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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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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와 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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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마음 하얀 마음
박성우
대전고등학교 1학년
박성우

할아버지와 탁구

매미 소리가 귀를 아프게 할 정도로 울리는 중3 여름방학 중 하루, 나는 나를 향해 날아드는 작은 공을 손에 든 라켓으로 받아 쳐냈다. 그리고 그 공은 탁자 한가운데에 세워져 있던 그물을 가뿐히 넘겼지만, 공이 탁자에 부딪히는 경쾌한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탁자 맞은편에서 이런 말이 들려왔다. “사흘 연속으로 지다니 운동 신경 좀 길러보는 게 어때?” 나는 숨이 가빠서 대꾸도 하지 못하고 탁자 옆에 있던 의자에 털썩 앉았다. 웃음을 띤 얼굴로 친구는 내 옆에 앉았다.
그리곤 손가락을 하나하나 펴가며 숫자 셈을 다한 뒤 말했다. “동네 탁구 대회까지는 3주 정도밖에 안 남았어. 나하고 팀을 맺었으니, 훌륭한 코치를 둔 거나 마찬가지이지만 네가 따로 스스로 운동을 안 하면 아무리 고급 기술을 배워도 몸이 안 따라줘서 소용이 없어.” 나는 동네 탁구 대회 상금을 받아 새로운 기타를 사려고 친구에게 같이 출전하자 부탁했다. 그때부터 친구는 나에게 탁구를 가르쳐주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집에서 가만히 있는 게 취미라고.” 말했다. “어르신 같은 생활이군.” 친구의 말에 놀리지 말라고 했다. 그러자 “어르신, 즉 나이가 많다는 건 부정적인 말이 아니야. 그러니 놀리려는 의도는 없었어.” 나는 그 말에 정곡을 찔린 느낌이었다. 그렇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나이가 많다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해왔다. 언제부터이었을까, 이유는 뭐였을까, 모르는 사이에는 나는 사고 관념 중 한구석에 나이가 많다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편견 없이 살겠다고 다짐한 나로서는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강력한 한 마디였다. 멍하니 있던 나와 친구에게 누군가가 소리쳤다. “이봐! 학생들 우리 마누라가 지쳐서 그런데 상대 좀 해줄 수 있을까?” 소리 난 곳을 바라보니 매일 부인과 함께 아파트 단지 내 탁구장에 나오시는 마른 체격의 할아버지가 손을 약간 높이 들고 있었다. 옆에 인자하게 보이시는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말에 당황한 듯 보이시며 우리에게 미안하다고 하셨다. 나는 망설임 없이 일어났다. 몇 십 분 뒤, 나는 기진맥진한 상태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할아버지의 탁구 솜씨는 친구의 실력보다도 훨씬 뛰어났다. 나이 때문에 실력을 간과하는 어리석은 짓을 해버리고 말았다. 조금 전에 다시는 편견을 가지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금방 어기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우리가 탁구 대회에 참가할 것이라는 걸 간파하셨다. 그리고 할아버지도 아내와 함께 출전할 것이라는 말씀도 하셨다. 그런데 뜻밖의 말이 들렸다. “내가 학생들을 위해 탁구 지도나 해줄까나?” 서로 분명 대회 맞수 관계이다. 왜 맞수를 도와주시려는 지에 대해 생각하며 의아한 표정을 짓자, 할아버지께서는 동네 대회는 전부 나이 드신 분들만 출전한다. 우리같이 젊은 사람들이 출전하는 건 드문 일인데, 실력이 부족해서 빨리 탈락하는 것이 아쉬워서 라고 말씀하셨다. 대회의 결과는 신경쓰지 않으시고 그저 대회를 즐기시려는 것으로 보이셨다. 하지만 대회의 승패가 중요한 우리에겐 상당히 좋은 기회였다. 내 옆에 있는 친구는 놀라움 반 기쁨 반 표정으로 감사하다고 연신 인사하고 있었다.
