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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지도연구원

대전청소년

2019년 겨울호
청소년이 힘들 때
국번없이 1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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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디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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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함께
강표성
강표성

와디에 서다

그 소녀들을 만난 건 다데스 협곡에서였다. 붉은 바위산과 회색 절벽들이 하늘과 맞닿아있는, 사람 흔적 하나 없는 사막의 한 귀퉁이였다. 얼마나 닳고 닳았는지 바위들이 몽글몽글해 보이는 일명 ‘원숭이 손’계곡에 넋을 놓고 있는데 어디선가 환호성이 들렸다. 바위사이를 메뚜기처럼 폴짝거리며 뛰어내려오는 소녀들이었다.
그러나 우리를 보자마자 눈꼬리가 샐쭉했다.
모로코의 베르베르인들 중에는 아직도 카메라 앞에 서는 걸 꺼려하는 이들이 있다. 사진을 찍으면 영혼을 빼앗긴다는 속설을 믿기 때문이다. 이런 어른들과는 달리 아이들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카메라 앞에 선다. 북 아프리카 대륙의 오지에 살다 보니 낯선 이들을 보는 기회도 많지 않거니와, 사진 찍은 후에 이방인들이 쥐어주는 과자나 동전의 맛을 알기 때문이다. 무르춤하니 서있는 소녀들이었다. 발 빠른 남자애들이 사진 모델 일을 선수치고 말았으니 여행자들의 주머니가 비어있음을 눈치 챈 것이다. 검은 눈이 더욱 깊어보였다. 아무렇게나 둘러쓴 히잡이 발목까지 치렁치렁한 아이는 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고, 곱슬머리에 턱 선이 뾰족한 애는 언니인 듯싶었다. 여행 가이드 말에 따르면 엄마 혼자서 키우는 자매란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그것도 풀 한 포기 자라기 힘든 사하라 사막에서 여성 혼자 아이들을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들지. 엄마는 반나절이나 걸어서 일하러 가고, 아이들은 여행자들이 주는 디르함 동전이나 과자를 쫓아내려왔는데 허탕이었으니.
인샬라~~
자매들 뒤의 풍경이 새삼 다가왔다. 해발 천오백 미터쯤의 붉은 단층 지대가 끝없이 펼쳐 있다. 마치 천지창조 이전의 세계 같다. 누구의 발길도 쉬 허락하지 않는 광야는 여행자 보기에는 경이롭지만 직접 살아가기에는 참으로 막막해 보인다. 무거운 마음으로 눈길을 돌리는데 무언가 시선을 잡아끄는 것이 있다. 초록이다. 벼랑 아래의 나무들, 보석처럼 박혀 있는 그것들로 인해 눈이 화안해진다. 저리 삭막한 바위산 아래 나무가 있다는 건 그 아래 뿌리를 내릴 만한 땅이 숨어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말로만 듣던 그 와디란 말인가.
와디(wadi)는 사막의 마른 계곡을 말한다. 차를 달리다 보면 모래들판 위로 강이나 시내의 흔적인 마른 골짜기가 보인다. 강수량보다 증발량이 훨씬 많아 탈이지만 사막에도 비가 내린다. 갑자기 내린 비에 물살이 휘몰아치고 모래나 자갈들이 떠밀리기도 한다. 그 밑바닥에 퇴적물이 쌓이게 되고, 척박하나마 풀이나 나무가 자라나는 바탕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푸른 식물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들게 되고, 예전에는 아라비아 대상들이 오가는 길목이 되기도 했다는 그곳은 지금도 중요한 삶의 터전이다. 꾀죄죄한 아이들을 본 뒤라서 그런가, 벼랑 아래의 나무들이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애잔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오달지다. 제 안의 생명을 키우기 위해 갈증의 시간을 견뎌온 와디가 낯선 이슬람 여인 같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여인을 생각하며 모성을 떠올리는 건 나 또한 엄마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얼마나 긴 갈증을 견뎌야 했을까. 저 생명은 뜨거운 햇살과 막막한 추위를 온 몸으로 견뎌내며 자신의 중심을 곧추세웠겠다. 뿌리에 온 힘을 쏟았으리라. 돌과 자갈 틈새를 비집어가는 촉수, 하늘이 준 햇볕과 땅이 준 물로 목숨을 일궈냈다. 그 작은 것의 안간힘과 이를 지키기 위한 바탕의 간절함을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누군들 오아시스를 마다할까. 넓은 야자수 그늘과, 푸른 물그림자, 먼 길을 달려 온 아라비아 상인들, 달콤한 과일과 춤추는 댄서들, 그리고 밤하늘의 별들.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멋있다. 이런 이미지 때문에 여행길에 올랐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책이나 영화에서 본 낭만은 그려진 모습일 뿐, 모래 바람에 잔뜩 그슬린 나무를 보는 일도 쉽지 않으니. 어쩌다 마주친 풀 한 포기도 각별하다. 묵묵히 제 자리를 지켜내는 것들이 귀해 보인다. 살아있는 한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게 생명이다. 그럴수록 무게중심을 낮게 잡아야 한다. 뿌리를 깊게 내려 바탕을 잘 유지해야 기다리고 기다리던 비가 왔을 때 잘 흘러넘치게 된다. 자신을 적시고 주위를 적시며 이웃을 살리는 물길이 될 수 있다. 그리하여 생명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사막에 와서 도시의 나를 돌이켜본다. 시간과 공간의 밀도를 의식해야 했고, 세상의 척도 안에 스스로를 우겨넣었다. 늘 조바심이 났다.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는 생각에 갈증이 났다. 그러나 거칠 것 없는 모래벌판에서 삶의 여백을 생각한다. 사막이 허허로움으로 오히려 충만해지듯 조금 더 적막해지는 것도 괜찮겠다. 꼭 무엇이 되지 않아도 좋다. 제 자리에 든든히 뿌리내리고 있는가를 살필 일이다. 또한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조급해하지 말고 현재의 나를 다독여야지. 그러다 생애 어디쯤에선가 최고의 오아시스와 만날 수도 있을 터.
와디, 그것은 사막의 숨어있는 젖줄이자 살아 움직이는 밑그림이다. 자신만 고집하지 않고 주변으로 스며드는 물길 덕에 저리 건조한 사막도 의연히 살아있는 것이다. 사막이 살아있는 것은 와디가 있어서고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흘러가며 적시는 물길들이 있기 때문이다. 저마다의 갈증을 견디며 생명을 키워가는 것들은 어디서나 아름다운 바탕이 된다

기고자 소개

강표성

수필문학 등단

대전수필문학회장

수필집 『마음싸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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