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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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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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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글밭
강승택
강승택

말 한 마디

프로야구선수 가운데 홍성흔이라는 선수가 있다. 지금은 은퇴해 국내 최초 메이저리그 코치로 활동하고 있는 잘생긴 청년이다. 현역으로 뛰던 시절 나는 그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유라면 단지 하나, 내 고장 연고 팀 소속이 아니라는 점 때문이었다. 어쩌다 그가 홈팀과의 경기에서 결정적인 한 방을 날린 후 한쪽 손을 번쩍 치켜올리며 호기롭게 운동장을 돌 때면 나는 아쉬움과 아픈 마음으로 바라봤던 기억이 있을 뿐 어떤 호감도 없었다. 그랬던 그를 ‘TV는 사랑을 싣고’라는 프로에서 만났다.
초등학교 시절 소년은 불우했다. 우연히 감독 눈에 띄어 야구 글러브를 끼긴 했지만 장래에 대한 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평범한 나날을 보내던 소년에게 운명과도 같은 날이 찾아왔다. 야구선수 이해창과의 만남. 1982년 프로야구 원년 멤버이자 1번 타자였던 이해창 선수는 당시 소년에겐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런 그가 이날 하루 훈련장에 머물며 아이들 타격 방법과 경기요령을 지도했다. 그리고 유독 눈빛이 똘망똘망했던 소년에게 예언과도 같은 한 마디를 남기고 떠났다.
“너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구나. 절대 포기하지 마라. 반드시 너의 이름이 넓은 야구장에 울려 퍼지는 날이 올 거다”
그 후 소년은 이를 악물고 고난을 이겨냈다. 부모님의 이혼과 가난도, 몇 차례의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포기해야 할 상황에서도 소년은 그 때 들었던 한 마디를 가슴에 품고 놓지 않았다. 그리고 30여 년이 지난 후 두 사람은 극적인 해후를 하게 되는데 한 시간 남짓 이 프로를 보면서 나는 몇 차례 울컥했는지 모른다. 두 사람의 인연이 아름답기도 했지만 말 한마디의 힘이 이토록 컸던가 하는 생각도 보는 내내 떠나지 않았다.
나는 40년 가까운 세월을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숱한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등교에서 하교까지 아이들 생활 하나하나를 챙겨야 하는 초등학교 교사에게 말은 유일한 수단이요 무기였다. “조용히 해라, 뛰지 마라, 싸우지 마라” 하루에도 수십 번 쏟아내는 그 많은 말의 어미 처리는 한결같이 “~ 하지 마라”로 끝났다. 질책과 지시, 아니면 훈화 적 성격이 강했을 뿐 칭찬과 격려와는 거리가 멀었다.
어쩌다, 졸업한 아이들의 모임에 초대받아 나가보면 “선생님, 저 그때 많이 혼났습니다.”와 같은 인사는 들을 수 있어도 “선생님의 한 마디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는 감동적인 회상은 없는 것으로 보아 나는 칭찬에 인색한 선생님이었음이 분명하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어린 시절 나는 주변 어른들로부터 따뜻한 칭찬이나 격려의 말 한 번 듣고 자란 기억이 없다. 해방 후 목숨 걸고 넘어온 3·8선과 6·25 피난길. 그리고 1·4후퇴로 이어지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아이들은 언제나 거추장스러운 존재였을 뿐 사랑으로 보살펴야 할 대상은 아니었다. 아이들이란 의례 시달리며 크는 것으로 알았다.
만일 그때 누군가로부터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면 나 역시 아이들을 많이 사랑했을지 모른다.
이쯤에서 어디선가 읽었던 글 한 구절이 생각난다.
“ 한 사람에게 받은 깊은 존중과 사랑이 평생을 살아 낼 힘이 된다.”

기고자 소개

강승택

『한국수필』로 등단

한국수필가협회 회원. 국제PEN 회원. 한국수필작가회 이사.

대전문총 회원. 대전수필문학회 회원.

저서 : 『목척교 위의 어머니』 『살던 집 순례하기』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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