그 날로부터 2주하고 조금 더 지났다. 대회는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할아버지와의 고된 훈련 덕분이었는지, 처음 상태가 너무 형편없었던 건지 실력이 상당히 늘어난 게 느껴졌다. 정말로 대회 우승을 노려볼만한 실력까지 도달했다. 일취월장한 실력에 대해 기쁨을 느끼고 있을 때 옆에서 빠른 박자의 공 튀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탁자 앞에는 내 친구가 서 있었고, 그 맞은편에는 할아버지가 서 계셨다. 친구와 할아버지의 실력은 엇비슷해 보였다. 물론, 내 실력보다는 훨씬 좋았다. 끝날 것 같지 않아 보이던 공방은 결국 친구의 승리로 끝났다. 할아버지께서는 자신의 훈련 실력이 너무 좋아 자신보다 잘 치게 만들어놓았다며 웃으셨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드디어 우리는 결승전에 진출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상대로는 우리의 부부 스승님들이셨다. 경기는 비교적 빨리 끝났다. 결과는 간신히 우리가 승리를 얻어냈다. 상금은 나와 내 친구들이 함께하는 밴드 운영비로 사용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문득 스승님들께서 2등 상금을 어떻게 사용하실지 관해서 궁금해서 여쭈어보았다. 할아버지는 호쾌하게 웃으시며 할머니 생신 잔치에 사용될 것이라 하셨다. 액수는 충분하시다고 하셨다. 그러시더니 재능 있는 밴드가 잔치에 와주면 분위기가 한층 더 좋아질 것이라고 하셨다. 나는 새 기타 들고 가겠다고 목소리에 힘주어 말했다. 할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어주셨다. 며칠 뒤, 나는 새로 산 기타를 안고 경로당 문 앞에서 내 친구들과 함께 서 있었다. 나의 은혜 갚기에 아무런 대가 없이 함께 해주는 친구들이 고마웠다, 그리고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 우리는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지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 날의 공연은 무사히 마쳤다. 그리고 몇 주 뒤 탁구장에 가는 날이라고 정해둔 토요일에 탁구장에 들어섰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다. 대부분 모두 50세가 넘어 보이시는 분들이었다. 많은 분이 건강을 위해 탁구를 시작하셨다고 말씀하셨다. 사실 평소에도 건강을 위해 탁구를 시작하는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그들을 가르칠 사람이 없기에, 대부분 시작해서 얼마 되지 않아 포기하게 된다. 그런 사정을 알고 나서 탁구를 시작하는 분들에게 내가 익힌 기술을 전부 알려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단지 기술만 알려주는 것이 아니고 익힌 기술을 다시 남에게 알려주는 것을 신신당부하였다. 남에게 알려주는 과정에서 자신의 결점을 제대로 알 기회를 얻게 되기도 하고, 무엇보다 남들을 가르친다는 목표를 가지고 탁구를 배우면 쉽게 포기하는 경우는 줄어든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알려주는 교류가 생긴다. 교류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관계는 가까워진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탁구를 넘어선 자신들의 취미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모두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기술을 공유하는 걸 망설이지 않는다. 경쟁자로서 바라보는 게 아닌 동료로 봐 주는 것처럼 기쁘게, 열심히 가르친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한 가지의 편견을 또 바로잡게 되었다. 도시 속 이웃들은 마음이 황량해서 교류가 없는 게 아니라, 교류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가졌지만, 교류를 시작할 동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몇 주 전, 어느 한 유쾌한 할아버지께서 내게 그런 동기를 심어주셨다.
내 편견을 고쳐주는 것을 넘어 행동마저 바꿔주신 할아버지는 여전히 그런 편견을 가진 사람들을 향해 말을 걸고 계셨다. 이렇게 해서 나의 마음이 따뜻해지는 정말로 무더운 여름 이야기는 이걸로 끝이다. 이 여름은 도시 속 나의 인생의 큰 반환점이었다는 것은 마음 깊이 기억될 것이다

<제17회 충·효·예 실천우수사례∥고등학교∥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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