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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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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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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세상
한복용
한복용

거울 앞에서

나는 누구인가. 가끔 거울을 보며 묻곤 한다.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지금 보이는 거울 속의 나는 어디쯤에 머물러 있는 나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남들은 나를 보고 까다롭게 생겼다고 한다. 어떻게 생기면 까다롭다고 하는 걸까. 처음 만난 사람이거나 나를 충분히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하는 말이니 성격보다는 외모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거울 앞으로 가 화장기 없는 얼굴을 디밀어본다. 흠칫, 놀란다. ‘이런 얼굴을 두고 까다로운 얼굴이라 하는 거로구나.’ 속으로 중얼거린다.
나는 피부색이 검은 편이다. 겹이 지지 않은 눈은 가로로 쭉 찢어지고 십 년 전 사고로 다친 코는 등에 아직 흉터가 남았다. 광대뼈가 도드라진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작고 얇은 입술은 앙다물어 고집스러워 보인다. 이마는 넓고 눈썹은 짙다. 눈빛은 총기를 잃어 꿈속을 헤매는 듯 흐릿하다. 인중은 넓은데 입술 위 오른쪽에 얼핏 보면 수술자국 같은 흉터가 세로로 나 있어 느낌이 좋지 않다.
하지만 사람들은 내 민낯을 보고 까다롭다고 하는 게 아니다. 외출할 때 나는 거의 화장을 하기 때문이다. 쌍꺼풀 없는 밋밋한 눈을 돋보이게 하고 싶어 아이라인을 넓고 진하게 칠한다. 섀도 색에도 신경을 써 이목구비가 또렷해 보이도록 나만의 화장법을 발휘한다. 메이크업 전문가 과정을 거쳤기에 화장술에 있어서는 뒤처지지 않는다. 화장한 얼굴은 내 보기엔 예쁘진 않아도 그리 인상이 나빠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럼 말투일까? 중저음 목소리로 발음은 정확한 편에 속한다. 속도가 빠르고 억양이 강하다. 어떤 사람은 경상도가 고향이냐고 하고 어떤 사람은 강원도인 줄 안다. 충청도 사람은 나처럼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향 말을 쓰면 그때서야 웃으면서 끄덕이지만 고향 말을 거의 잊고 지내다보니 나마저 금방 어색해진다. 그래, 말투에 있는 것 같다. 똑, 똑 끊어 말하며 에두르지 못하는 말버릇도 한몫 한 것일 게다.
같은 말이라도 부드럽게, 상대방이 듣기 좋게 하는 이들이 있다. 같은 부정이라 해도 좋은 말을 먼저 하고 부정적인 말을 나중에 하면 듣는 이가 덜 기분 나쁘다고 배웠다. 나는 그게 안 된다. 내 딴에는 연습을 한다고 했음에도 안 되는 걸 보면 타고난 성정이지 싶다. 나는 나쁜 걸 보면 부정적인 말이, 좋은 것을 보면 긍정적인 말이 즉각 나온다. 좋게 말하면 솔직한 편이고 나쁘게 치면 ‘돌직구’다. 누군가는 사이다발언이다 뭐다 하며 추어주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자제를 권한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데, 나의 경우 갚기는커녕 이자까지 덤터기 쓸 판이다.
얼마 전, 내가 뒷얘기를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뒷얘기라기보다는 어떤 일을 맡은 수장에게 일의 진행 과정을 보고하는 정도였는데 그것이 뒷담화가 되어버린 것이다. 함께 있는 자리에서 일어난 일들이었고 말이었는데 어떻게 전달되고 전달받느냐에 따라 뒷말이 되기도 하는 것인가 보다. 수습하기에는 이미 감당할 수 없는 상황까지 번지고 말았다.
