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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별에게 이름을 붙여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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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글밭
김영찬
김영찬

이름 없는 별에게 이름을 붙여주다

밤하늘의 별을 마주하고 있으면 나는 어디서 왔을까 그리고 지금 나는 어디로 흘러가는 존재일까. 혜성처럼 꼬리를 문 생각들로 밤잠 설치던 기억이 있다.

점성술(astrology)이란 별을 보고 미래를 점치는 학문. 그런데 별을 연구하는 천문학 ‘astronomy’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말로써 ‘이름이 없는 별에게 이름을 붙여주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아직 이름이 없던 별에게 이름 붙여 작명하는 것으로 시작된 학문이라니, 참 가슴 떨리는 일이기도 하다. 밤하늘의 별을 사랑하던 고대인들은 한밤중의 별에게 말을 걸곤 하였겠지. 별에게 자주 다가가 그 이름을 불러주었을 테니까 사람과 별 사이가 당연히 다정했을 것이다.
먼 우주까지의 거리, 별의 탄생과 소멸, 별의 밝기와 색깔 등에 대한 천체물리학의 기틀을 세우고 홀연히 세상을 떠난 찬드라세카르 박사는 지금쯤 별이 되어 빛나고 있을까. 초신성 이론을 설명해준 천체물리학자 찬드라세카르 박사. ‘찬드라’는 ‘달’ 또는 ‘빛을 내다’라는 뜻을 지닌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그는 파키스탄 펀잡주 라호르(당시에는 영국령 인도)에서 태어났다. 그의 삼촌 벵카타 라만 또한 노벨상을 수상한 물리학자이기도 하다. 찬드라세카르는 12살에 첸나이로 이주, 거기서 학업을 마친 뒤 20살이 되던 해에 영국으로 유학, 1933년 박사학위를 받는다.
그의 대표적인 업적은 백색왜성에 대한 연구. 태양보다 약 1.44배 이상의 무거운 질량을 가진 별은 백색왜성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 것. 태양처럼 스스로 빛을 내는 항성은 수소를 모두 소모하고 나면 헬륨 대신 철처럼 무거운 원소를 만들어낸다. 그 후 자신의 중력을 이겨낼 압력을 잃은 그 별은 결국 붕괴될 수밖에 없다는 것. 붕괴된 별은 질량에 따라 운명이 달라지는데, 질량이 태양과 비슷하게 가벼운 별은 백색왜성이 되지만 태양보다 무거운 별은 폭발해서 초신성이 되어 폭발 후 남는 것이 중성자별이라는 것이다.혁신적인 이 이론은 하지만 학계에서 맹비난과 배척을 당한다. 특히 그와 이론적 적대관계에 있던 영국 천체물리학계의 거물 아서 에딩턴과의 논쟁은 그를 탈진상태로 몰고 갔다. 당시 천문학계를 주도하던 에딩턴은 찬드라세카르의 이론이 터무니없는 공상에 불과하다고 노골적인 조롱으로 무시하고 나섰다. 그 당시 블랙홀의 존재란 상상에 불가한 가설로 치부되던 때였기 때문. 한 발 앞선 자신의 이론적 근거를 설명할 환경을 얻지 못해 절망에 빠진 찬드라세카르는 에딩턴과의 논쟁에 지친 나머지 급기야 백색왜성 연구를 포기하려고까지 했다. 그러다가 폐쇄적인 영국의 천문학계를 떠나 미국으로 간다. 결국 찬드라세카르의 초신성이론이 옳다는 것을 알게 된 미국의 천체물리학계는 그의 혁신적인 이론을 높이 평가하기에 이른다.
초라한 아시아 이민 출신의 찬드라세카르가 이 같은 명성을 얻기까지 그가 겪은 시련과 고통은 눈물 나는 것이었다.

나는, 찬드라세카르 박사가 시카고 대학교 교수로 지낼 때 있었던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기 위해 이처럼 장황한 서두를 꺼냈다.
후학을 지도하는 그의 열정이 얼마나 겸손하고 신실했던지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일화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단 두 명의 학생을 위해서 160km 원거리까지 차를 몰고 가서 기꺼이 가르치는 열정을 보였다. 헌신적인 그의 노력은 마침내 큰 결실을 맺게 되는데 두 명의 제자가 1957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된 것. 바로 그가 가르친 T. D. Lee박사와 C. N. Yang박사로 구성된 천문학연구팀이 노벨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자신이 지도한 제자가 노벨상을 타니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그러나 정작 찬드라세카르 자신은 상을 받는 일 따위에 집착하지 않고 묵묵히 연구에만 몰두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생애는 더욱 빛나는 것.

휴가 중인 어느 날 시카고 대학에서 방학동안 천체물리학에 관한 특별 강의를 부탁하는 전화를 받는다. 그는 흔쾌히 이를 승낙, 강의를 준비했다. 그런데 몇 주가 지난 뒤 수강을 원하는 학생 수가 너무 적어서 할 수 없이 특강을 취소해야 될 형편이라는 전화를 받게 된다. 그러나 찬드라세카르 박사는 개의치 않았다. 단지 두 명이 수강신청을 했을 뿐 관심을 끌지 못했다는 게 시카고 대학 측의 대답이었지만 두 대학원생을 위해 기꺼이 강의하겠다고 했다. 유난히 추운 겨울이었지만 그는 2시간을 달려가 1주일에 두 번씩 두 학생에게 열과 성을 다해 강의를 한 것이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뒤 스웨덴 한림원은 두 천체물리학자들에게 공동 노벨물리학상을 수여한다.
양전닝(C. N. Yang)과 리정다오(T.D.Lee), 중국계 미국과학자인 이들은 노벨상 수상식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 둘을 위해 헌신적으로 강의해 주신 찬드라세카르 박사님에게 이 영광을 돌립니다. 우리를 이 자리에 서게 해주신 분이거든요.”


그로부터 무려 26년 후에야 비로소 찬드라세카르 박사 자신도 노벨상의 영예를 안게 된다. 1910년에 태어나 스무 살에 영국유학, 1936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1944년 이래 시카고대학교 교수로 봉직, 1953년에 미국시민권을 얻었고 1983년 노벨물리학상을 타기까지 후학을 지도, 1995년에 별세하여 별이 된 천체물리학자 찬드라세카르(Subrahmanyan Chandrasekhar).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미항공우주국 NASA는 1999년 그의 이름을 딴 찬드라엑스선관측선을 우주로 쏘아 올렸다. 그의 이름을 딴 별 하나가 새로 태어난 것이다

기고자 소개

김영찬

시인

1973년 무크지 <화전문학>으로 작품 활동시작,

시집 <불멸을 힐끗 쳐다보다>, <투투섬에 안 간 이유> 등.

현재 <웹진 시인광장>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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