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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가을호
청소년이 힘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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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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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글밭
백명철
백명철

고양이

노인 부부만 사는 조용한 아파트에 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 왔다. 생후 일 년이 다 되어 가는 암컷이었다. 외지에서 직장생활을 했던 막내가 무슨 마음에서인지 그쪽 생활을 접고 함께 살았던 그 녀석을 데리고 온 것이다. 취직이 어려운 세태인데 별 대책도 없이 선뜻 직장을 그만둔 막내의 처사가 내심 마뜩찮았기  때문인지 함께 온 고양이에게도 별로 정이 가지 않았다. 잿빛 털에 눈이 동그랗고 태어날 때부터 등뼈가 왼쪽으로 삐딱하게 굽은 불구의 고양이 이름은 ‘산이’였다.
산이는 똥, 오줌을 가렸다. 변기를 느끼면 거실의 한쪽 구석에 마련해준 모래통에 대소변을 함께 해결했다. 모래는 수분을 빨아들여서 똥오줌과 함께 덩어리로 굳어지는 특별한 것이었다. 막내는 때에 맞춰 사료와 함께 모래를 인터넷으로 구매했다. 택배 온 모래 자루는 아내가 배달시키는 이십 킬로 쌀자루만큼이나 무거웠다. 먹이도 커피 원두처럼 생긴 짙은 갈색의 알갱이인데 고양이가 먹을 때는 알사탕이 부서지듯이 바드득 소리가 났다. 사람이 먹다 남은 비린 생선 찌꺼기는 처음부터 입맛을 들이지 않은 탓인지 냄새를 맡다가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예상했던 것보다 깔끔스러운 행동에 녀석과 함께 사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람이나 동물이나 하루 이틀 만에 그 진면목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란 것을 곧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빠진 털이 문제였다. 눈에 잘 띄지 않은 채 공중에 하늘거리기도 하고 바닥에서 소리 없이 구르며 발길 따라 집안의 온갖 곳으로 스며드는 털은 정말 골칫거리였다. 짙은 색깔의 옷이나 양말에는 어느새 보풀처럼 잿빛 솜털이 나풀대고 있는가 하면 때때로 식탁의 찬그릇에서도 발견되어 질겁하게 했다. 사시사철 열어놓고 살았던 주방 미닫이를 이제는 항상 닫아야 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매일 아침 막내가 치운 똥오줌의 모래덩이는 지퍼 백에 모아두었다가 버리는데 아무리 밀봉해도 퀴퀴한 냄새를 풍겼다. 나는 점차 애완동물과 함께 지내는 것이 항상 좋기만 한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산이는 집안 식구가 누구라도 현관에 들어서면 번개같이 달려 나와 꼬리를 살랑이며 반갑게 맞이해 주는데 막내에게는 더 유별나게 굴었다. 마중 나온 고양이를 나는 발로 슬쩍 밀어내지만, 막내는 안아 올려서 목덜미를 쓰다듬고 눈을 맞추고 가슴에 안았다. 제 부모에게는 건성으로 귀가 인사를 하면서도 녀석에게는 사뭇 다르게 살뜰히 대하는 태도에 배알이 꼴리기도 하지만 세대 차이려니 여기며 못 본 체했다.
산이와의 동거가 한 달 정도 지난 어느 날, 외출에서 돌아오니 아내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산이가 아내 방에 똥과 오줌을 싼 것이었다. 아내가 외출할 때 녀석이 방 안에 있는 줄 모르고 문을 닫고서 나왔고, 용변이 급한 놈이 그만 여행용 손가방 위에 밤톨만 한 갈색의 똥과 함께 노란 오줌을 질겨 놓은 것이었다.
평소 아내의 방은 첫눈에 너저분하게 보인다. 한쪽 벽면에는 조립식 옷 걸대에 철 지난 옷가지가 빼곡히 걸려있고, 연이은 다른 벽면에는 시집올 때 가져온 구식의 서랍장과 평소 사용하지 않는 가방이나 시장바구니, 손주들의 장난감 등이 어지러이 널려있어 언뜻 보기에 손길이 끊긴 창고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는 다른 식구가 불쑥 방문을 열 수 없는 안주인만의 공간이다. 이 방의 유일한 창문이 있는 벽면 아래에 출가 전 딸들이 사용했던 흠집투성이의 책상이 놓여 있고 그 위의 벽 중간쯤에 십자가상이 반듯하게 걸려있다. 매일 밤 아내는 그곳에 촛불을 켜놓고 기도를 한다. 나도 간혹 그곳 걸상에 앉아보면 고요하고 정숙한 느낌이 들어 부지중에 자세를 바르게 한다. 하지만 물정을 알 리 없는 짐승은 그 공간에, 또 아끼는 손 가방위에 실례를 했으니 아내가 무척이나 속상할 만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날,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막내가 저녁 식사를 하러 집에 왔다. 아내의 자초지종을 들은 그의 첫마디는 “에이, 엄마가 좀 챙기지.”였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속에서 ‘저 버릇없는 놈이’라는 화가 치밀었다. 쏘아보는 내 눈길에 막내가 찔끔했다. 세대가 다른 식구가 한 집에 산다는 게 비록 부모와 자식 간이라고 해도 마냥 반길 일만이 아니란 것은 익히 짐작하고 있었지만, 불쑥 튀어나온 아들의 대꾸는 그것을 새삼 확인시켜 주었다.
