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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지도연구원

대전청소년

2020년 봄호
청소년이 힘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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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든 꽃을 피게 하는 힘

본문

파란 마음 하얀 마음

시든 꽃을 피게 하는

서승현
대전월평중학교 3학년
서승현
2019년 3월의 끝자락, 따스한 봄 날씨처럼 아름다울 것만 같던 나의 나날에는 불현듯 꽃샘추위가 찾아왔다.
엄마가 건물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두 발이 다발성 골절로 전치 12주 판정을 받아 병원에 입원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일주일 즈음 지나자 이 모든 현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나에게 이 고달픈 현실이 너무나도 크게 다가왔다.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려다 보니 육체적으로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학교생활과 더불어 엄마가 해 오셨던 모든 집안일을 아빠와 분담하긴 했지만 여전히 많은 빨래와 청소, 설거지 같은 집안일과 엄마 얼굴 한 번 더 보려고 병원에 가야 하는 나의 고달픈 생활에 매일 밤을 울며 지새웠고 그로 인해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까칠해졌으며 점점 이 모든 상황이 견디기 힘들어졌다. 하루는 한 친구에게 지금 나의 모습이 어때 보이는지 물었다. 내가 보기에도 최악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 친구는 지금 너는 여유가 없어 보이고 주변이 아예 안 보이는 듯이 무언가에 쫓기듯 조급하게 앞으로만 돌진하는 것 같은데 진전이 없어 보인다고 했다. 그 말에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그 친구의 말이 너무나도 내 상황을 똑같이 대변해주고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내 마음의 어두운 부분을 들킨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친구의 말을 듣고 나는 내가 그토록 감추려 했던 지금 내 상황의 상처를 직면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가진 이 상처를 치료할 방법은 내가 서있는 이 자리에서 어떻게 이 고난을 헤쳐나가야 할지를 생각해보고 이 상처를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 불행한 쪽으로만 생각했던 나의 삶을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엄마가 다발성 골절로 12주 동안이나 병원에 있어야 하는 것에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계단에서 굴러 떨어졌으면 머리를 다쳐 뇌출혈이나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뇌사상태, 어쩌면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반신불수가 되었을 수도 있었지만 그나마 다발성골절로 그친 것에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부터 나는 엄마와 통화할 때 울먹이지 않을 수 있게 되었고 울먹임이 미소로 변화됨을 경험했다. 하지만 절망을 감사로 승화한다고 해도 힘든 것을 모조리 감출 수는 없었다. 그러나 엄마가 집에 올 날을 고대하며 참고 이겨냈다.
그리고 엄마는 한 달 후에 한방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토요일마다 외삼촌과 외사촌 동생들과 함께 엄마께 병문안을 가서 병원 안에만 있는 엄마를 위해 밖으로 나가 엄마의 휠체어를 밀며 함께 테라스도 가고 길거리도 거닐며 엄마를 위해서라면 나는 이 모든 상황이 힘들지 않다고, 견뎌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내 손을 꼭 잡으시며 고맙다고 눈물을 글썽이셨다. 돌이켜보면 그 힘겨운 나날들 속에도 나는 엄마에게 힘들다고, 못하겠다고 불평한 적이 없다. 너무나도 힘들지만 무척이나 사랑하는 그 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내 모든 것을 내주어도 아깝지 않은 마음, 엄마가 내가 아기일 때 그랬듯 나도 엄마께 조금이라도 해 드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내가 불평 없이 엄마를 대할 수 있었던 것, 그 힘은 바로 내가 엄마를 사랑하는 힘에서 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엄마는 두 달째 되는 달에 요양병원으로 다시 자리를 옮겼다. 요양병원에는 토요일마다 가서 엄마의 목욕을 시켜드리고 엄마의 말동무도 되어주며 엄마와 같이 자고 일요일 날 집에 오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토록 엄마와 함께 보내고 싶던 내 생일 날이 되었다. 나는 원래 토요일에만 엄마에게 갔기도 하고 그룹 과외도 있어서 이번 생일은 친구들의 축하로만 만족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단짝 친구가 사준 저녁을 함께 먹고 있다가 그 친구가 오늘 네 생일이니까 과외를 빼고 함께 엄마께 가는 것이 어떠냐고 하였다. 버스를 타고 가야했기 때문에 왕복 한 시간 정도를 소비해야 하고 다음 날 학교에도 가야 해서 다소 무리가 되는 행동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마음 따뜻한 친구는 감자도 삶아 와서 함께 만원버스에 올라타 한 시간이 넘는 거리와 나의 추억 한 켠 그리고 엄마와 나의 마음을 든든하게 함께 채워주었다. 드디어 엄마에게 도착해서 친구가 사준 생일 케이크를 함께 먹었다. 그리고 그 날은 내 생애 최고의 생일이 되었다. 비록 엄마가 끓여준 미역국을 먹진 못했지만 병원에서 엄마와 보낸 내 열 다섯 번째 생일은 그 어느 해보다도 더 감격스럽고 특별한 생일이었다. 항상 받기만 했던 생일에 내가 엄마를 위해서 특별한 날을 선물한 듯한 소중했던 날로 오래오래 기억될 생일이 될 것 같다.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과 엄마에게 애틋한 감정 때문일지, 나는 지금까지도 그 때의 여운을 잊지 못한다.
그렇게 7월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5월에 국어 선생님의 추천으로 나간 한밭 전국 백일장에서 은상을 수상하였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때는 아마 내가 엄마가 다치신 지 한 달 정도 되었을 때라 많이 힘들고 방황했던 시기였다. 백일장의 주제는 향기로운 5월이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써야할지 감이 안 와서 고민이 되었다. 그래서 주제 안에 담겨있는 나의 경험이나 추억을 떠올리다가 엄마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5월은 가정의 달이기도 해서 나는 부모님과 관련된 시를 지었다. 아무것도 없는 새까만 밤 같은 나의 마음에 새하얀 별을 피워주는 것은 절대 지지 않는 부모님의 사랑이라고 하여서 지지 않는 꽃이 부모님의 사랑이라고 표현했고 지지 않기에 더욱 향기롭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부모님을 향한 나의 사랑이 담겨서일까, 나는 좋은 결과를 얻었고 엄마도 참으로 기뻐하셨고 주변 사람들도 칭찬해 주셨다.
하지만 여전히 걱정되는 것, 그것은 바로 엄마의 재활이었다. 의사 선생님이 재활하는데 1년 정도 걸린다고 하시고 목발을 짚고 생활해야 할 거라고 하셔서 엄마가 걸어 다니지 못할까봐 많이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걱정과는 달리 엄마는 너무나도 빨리 회복하여 퇴원한지 2주 정도 후에는 혼자 힘으로 걷게 되었다. 이렇게 된 것이 엄마에 대한 나의 사랑의 힘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를 위해 기도하고 헌신하며 노력하고 힘썼던 나의 진심이 엄마의 건강에 닿아 엄마가 이렇게 건강하게 회복될 수 있었다는 것이 느껴졌다. 모든 산전수전이 다 지나고 지금, 나는 아직도 엄마를 많이 도와드리고 있다. 그리고 엄마에 대한 사랑을 여전히 간직하고 표현하며 행동으로 보여드리고 있다. 엄마에 대한 사랑의 힘으로 기적까지 일궈낸 나의 사랑의 힘에 감사하며 그동안 잘해온, 앞으로도 부모님에 대한 사랑의 힘으로 여러 기적을 일궈낼 나를 위해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다
<제16회 충·효·예 실천우수사례∥중학교∥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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