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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청소년

2020년 가을호
청소년이 힘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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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동네에서 얻은 용기

본문

파란 마음 하얀 마음

꽃동네에서 얻은 용기

대전복수고등학교 3학년
임다은
'꽃동네.’
지금으로부터 약 1년 3개월 전, 우리는 수학여행에 관한 가정통신문을 받았다. 전부터 수학여행 장소에 대한 정보를 익히 들어왔었기 때문에 수학여행 장소가 꽃동네라는 사실이 그다지 놀랍지는 않았다. 다만 대부분의 친구들과 같이 가기 싫다는 마음만 들었을 뿐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친구들과 함께 수학여행을 가네 마네, 그곳 소문이 어떻다네, 언니가 거기 갔었는데 완전 별로였다네 등 수다에 수다를 더해가며 수학여행을 가기도 전에 미리 그곳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만 가득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수학여행을 간 이유는 단지 생활기록부에 쓰인다는 점이었다. 그만큼 그곳에 가는 마음은 그리 좋은 의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삼일동안 도대체 뭘 하고 지낼까라는 걱정을 하며 무거운 마음으로 꽃동네에 도착했다. 도착 하자마자 밖에서 꼼짝없이 서있었던 일은 그곳에 대한 첫인상을 안 좋게 만들었다. 우리는 모든 친구들이 다 모이자 그제야 안으로 들어가서 그곳이 어떤 곳인지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그곳은 버림받은 아이들부터 장애인분들, 그리고 집이 없으신 분들까지 다양한 분들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이마저도 오기 전에 봉사활동을 할 구역을 정하느라 이미 알고 있었기에 그리 새롭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첫날부터 나는 별 흥미가 없는 상태로 협동심을 기르는 게임을 했고, 시각장애인 체험을 하기도 했으며, 감동적인 영상을 보고 발표하는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활동들은 죽은 내 흥미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어주지는 못했다. 내가 정말로 말하고 싶은 이야기, 이곳에 있는 동안 나의 생각과 태도를 바꾸게 만들었던 일은 이런 활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내가 굳이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둘째 날에 있었다. 둘째 날은 우리가 꽃동네에 오기 전 나눴던 봉사구역을 직접 찾아가서 봉사를 하는 날이었다. 내가 봉사로 갈 곳은 ‘행복해 일치동네’라는 곳으로 장애를 가진 분들이 거주하시는 공간이었다. 그 공간은 수련회장과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라 우리는 차를 타고 이동했다. ‘행복해 일치동네’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본 것은 파란색 드럼통에 가득 담겨있는 신발주머니었다. 평소 우리가 신발을 신고 드나들던 건물 입구의 회색 돌판부터가 그 분들에게는 생활공간이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돌판 앞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 계단 대신 경사로를 타고 올라가 넓은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우리는 주의할 점들을 영상으로 안내받았다. 그 뒤 우리는 재빠르게 봉사 할 장소를 정하고 흩어져서 봉사를 시작했다. 나는 장애를 가진 여성분들이 거주하는 곳에서 봉사를 하기로 했다. 방들이 양 옆으로 쭉 이어진 복도를 따라가며 우리는 혼자, 혹은 둘씩 짝을 지어 한 방씩 맡아서 들어갔다. 내가 들어간 곳은 다섯 분이 머무르시는 곳이었다.
“학생, 이 그릇 좀 씻어다 줄래요?”
“나는 소화를 잘 못해서 아주 잘게 썰어 줘야해.”
“방바닥 좀 닦아줘.”
들어가자마자 나를 부르는 소리를 따라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바쁘게 움직이며 봉사라는 이름하에 방바닥을 닦고, 설거지도 하고, 식사준비를 도와드리거나 함께 산책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열심히 돌아다니기도 잠시, “앉아서 좀 쉬어요.”라는 말에 나는 쭈뼛쭈뼛 바닥 한 켠에 앉았다. 아직 어색한 기운이 역력했던 나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 틀어져 있는 텔레비전으로 시선을 맞췄고, 이내 떡도 나눠먹고 담소도 나누며 그 분위기에 점차 익숙해져 갔다.
갑자기 내린 비를 풍경삼아 쑥떡은 쪄 먹는 것이 더 맛있다, 이 드라마 남자주인공이 너무 답답하다, 밥 먹을 건데 왜 산책을 나가냐는 등의 사소한 담소가 오고 가면서 그 과정 안에서 나는 할머니 집 같이 편안하고 따듯한 느낌을 받았다.
비만으로 인해 건강에 문제가 있으신 분에게 절제하도록 도움을, 항상 음악을 듣는 분에게는 그분의 마음을 존중하는 태도를, 다리가 불편해서 그 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는 분에게는 심심하지 않게 말 한마디 건네는 이곳도 분명 나와 같은 사람이 자고, 먹고, 지내는 생활공간인 걸 비로소 느낀 것이다. 처음에 내가 이곳에 도착하고 봉사를 가기 전까지는 장애인은 도와줘야 하고 배려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이런 마음으로 봉사를 갔고, 사실은 이런 분명 힘들 것이라는 마음이 큰 부담이 되어 수학여행에 오기 싫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봉사를 마친 후 나는 나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라고 해서 살아가는 삶의 형태조차 다른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지도 못한 깨달음을 얻고 꽃동네를 떠나는 날 마음 속에 아쉬움이 가득 찼던 나는 문득 개별반 친구가 떠올랐다. 그 친구는 비록 몸이 불편하지만 마주치면 항상 누구보다도 환하게 웃으면서 먼저 인사해 주었다. 나는 그 친구의 인사를 받으면 너무 피곤한 아침이라도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이 친구를 생각하면서 내가 나의 이웃에 대한 오해만 쌓아가고 있을 때 이 친구는 이미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개별반 친구에게까지 미치자 그럼 나는 어떻게 하면 내 이웃을 사랑할 수 있을까 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해낸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개별반 친구처럼 먼저 미소로 인사하기였다. 예전에는 상대방이 먼저 인사해주기를 기다렸다면 이제는 내가 먼저 하기로 결심을 한 것이었다.
다짐을 시작으로 내가 먼저 인사를 하다 보니 이웃사랑을 실천해보자라는 취지에서 시작했던 인사가 어느새 내 삶의 활력소가 되어있었다. 특히 그 중에서도 등굣길에 계시는 중학교 수위 아저씨가 나의 아침 가장 큰 활력소를 채워주셨다. 예전의 나는 부끄러운 마음에 아저씨에게 며칠이나 인사하기를 망설였었는데, 꽃동네를 다녀온 후 용기를 내서 아저씨에게 처음으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렸다. 나의 인사에 피어난 아저씨의 미소는 지금도 생각이 날 정도로 환하게 인사를 받아주셨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아저씨와 통성명을 하게 되었고, 나의 학교생활이나 아저씨의 일상생활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고, 고민상담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정말 좋은 친구가 되었다. 나의 인사가 처음으로 이웃과 좋은 인연을 만들어 준 것이었다.
이전에 나는 이웃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그다지 많이 생각해 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꼭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직접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먼저 인사를 해보니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동이 내 이웃뿐만 아니라 내 하루의 기분을 뒤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의 내 삶이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는 언제나 나의 이웃과 함께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도 함께 살아갈 것이라는 거다
<제16회 충·효·예 실천우수사례∥고등학교∥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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