그를 빌미로 동인회에서의 나의 직책이 도마에 올랐다. 권력이니 독단이니 텔레비전 뉴스에서나 들었을 법한 단어가 줄을 이었다. 그동안 필요 이상이다 싶을 정도로 친절했던 이가 언어폭력을 휘둘러대니 머리가 복잡해졌다. 나이는 나보다 어리지만 그도 한 가정의 가장이고 한 단체의 장으로 자신이 맡은 일을 멋지게 해내는 성인이었다. 이번 일을 치르면서 그가 전연 다른 사람 같아 보였다. 나보다 수십 년은 더 먹은 사람 같은 말투로, 하는 말마다 가르침이 묻어났다. 도대체 그에게 내가 어떻게 비친 것인지 궁금했다. 키도 작고 동안이라 만만하게 본 걸까. 아니면 예의상 존중해주었더니 본인이 대단한 사람이나 되는 줄 착각하고 있는 것일까. 다시 거울을 본다. 각자 기준이 다르겠지만 아무리 뜯어 보아도 내가 까다롭게 생겼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개성 없는 얼굴에 가깝다. 고집이 있어 보이기는 하나 이 정도 살았으면 그만한 고집도 필요하다고 본다. 웃음기가 없긴 하지만 꼭 웃어야 할 일도 아닌데 웃는 것도 멋쩍다. 좋으면 웃음은 저절로 나오는 법이고 상대에 따라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강하고 뚝뚝 끊어지는 내 말투가 누구에게나 그런 것은 아니다. 애교는 없어도 부드러운 면이 나에게도 있다. 그렇다면 상대적이라는 말로 대신해도 되지 않을까.
내 얼굴은 내 것이다. 평생 나를 책임질 얼굴이며 나 또한 이 얼굴에 책임감을 갖는다. 조금 못 생기고 날카롭게 보인다 해서 내 얼굴을 남의 얼굴과 바꿀 수는 없는 일. 이렇게 생긴 것도, 이런 말투도 다 내 것이다. 오십 평생 살아오며 변하기도 했겠지만 나는 이 얼굴이 내 것이어서 좋았다. 쉽게 변하지 않는 성격도 그저 내 것이려니 하며 산다. 치명적인 실수를 하여 부끄러운 적도 있지만 그렇다고 나를 감출 수도, 나를 버릴 수도 없었다.
예절강사인 동생은 말한다. 사람의 표정은 충분히 바꿀 수 있다고. 웃는 얼굴이 다가가기 편하니 되도록 웃는 연습을 해보라고. 거울을 보고 오 분씩만 연습해도 어느 날 변해 있는 자신을 보게 될 거라고. 밑져야 본전이라고, 거울 앞에 앉아 동생이 코치한 대로 따라해본다. 하지만 오 분은 생각보다 긴 시간이다. 어색하고 쑥스러워 표정이 이내 일그러진다.
표정을 부드럽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마음자리가 먼저 다듬어져야 할 텐데, 그것이 안 되니 표정연습도 생각처럼 쉽지 않다. 동생이 만들어놓은 얼굴 표정 바꾸기 표는, 사는 게 바빠서인지 더는 관심이 없어져서인지 제대로 연습도 하지 못했는데 어디 갔는지 찾을 수 없다. 말씨도 연습을 하면 부드럽게 바뀔 수 있다고 하는데 그것도 어렵다. 영 내 것이 아닌 것 같다. 사교적이지 못하지만 그냥 내 식으로 살기로 한다. 비호감 얼굴로, 잘못 건드리면 툭, 부러질 것 같은 말씨 그대로. 이런 나를 만나주는 이들도 몇몇 있지 않나. 나의 스승님과 문우들, 내 형제와 친척들, 그리고 어릴 적 친구들.
거울 속 내 얼굴이 조금 자신감을 얻은 듯 보인다.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런데 웃는 얼굴은 여전히 낯설다. 이러다가 거울 속으로 들어가겠다. 밤도 퍽 깊었다. 거울을 보며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고 말해본다. 그리고 한 마디 던져본다. “나, 그냥 이대로 살래.”

기고자 소개

한복용

충남 태안 출생

2007년 격월간 《에세이스트》 등단

저서 : 《우리는 모두 흘러가고 있다》 《지중해의 여름》 《꽃을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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