마음 같다. 박자마저 느리디 느리다. 그도, 기타도, 앰프도, 천막도, 천막 속의 나도 어둠 속에서 한 덩이가 되어간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노래가 시작된다. 두어 소절 쯤 부르는가 싶더니 그가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다. 무슨 일일까. 빗속에서 아직 피지 못한 한 송이 꽃인 양. 노래는 끝이 나고 그가 텅 빈 광장을 바라보며 말을 한다.
“여러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순간, 고개를 숙였다 드는 그의 눈 속에 은하수가 흐른다. 나는 박수를 치며 달려 나가고 싶다. 그가 광장을 벗어날 때까지 박수를 끝내고 싶지 않다. 그토록 슬퍼보였던 조금 전의 마음은 단지 내 감정이었던 것일까. 어쩌면 청년은 내가 바라보는 것과는 달리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을 밟느라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타를 업고 앰프를 안은 채 가뿐하게 걸어가는 그를 보며 내 가슴에도 꽁지에 불을 밝힌 반딧불이거나 불 속을 향하여 몸을 던지는 나방이거나 하는 것이 날개를 펼치며 날아오른다

기고자 소개

설성제

《예술세계》 신인상 등단

한국에세이포럼, 에세이울산 회원

작품집 『바람의 발자국』, 『압화』, 『소만에 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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