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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지도연구원

대전청소년

2021년 여름호
청소년이 힘들 때
국번없이 1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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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걷는 마음

본문

대전청소년길잡이
채정순
권기덕

함께 걷는 마음

연둣빛 잎사귀들이 봄바람에 스칠 때면 신천을 따라 학생들과 함께 건강 걷기를 하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특히, 코로나 19로 인한 팬데믹 상황이 지속되고, 황사가 심해진 요즘엔 더욱 그리워지는 시절입니다. 몇 해 전 D초등학교에서 6학년 담임을 했을 때였죠. 당시 그 학교에선 ‘건강 걷기를 통한 행복한 학교생활’이란 주제로 시범학교를 운영했는데 교육과정 속에 학교 주변의 신천을 이용한 다양한 활동들에 대한 기억이 인상 깊게 남아 있습니다.
신천은 도시의 중심부를 흐르는 하천인데 한때 산업화, 도시화로 인해 심각하게 오염되었지만 환경 개선에 대한 각성과 노력으로 지금은 시민들에게 휴식과 힐링의 공원으로 자리매김한 곳입니다. 그 신천을 배경으로 수업 시간을 재구성하여 학생, 학부모와 함께했던 건강 걷기와 환경 정화 활동, 캠페인, 사제동행 행복 나눔 시간, 신천 사진 전시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운영되었습니다.
그런 프로그램 속에서 우정 깊었던 제자들의 아름다운 모습들은 참 돋보였습니다. 신천 걷기(대봉교-희망교-중동교 왕복 3km 정도) 체험을 하던 4월의 봄날, Y학생이 중간에 걷지도 못할 만큼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던 거죠. (조금만 무리를 하거나 충격이 가해져도 무릎을 다칠 수 있는, 하지만 무릎 성장이 더 이루어져야만 수술할 수 있는, 희귀병이라는 사실을 부모님의 말씀을 통해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풍경과 자유로움에 들뜬 대부분의 아이들과는 Y의 상황이 사뭇 달랐기 때문에 저는 걱정부터 앞섰나 봅니다. 하지만, 당황하는 나를 위로하듯 평소 Y와 친하게 지내던 네 명의 친구들은 쉼터까지 함께 부축을 하면서 동행을 해주었습니다. (물론, 응급대처를 한 뒤 차량 조치를 하긴 했지만)
차량을 기다리는 동안 커다란 미루나무 그늘 아래 쉼터에서 아이들과 함께 바라본 신천의 모습은 아주 특별했습니다. 그 하늘빛과 구름 모양, 바람의 감촉 같은 것, 특히 물 위에 내려앉는 각자 다른 모양을 가진 새들의 자유로움에 대해 느꼈습니다. 우리는 새들이 봄을 말하는 방식과 새들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아이들이 오히려 더 여유로워 보였습니다. 친구를 위해 가벼운 농담을 건네기도 했습니다. Y는 몸은 힘들지만, 웃어보였습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긴 여운이 남았던 풍경이었습니다. 동행이란 함께 속도를 맞춰서 걸어가는 것, 아이들의 우정 어린 모습은 걱정만 앞섰던 제게 오히려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물론, Y학생은 그 후로도 자주 무릎 부상을 입어서 차량을 기다리거나, 목발을 짚고 가거나 휠체어를 타고 갈 때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보건실에서 빌린 들것을 준비해서 걷기 체험에 참여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함께 가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계절마다 다양한 빛깔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신천에 내려앉은 왜가리나 청둥오리, 흰목물떼새를 바라보며 인사를 나누던 아이들의 천진함과 웃음소리는 서로가 함께 살아감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신천 걷기뿐만 아니라, 학급전체가 참여했던 월드비전 유튜브 영상참여프로그램 《교실에서 찾은 희망》 안무 연습과 촬영, 《반별 좋은 노래가사 부르기 대회》등 함께 했던 순간마다 서로를 배려하며 우정을 쌓았습니다. 사춘기 남학생들이라 그런지 표현은 서툴고 투박했지만 따뜻한 마음이 전해졌습니다. 학습으로 배울 수 없는 그 어떤 무언가는 신천 걷기의 동행 속에서 작지만 빛나게 싹트고 있었나 봅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두 해쯤 지나고 Y학생으로부터 무릎 수술을 잘 마쳤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두 해 지나 코로나로 팬데믹이 왔던 작년 어느 가을날엔 문득 사진 소식을 보내왔습니다. 사진 속에는 건장한 청소년들이 마스크를 쓴 채 환하게 눈웃음을 짓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신천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Y를 비롯한 네 명의 친구들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들은 잘 걷고 있었고, 앞으로도 잘 걸어갈 것 같았습니다. 함께 걷는 것의 소중함, 동행을 응원하는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기고자 소개

권기덕
시인
  • 2009년 『서정시학』에 시,
  • 2017년 『창비어린이』에 동시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 : 『P』, 『스프링 스프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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