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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가을호
청소년이 힘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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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꽃밭이 주는 즐거움

본문

대전청소년길잡이
대전한밭고등학교 3학년
조해미

작은 꽃밭이 주는 즐거움

대전으로 이사 오기 전,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는데 항상 주위에 어르신들이 계셨다. 주위에 계시는 어르신들도 할머니 할아버지를 잘 따르며 무럭무럭 자라는 나를 무척이나 예뻐해 주셨다. 나는 그때부터 내 또래 아이들보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은 어르신들에게 더 친숙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 분들 옆에 앉아있을 때면 편안하고 따뜻했다.
날이 좋은 날이면 할머니와 바깥 정자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는데 할머니가 살아온 시절, 할아버지가 생각하는 정치에 대한 이야기 등 등 보통 아이들보다는 다른 내용을 조금 더 빨리 접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랐다.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 분들과도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키도 크고, 생각도 깊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자랄수록 할머니 할아버지의 키는 작아지고, 기운도 줄어가셨다. 내가 자라면서 세상을 알아가는 만큼 할아버지 할머니는 노쇠해지고 계셨던 것이다.
그걸 깨달은 순간 너무 슬퍼졌다. 어렸을 적 나의 철없던 행동들을 다 받아주시고 너그럽게 이해해주신 마음을 받아온 만큼, 나도 할머니 할아버지께 보답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 크다. 마을 회관에 가서 친구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할머니를 아침저녁으로 마중 나가기도 하고, 하루 종일 텔레비전 앞을 점령하는 할아버지의 옆에서 말동무가 되어 드렸다. 그러다가 내가 대전으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떨어져서 살게 되었다. 대전으로 온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빈 자리가 너무나도 컸지만, 또 내가 없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집에서는 얼마나 허전해하실까 하는 생각에 여유가 있는 주말이 되면 항상 할머니 할아버지께 안부전화를 드리곤 한다.
내가 이사 온 아파트에는 유독 어르신들이 많이 보였다. 종종 아파트 광장 정자에 할머니들이 모여서 정답게 담소를 나누고 계셨다. 나는 이곳에서도 내가 늘 봐왔던 어르신들의 수다를 볼 수 있다는 것에 정을 붙였다. 이리저리 짐을 옮기시는 어르신을 볼 때면 얼른 달려가서 짐을 날라 드렸다. 그러다가 매일 아파트 단지를 청소하시는 한 할머니와 친하게 지내게 되어 가끔 음료수를 가져다 드렸다.
우리 집 아래층에 사시는 할머니는 아파트 1층 정원에 작은 식물을 키우신다. 무거운 물 양동이를 가지고 내려가실 때 얼른 들어드리며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고는 했다.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이 자꾸 겹쳐서인지, 누군지도 모른 어르신을 뵈면 항상 인사를 하곤 한다. 길을 오가다가 마주치는 어르신을 뵈면 누구든 인사하는 습관 때문에 어르신들과 빠르고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봉사단체에서 간간이 활동하시는 아빠의 추천으로 한 요양병원으로 봉사활동을 가게 되었다.
처음에 요양병원에 대해서 듣게 되었을 때는 조금 거부감이 들었다. 같이 살던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파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도 힘들었는데 그곳에서 몸이 불편하신 할머니 할아버지 분들을 뵈면 내 마음이 너무 불편해질 것 만 같았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라며 안심시켜 주는 아빠의 말을 믿고 한가한 주말에 그곳을 찾아가게 되었다.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야 도착할 수 있는 그곳은 도심에서 벗어나 산 아래 위치해 있는 한적한 곳이었다. 처음 요양병원에 도착하자 생각했던 곳과 다른 분위기에 조금 놀랐다. 요양병원 앞에는 예쁜 꽃들과 채소를 심어 놓은 밭이 있었고, 그곳에서 어떤 할머니의 휠체어를 밀어드리며 산책을 하고 계시던 분이 나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주셨다.
건강이 좋지 않으신 분들이 계신 곳이어서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걱정했던 요양병원에 대한 편견이 사라졌다. 따뜻한 햇볕이 드는 정원을 할머니들이 산책하고 계셨다.
그곳에서 처음 맡은 일은 정원을 청소하는 일이었다. 예쁜 꽃들에 물을 주고, 자라는 채소가지들을 정리하고 화분을 옮기는 일 등을 했다. 요양병원에 와서 이런 일을 하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제가 이런 일을 하는 게 도움이 될까요?”라고 복지사에게 묻자, 그 분이 웃으면서 말씀해 주셨다. “정원에 물주는 게 별 것 아닌 것 같지? 이 정원이 있는 것도 다 병실에 계신 어르신들 때문이야, 어르신들은 밭에 피고 자라는 것들을 보면서 미소를 찾으신단다.” 나는 복지사 분의 말씀을 듣고 옛날에 할머니 할아버지의 집에 있던 국화꽃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니 우리 할머니는 봄이 오면 예쁜 꽃들을 심으시곤 했다. 그리고 그 꽃이 피면 참 해맑게 웃으시며 좋아하셨다. 이런 생각이 떠오르자, 나에게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저 작은 꽃과 채소지만 이곳에서 병마와 싸우며 시간을 보내는 어르신들에게는 따분한 일상 속에서 만나는 소소한 낙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하고 있는 물주기가 할머니들에게 미소를 떠올리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자 기분이 즐거워졌다.
요양병원에서 정원을 가꾸는 것처럼 봉사활동의 의미가 그렇게 거창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누군가의 삶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그 보탬이 조그마한 미소라 할지라도 그것 또한 봉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로 나는 요양병원에 매달 봉사활동을 이어나갔다. 이제는 요양병원을 가기위해 오랫동안 버스를 타는 것이 따분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나의 옛날 집에 계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뵈러 갈 때와 같은 설렘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우리의 일상 한편에는 노인분들과 늘 함께하고 있다. 살아온 세월만큼 일상생활이 불편하신 분들이 많이 계신다. 몸이 불편하신 분들은 사회적 배려가 없는 사람들의 눈총을 받을 게 두려워 외출 자체를 꺼려하신다고 들었다. 우리 모두 하루 하루 나이 들어가고 있는데 어르신들에 대한 예의와 공경을 갖춘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다. 만나는 어르신들에게 밝게 웃으며 인사를 잘하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할머니 할아버지에게서 받은 사랑을 우리 이웃의 어르신들에게 나누며, 그 사랑에 보답해드릴 수 있는 어른으로 커가고 싶다.
<제16회 충·효·예 실천우수사례∥고등학교∥장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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