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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지도연구원

대전청소년

2019년 가을호
청소년이 힘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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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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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마음 하얀 마음
고기정
대전괴정고등학교 3학년
고기정

대전으로 가자

“무슨 일이라도 있어?” 옆자리 직원인 민영 씨가 궁금한 듯 말을 붙여왔지만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혜원에게서는 아무런 답변도 들려오지 않았다. “응? 무슨 일 있냐니까.” 계속되는 민영의 물음에 그제야 벌벌 떠는 손을 갈무리하며 입을 열었다.

“찾았대요, 제 부모님.”

혜원에게는 부모가 둘이다. 첫 번째 부모는 이름조차 몰랐다. 그저 뱃속에서 열 달 품어 세상 빛을 보게 해 준 사람이었다. 그들은 혜원을 키워 줄 여건이 되지 않았는지 그저 핏덩이였던 혜원을 고아원 현관에 유기했다. 그날따라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던 보육원 선생이 밤 산책을 하기 위해 나와 보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얼어 죽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선생의 손길로 보육원에 입소한 혜원은 비로소 자신을 키울 여건이 되는 두 번째 부모를 만났다. 이 모든 것이 혜원이 태어난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았을 적에 일어났다. 그래서인지 혜원은 도통 응석도 잘 부리지 않고 자라났다. 혜원의 두 번째 부모는 혜원 외에 아들이 하나 더 있었고, 여느 동화나 책에 나오는 이상적인 가족이 되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해줬다. 두 번째 부모의 직업은 안정적인 공무원이었으며, 혜원 또한 자신을 키워주신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공무원이 됐다. 나름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 스스로 생각하는 혜원이었다.

그랬던 혜원에게 첫 번째 부모의 소식이 들려온 것은 단순한 우연이었지만 평화로웠던 혜원의 삶을 이리저리 뒤집어 놓기에는 충분했다. 처음부터 우연이었던 이 만남은 혜원이 속해있는 시청에서 ‘잃어버린 부모 찾기’ 캠페인을 열면서부터 시작됐다. 하필이면 그 캠페인 총괄이 혜원이었고, 장난 반 진심 반으로 서류를 제출한 혜원에게 연락이 온 것은 단순히 우연이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었다. 아직도 벌벌 떨려오는 혜원의 손을 맞잡아 준 민영이 혜원의 모니터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대전이네? 어느새 혜원의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 맺혀있었다. 민영은 그런 혜원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중요한 사실을 되짚어 주듯 반복했다. 대전이야. 그 말에 혜원은 무너지듯 울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혜원은 가누기 힘든 자신의 몸을 침대 위에 눕혔다. 수도꼭지가 새는 듯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새빨갛게 짓물린 눈가가 따끔거렸지만 혜원의 시선은 오롯이 휴대폰만을 향했다. 휴대폰 화면에는 하루 종일 혜원의 감정을 가지고 놀던 모니터 속 화면과 같았다. 혜원을 찾고 있는 듯 캠페인에 자진으로 동참하여 선뜻 자신의 이름과 사는 곳, 휴대폰 번호까지 내어놓은 자신의 어미. 낳은 지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아기를 고아원 현관에 유기했다는 점과 그날 자신을 감쌌던 배냇저고리의 색상이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이 사람이 자신의 첫 번째 부모일 것이라 직감하는 혜원이다. 겨우 글자 몇 줄일 뿐인데도 혜원은 눈이 빠질 듯 화면을 눈가로 더욱 가까이 가져다 댔다. 누운 상태라 볼을 타고 흘러내렸어야 하는 눈물이 측면으로 흘러내려 귓바퀴에 고였다. 불쾌함을 느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혜원은 그것을 닦아 낼 의지조차 상실했다. 혜원 스스로도 자신이 왜 이러는지 도통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분명 자신을 매정하게 버린 부모였다. 이름도, 얼굴조차 알지 못했던, 남보다 못한 이들이었다. 그런데 머릿속의 자아들은 제 멋대로 ‘그리움’이라는 것을 만들어내어 혜원의 머릿속을 계속해서 들쑤시고 놀았다.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무슨 생각으로 자신을 찾는지에 대한 의문도 들었다. 생각이 끝도 없이 늘어지자 혜원은 애써 흐른 눈물을 닦아내고 휴대폰을 꺼 침대 밑으로 던져버렸다. 잠결에 불쑥 치고 들어 온 그리움이 휴대폰을 찾지 못하게 멀리 던져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날 밤, 혜원은 꿈을 꿨다. 어떻게 보면 악몽이었고, 어떻게 보면 해몽일 그런 꿈을. 그 꿈 안에서 혜원은 태아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처음 눈을 떴을 때 느껴지는 각막의 축축함과 귀에서 들리는 특유의 이명, 먹먹한 숨, 벌겋고 어두운 시야가 비로소 그곳이 자궁 속임을 알려주었다. 물기에 퉁퉁 불은 작달막한 아이의 손이 자신의 의지에 의해 펴졌다 오므려졌다를 반복했다. 혜원은 고개를 내려 자신의 배꼽과 어미의 몸체를 잇는 탯줄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탯줄로 손을 뻗었다. 미끌거리는 감촉이 느껴진 것은 순간이었다. 힘을 주어 탯줄을 잡아당겼다. 당연하게도 쉽사리 끊기지 않았다. 이게 만약 과거의 나라면, 태어나 더 큰 슬픔을 느끼기 전에 여기서 끝내버리는 것이 나았다. 다시 한 번 손에 힘을 주어 탯줄을 잡아당겼다. 저절로 끙, 하는 소리가 옹알이처럼 새어나와 물속에 묻혔을 때였다.

