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청소년지도연구원

대전청소년

2020년 겨울호
청소년이 힘들 때
국번없이 1388
24시간 연결됩니다

맹그로브 노란 잎

본문

대전청소년길잡이
채정순
채정순

맹그로브 노란 잎

이국의 어느 작은 해변에서 통나무 쪽배를 타고 맹그로브 숲 체험에 나섰다. 매끄럽게 나가는 외씨 모양의 배 옆으로 맹그로브 나무들이 민물과 바닷물 사이에서 서로 어깨를 겯고 숲으로 무성하게 서 있다.
이곳의 맹그로브 나무는 맑은 계곡에서 자라다가 자연 재해로 여기까지 떠밀려왔다고 한다. 짠 바닷물이 위협의 대상일 뿐 아니라 강물이 실어다 주는 고운 흙이 단단하지 않아 웬만한 푸나무는 버티지 못하는데 용케도 견디며 살고 있다. 풍성한 푸른 잎 사이로 쌀의 뉘처럼 듬성듬성 섞여있는 노란 잎이 돋보인다. 단풍 같기도 하지만 원래는 푸른 잎이 나무를 살리려고 바닷물의 소금기를 다 빨아먹어서 빛깔을 잃은 것이라고 한다. 자연히 소금을 삼키는 양과 노란색의 강도는 비례된다.
도망갈 수 없는 나무들은 외부의 공격을 막기 위하여 가시를 만든다든가 독한 냄새를 풍기고, 병충해 같은 위험에 처할 때면 재빨리 주위에 알려서 독성물질을 만들어 방어한다는데 뿌리와 잎이 스스로를 희생하여 살아가는 나무를 보기는 처음이다.
자기들 의지와 상관없이 떠밀려와 강도 바다도 아닌 곳에 처해있는 맹그로브 나무가 우리나라를 떠올린다. 아름다운 금수강산도 외세란 뚱딴지같은 재앙을 당하여 죄 없는 조상들이 혹독한 곤욕을 치렀지 않았던가! 고려 때는 몽골군이 임진년에는 왜군이 쳐들어왔을 뿐만 아니라 그 후도 강제로 빼앗겨 유린당했다.
본래의 색을 잃으면서까지 전체를 살리는 맹그로브의 노란 잎을 보며 조국을 지키기 위해 숭고하게 나섰던 의인들을 떠올린다. 안중근, 윤봉길 같은 의사와 민영환, 이준 같은 열사 또 김구, 안창호 같은 지사들이다. 이들은 하나뿐인 목숨을 초개처럼 여기고 역사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던 거룩한 선각자들이다. 그중에도 의사와 열사가 더 부각되는 것은 소금을 제 몸에 더 이상 쟁이지 못할 경우 슬며시 떨어져서 스스로 자취를 감춘다는 노란 잎 같은 삶 때문이다.
또한 임진왜란 때의 승병과 의병들은 어떠했던가. 왜구라고 얕잡아보던 왜놈들이 아닌 밤중에 홍두깨식으로 쳐들어왔을 때 평민, 양민, 노비와 스님들도 거병했다. 개전하자마자 관군은 조총의 위력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니 관군은 달아나기에 바빴고, 임금과 신하들마저 한양을 내어주고 피난을 갈 때 내 가족과 고향, 그리고 더 나아가 나라를 지키겠다는 충정 하나로 들고 일어났다.
푸른 잎으로 가만히 있어도 될 의병 대장이었던 곽재우와 조헌, 김천일, 고경명, 유정 · 휴정 스님들, 특히 곽재우는 병사를 모으는데 사재를 털어서 썼다. 그들 부대는 정예부대인 일본군에 정면으로 나서기는 훈련도 부족하고 무기도 허술해서 치고 빠지는 유격전을 펼치며 대항했다. 물론 이순신이나 권율처럼 버티는 뿌리 역할을 한 장군도 있었지만 진정성을 갖고 전력을 다하는 그들이 아니었으면 승리를 장담하지 못했다. 조헌, 김천일은 청주성 전투로 성을 수복까지 했지만 금산에서 왜적과 싸우다 칠백 명의 의병과 전사했고, 고경명도 아깝게 그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맹그로브는 부레옥잠과 마찬가지로 물 정화에는 엄지손가락을 내세우는 식물이다. 바다에서 갈증이 날 때 어부들은 이 뿌리의 물을 마신다고 해서 우리도 한 가닥을 잘라서 속에 든 물맛을 본다. 바닷물에 가장 가까운 부분이건만 거의 맹물에 가까울 정도라 숙연해지기까지 하다. 노란 잎이 얼마나 열심히 소금기를 걸러주었기에 이럴까 싶어서 가슴이 먹먹하다. 식물에서도 우리네처럼 업고 업히는 현상을 마주하니 자연이 인간의 스승이라는 금언이 절로 인식된다.
푸른 잎은 생을 다하면 떨어져서 검은색으로 변해 흙으로 돌아가지만 노란 잎은 영원히 형태를 보전한단다. 당장은 물위에 떠서 표표히 떠나가지만 썩지 않으니 이곳 사람들은 이 잎을 주우면 소금대신 쓴다고 한다. 일부러 노란 잎에 불을 붙여 봐도 그을음만 만들 뿐 타지 않는다.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고 후손들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있는 그들처럼. 그러기에 이 땅이 어지러워지면 맹그로브의 노란 잎처럼 의인들이 곳곳에서 탄생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게 된다

기고자 소개

채정순

수필세계작가회원

수필집 『붉은 투구를 쓰고』

맨위로 이동 맨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