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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청소년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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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청소년길잡이
김현지
김 현 지

밥상

 밥상을 생각한다. 먹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생물학적 조건을 가진 인간으로서 먹는다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배만 채우면 되는 것이 아니고 먹는 행위에 따르는 심리적, 정서적 충족감까지 고려해야 하는 복잡 미묘한 인간이기에 어떤 밥상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인심이 각박해서인가, 요즘 밥상이 삭막해져가고 있다. 우리 집 밥상도 그렇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일주일 내내 얼굴 한번 대하기 힘들어진다. 새벽같이 일어나 나가 버리면 자정이 되어서야 파김치가 되어 들어오는 아이들의 바쁜 일과는 식구끼리 도란도란 마주보는 밥상을 생각지도 못하게 만들어 버린다. 식구가 왜 식구인가. 같이 밥을 먹는 것이 식구 아닌가.
나의 이런 불안이 일요일 아침밥상에 유독 정성을 들이게 한다. 일주일 내내 일하는 몸이라 다소 피곤하기는 하지만 갖가지 맛있는 것을 장만해 밥상 가득 생기를 불어 넣는다. 그러니까 일요일 아침 밥상은 식구끼리 밥 한 끼라도 같이 먹기 위한 자구책이다. 해서 일요일 아침 식탁에 둘러앉아야 하는 것은 의무사항이다. 늦잠도 못 자게 한다며 불만을 터트리던 아이들도 이제는 당연한 듯 눈곱도 털지 않고 밥상 앞으로 모여 앉는다.
어찌 일요일 아침 밥상이 단순히 허기를 채우자는 밥상이던가. 이제 성숙해 버린 아이들에게 부모가 하는 말은 모두 잔소리요 답답한 기성세대의 노파심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그래서 일요일 아침밥상은 우리가 너희의 아비요 어미이며 너희들이 혼자가 아니라 이렇게 든든한 가족이 있음을 각인시키는 자리이다. 한주일 동안의 이야기를 풀어 놓기도 하고 계획에 대해서도 의논하며 눈을 맞추고, 마음을 부딪치며 따뜻한 밥상을 이끌어낸다.
언젠가 누군가를 위한 배려의 밥상 앞에 가슴이 먹먹했던 기억이 있다. 친구의 사무실에서 볼일을 마치고 나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친구는 사무실에서 그냥 시켜먹자고 했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빙그레 웃는 친구의 선한 눈망울에 무언가 특별한 뜻이 있을 것 같아 그러자고 했다.
주문한 백반정식이 왔다. 랩으로 싸인 김치찌개에 밑반찬 몇 가지 그리고 밥이 세 그릇이었다. 둘이 먹는 밥상에 웬 밥이 세 그릇이냐며 물었더니 친구는 종이컵을 내어 주며 찌개도 덜어 먹고 반찬도 조심조심 먹으라 했다.
친구의 사무실은 작은 골목 안에 있었다. 혼자 일하는 친구는 사무실을 비울 수 없어 점심을 시켜 먹곤 했다. 시켜 먹은 쟁반을 골목 입구에 내다 놓았더니 어느 걸인 할머니가 친구가 먹다 남긴 음식들로 맛있게 식사를 하더란다. 친구는 하도 마음이 짠해 할머니에게 새로 시켜드릴 터이니 사무실로 들어와서 드시라고 했더니 부끄러운 듯 도망을 치셨단다. 괜스레 말을 시켜 그나마 드시던 음식을 다 드시지도 못하게 했다는 안쓰러움에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친구는 아마도 할머니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 허기진 배를 채워 드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여러 궁리를 했을 것이다. ‘그래, 밥 한 공기 더 얹어 내놓자.’ 다음 날 그 할머니는 친구가 먹다 남긴 음식쟁반에 덮힌 신문지를 벗겨냈을 때 그곳에는 온전한 한공기의 밥과 깨끗하게 덜어 먹은 반찬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그 이후 친구의 점심은 누군가를 위한 배려의 밥상이 되었다. 다 드시고 간 빈 쟁반을 보면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다고 했다. 작은 선행으로 스스로 자족하는 소시민적 행동이면 어떠랴. 할머니를 생각하며 먹는 친구의 밥상과 누군가의 따뜻한 배려에 허기를 채우는 할머니의 밥상은 두 사람 모두에게 행복한 밥상임엔 틀림없다. 누군가의 작은 배려가 모여 차가운 세상을 조금은 데울 수 있다. 친구의 밥 한 공기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각박한 세상이라고들 하지만 아직은 살 만한 세상이라는 생각을 했던 믿음의 밥상도 있다. 바쁜 하루를 마감하고 밀려오는 시장기로 들렀던 어느 구석진 보리 밥집이었다. 보리밥을 메뉴로 하는 식당이 대체로 그러하듯 할머니가 계셨고, 허름했고, 그리고 저렴했다. 보리밥을 즐기지는 않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옛날 할머니가 지어주시던 보리밥에 된장찌개가 생각날 때가 있었다. 맛보다는 추억을 먹자는 마음이 앞서는 날이었다.
시커먼 보리밥에 구수한 된장찌개, 시래기, 콩나물, 무 무침, 작은 조기 두 마리. 초라하지만 정성껏 차려진 밥상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맛깔스러웠다.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 식당을 찾게 하는 할머니 손맛의 비결인 듯했다.
저녁을 먹기엔 이른 시간인지 손님은 우리 밖에 없었고 맛있게 식사를 마쳤다. 늘 그러하듯 카드를 내밀며 계산을 하려는데 할머니는 다음에 또 오라며 손사래를 치셨다. 혹시나 했더니 카드기기가 없는 식당이었다. 친구도 지갑 없이 따라온 터라 여간 곤란하지 않았다. 처음 찾은 식당에 외상이라니, 찜찜한 생각이 들었다. 곧 찾아다 드리겠노라 했더니 다음에 다시 오라는 말만 되풀이하셨다. 흔쾌히 웃으시는 할머니는 조금치의 의심도 없는 듯했다. 난처해하던 마음이 따뜻한 숭늉을 마신 듯 푸근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따뜻하게 타오르는 모닥불처럼 밥상의 온기를 되살리고 싶다. 뭐니 뭐니 해도 우리들은 밥 힘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 집 일요일 밥상과 친구의 배려 깊은 밥상, 그리고 할머니의 믿음의 밥상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허기진 배만 불리는 밥상이 아니라 식어버린 가슴을 데우는 따뜻하고 행복한 밥상이 이 세상 곳곳에서 훈김을 뿜어 올렸으면 좋겠다

기고자 소개

김현지

계간 《수필세계》 신인상 등단

문향여성문학상 수상, 미당문학 신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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