“아가야, 조금만 참아.”

울긋불긋하던 시야에 군데군데 그늘이 졌다. 혜원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어미가 배를 쓰다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탯줄을 붙잡고 있던 손에서 힘이 스르륵 빠져나갔다.

“곧 만나게 될 거야. 너도 기대돼서 잠 못 이루는 거지?”

나긋한 목소리가 어딘가 익숙했다. 아마 평소에도 자신과 이야기를 많이 했었던 듯 무의식적으로 몸이 반응했다.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 혜원이 손을 뻗어 어미의 손에 자신의 손을 포갰다. 한 번도 잡아보지 못했던 손이었다. 이러한 감각을 혜원 뿐만이 아니라 혜원을 품고 있는 여자도 눈치를 챘는지 곧잘 까르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양수에 잠겨있는 혜원은 온통 웅웅대는 소음 속에서 자신의 어머니의 목소리만은 오롯이 구별할 수 있었다.

“네가 태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어.”

부드러운 목소리, 곧이어 혜원은 꿈 안에서 또 다른 꿈을 꿨다. 건강하게 태어나 자신의 부모에게서 아낌없는 애정을 오롯이 받아내는 꿈을. 여태 가슴 깊숙한 곳에 숨겨두었던 기대를 꿈 속에서 실현시키기라도 하려는 듯 그렇게 정말이지 너무도 행복한 꿈이었다.

혜원이 잠에서 깨어났을 때에는 이미 해가 중천에 떴을 무렵이었다. 오늘이 주말이라 다행이라 생각하며 몸을 일으킨 혜원은 거울을 보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분명 어제만 해도 슬픔이 가득한 얼굴이었는데 울음으로 퉁퉁 부은 눈가와는 별개로 입가에는 생전 지어본 적 없는 행복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혜원은 어젯밤 저 멀리 던져 둔 휴대폰을 들어 화면을 확인했다. 대전광역시 유성구 봉명동. 화면에 쓰여진 구체적 주소를 되뇌이며 읊는 혜원은 오늘따라 더 밝아보였다. 비로소 모든 짐을 챙긴 혜원은 차 키를 집어들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처음엔 주저함으로 느렸지만 차에 가까이 갈수록 발걸음이 빨라졌다. 어서 가서 묻고 싶었다. 꿈이 사실이라면, 그토록 기다렸던 나를 왜 그리 내친 거냐고, 그리고 용서하고 싶었다. 비록 나를 버렸을지라도 열 달 동안 품어주었던 자신의 부모를. 요란한 소리를 내며 차의 시동이 켜졌다. 혜원은 스피커 위에 놓인 내비게이션에 자신의 부모의 상세 주소를 입력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조금의 설렘과 두려움이 담긴 그 말을.

“대전으로 가자.”

부드럽게 대전을 향해 출발하는 차가 마치 혜원의 밝은 미래를 암시해 주는 듯 했다. 차창을 뚫고 들어오는 햇살에 혜원이 얼굴을 찌푸렸지만 입가가 올라가는 미소를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제 37회 한밭전국백일장 고등부 금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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