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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지도연구원

대전청소년

2020년 겨울호
청소년이 힘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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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사랑이 꽃피운 이웃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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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마음 하얀 마음

나라 사랑이 꽃피운 이웃 사랑

대전글꽃중학교 3학년
장효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2016년 6월 11일. 초여름 치고는 유난히도 햇살이 따가웠던 그날, 나는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자원봉사를 하러 갔다. 사실 정말로 원해서 갔던 것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나는 봉사를 할 의무는 없었고, 주말에 의미 있는 일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중학교 3학년이던 형을 따라 갔다. 실내 강당에서 국민의례와 간단한 의식 교육, 영화 <연평 해전>의 일부를 상영해 주며 이곳에 묻히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희생이 어떤 의미인지 설명해 주셨다.
밖으로 나가서 우리가 할 일은 나라를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분들의 비석을 닦는 것이었다. 스무 분 정도의 비석을 수건을 가지고 닦아 드렸다. 현충원에 처음 와 본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자란 후에 오니 그 의미가 새삼 달라 보였다. 정말 넓은 공간에 순국하신 분들이 빽빽이 모셔져 있는 것을 보니 마음이 절로 경건해졌다. 잘 알지도 못하는, 가족도 아닌 몇 대 뒤의 후손들을 위해서 목숨까지 바쳐가며 나라를 지켜내셨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했다.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것이 어떤 것이 되었든, 목숨까지 바친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나라를 사랑하신 분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만약 현충원에 묻히신 이 많은 분들이 국가보다 자신을 먼저 생각했더라면, 우리는 없었을 지도 모른다. 선조들이 피땀 흘려 지켜내신 이 땅을 밟고서, 헛되이 살아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사실 이 ‘현충원’이라는 공간에 오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이다. 얼굴도 본 적 없는, 아니 시기적으로 만날 수조차 없는 분께 경의를 표하고, 감사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봉사를 하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30분 정도의 시간이었지만 현충원이 아니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것들이 너무나 많았기에, 나에게 그 시간은 어느 때보다 길었고, 진지했다.
현충원을 갔다 온 뒤로 늘 당연한 듯 누려 왔던 일상이 너무나도 감사해졌다. 가장 와 닿았던 것은 학교. 솔직히 학교에 가고 싶을 때보다 가기 싫을 때가 더 많았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이 있고, 어딘가에 소속되어 배우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축복이라는 것을 크게 느꼈다. 늘 그 자리에 있던 책상, 의자, 하늘의 구름을 편히 보는 것마저도 공짜로 주어진 것은 아니라는 걸, 우리를 위해 싸워 주신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 마음은 나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을 낳았다. 우리가 받은 것을 그대로 돌려 드릴 수는 없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돌려준다면, 언젠가는 돌고 돌아 그 분들에게도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누리고 받아온 것들이 너무나 많기에 나만 생각하며 사는 것은 너무 염치가 없는 것 같았다.
그렇게 1년의 시간이 지나 중학교 1학년이 되고, 날씨가 쌀쌀해진 11월 무렵 나에게 1년 전의 다짐을 실현할 기회가 찾아왔다. 1인당 만 원 가량의 성금을 내어 연탄을 사고,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연탄을 배달까지 해 드리는 연탄 배달 봉사 프로그램이었다. 그 날 난생 처음으로 연탄을 만져 보았고, 배달했다. 토요일 아침 일찍 모여 골목골목에 줄을 서서, 손에서 손으로 연탄을 전달했다. 연탄 한 장이 생각보다 싼데도, 난방이 힘들어 겨울을 힘겹게 살아가는 이웃들이 있다는 것도 이 봉사에 참여했던 계기가 되었다.
고된 여정에 솔직히 힘이 들었다. 하지만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연탄 줄이 계속 이어졌기에 내가 쉬면 전체에게 방해가 될 것이 분명했고, 힘들어도 쉴 새 없이 연탄을 날라야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다가 아무런 대가 없이 육체노동을 해야 했지만, 마음은 누구보다 가벼웠다. 내가 나의 힘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에 대한 기쁨은 생각보다 굉장히 컸다. 1년 전에 다짐했던 것이 떠오르면서, 내가 잊지 않고 다짐했던 것을 실천했다는 뿌듯함과 함께 앞으로도 이런 일을 계속 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우셨던 분들과는 비교가 안 되겠지만, 이렇게 사소한 일이라도 하면서 그분들께 진 빚을 조금씩이라도 갚아 나가고 싶다. 그 다음 해인 2018년 겨울에도 나의 마음은 이어졌고, 올해도 진심을 담아 연탄 배달을 할 생각이다.
누군가 나에게 ‘나라 사랑이 먼저인가, 이웃 사랑이 먼저인가?’ 하고 물어보면, 나라에 대한 감사함이 이웃에 대한 사랑이 되고, 이웃에 대한 사랑이 모여 애국이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곧 내 가족, 내 이웃을 위한 희생이고, 나와 내 가족, 내 이웃이 모여 국가를 이룬다.
옆에 있는 사람에게 건네는 따뜻한 도움의 손길이 모이면, 나라 전체가 어려움에 처한대도 끌어올릴 수 있는 힘이 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모든 사람이 ‘나’를 위한 ‘나’보다 ‘우리를 위한 나’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를 위하지 말란 말은 아니다. ‘우리’ 안에 ‘나’가 있으니까
<제16회 충·효·예 실천우수사례∥중학교∥최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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