그때부터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 산이를 달갑지 않은 눈길로 보기 시작했다. 막내에 대한 서운한 마음이 그렇게 표현된 것 같기도 했다. 하루빨리 자립하여 골칫덩이를 데리고 나가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는 은근한 바람까지 생겼다. 하지만 이런 심경변화를 모르는 산이는 여전히 나를 좋아하였다. 외출에서 돌아오면 어느 구석에 있다가도 현관으로 달려 나와 코를 발등에 대고 볼을 부비며 누구보다 먼저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때때로 녀석의 순수하고 한결같은 애무 공세가 쌀쌀하게 눌어붙은 옹졸한 나의 마음을 부끄럽게 했다.
어느 날, 산이가 이상한 행동을 했다. 꼬리와 엉덩이를 치켜들고 뒷발로 쉼 없이 바닥을 긁었다. 이미 몇 번 이러한 일을 겪은 막내는 일주일 정도 지나면 자연스레 지나가니까 걱정하지 말라며 ‘발정기’라고 했다. 알고 보니 야릇한 그 행동은 수컷을 애타게 부르는 몸짓이었다. 그냥 보고 있는 것이 민망하고 애처로웠지만 당장 뾰족한 해결책이 없었다. 그저 제풀에 지쳐 ‘발정’의 열기가 하루빨리 삭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자 산이의 울음소리가 가냘프고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졌다. 아내는 자식을 키운 여인의 직감으로 어딘가에 탈이 난 것이 틀림없다고 단언했다. 마음이 급해진 막내와 나는 인근의 동물병원으로 녀석을 데려갔다.
고층아파트가 즐비한 큰 길옆의 동물병원에는 남녀 수의사가 각각 한 명이었다. 증상을 들은 여자 수의사는 직원에게 초음파와 엑스선 사진을 찍게 한 후 ‘난소에 염증이 있다’며 그것의 제거와 함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중성화 수술을 권했다. 또한 염증이 심하니 당장 수술하는 것은 어렵고 예약을 하라며 모두 칠십만 원의 치료비를 청구했다. ‘칠십만 원이나?’ 아무리 애완동물에게 의료보험이 없다손 치더라도 너무 비싼 것 같았다.
십여 만 원 가량의 당일 치료비를 지불하고 사흘치의 항생제를 들고 나오는데 뭔가 부당한 처사를 당한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풀이 죽은 막내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여기저기 동물병원을 검색하더니 마침내 이십만 원에 수술해 주겠다는 곳을 찾아내고 쾌재를 질렀다. 그곳은 대학가 옆의 변두리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병원 따라 너무나 큰 차이가 나는 치료비 때문에 ‘복마전 같다’는 말이 자꾸 떠올랐다.
며칠 뒤, 산이의 수술은 삼십여 분만에 끝났다. 집에 돌아온 후에도 마취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고 거실 바닥에 누워있었다. 안아 보니 아랫배 부분의 털이 깎여 있었다. 못할 짓을 한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다시는 수컷을 그리워하지 않아 심신이 편안할지는 모르겠지만 생의 많은 부분을 유린당했으니 그 보상은 누가 어떻게 해 줄 수 있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애초에 우리 집에 오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수술 후 두 달이 지났다. 생기가 넘치는 녀석은 오늘도 소리 없이 다가와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나를 빤히 쳐다본다. 살래살래 흔들던 꼬리를 멈추고 뒷다리를 웅크리더니 곧바로 책상 위로 뛰어오른다. 밀쳐 내도 다시 뛰어오른다. 제 딴에는 무슨 재미난 장난을 하는 것으로 여기는 것 같다. 아무리 짐승이라도 이런 짓거리를 주인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터인데 그것을 조금도 마음에 두지 않고 계속 집적이며 애정 공세를 펼친다. 귀찮지만 아주 밉지는 않다.
요즈음에는 단순한 애완동물을 반려동물이라고 하며 거의 가족이나 친구와 같은 지위에 올려놓는 추세이다. 애완동물이 항상 반갑게 꼬리를 흔들며 주인의 마음을 위로해주기 때문인가. 하긴 막내도 삭막한 객지의 원룸 생활에서 자기를 기다려줄 무엇이 필요했던 것 같다.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자기를 좋아해 주는 마음 편한 상대가 그립지만, 이해타산이 판치는 각박한 현실 세계에서 이러한 파트너를 만나기가 어려워지자 사람들은 언제나 생글거리며 맞아주는 동물에게서 그 대역을 찾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고양이의 수명은 십여 년 정도이며 칠 년이 지나면 늙음의 단계로 접어든다. 지금은 산이가 한창 때이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노년을 맞게 되니 그때는 나와 함께 늙어가며 더욱 친구 같은 반려자가 될 것인가. 녀석은 지금, 쓰다듬는 손길에 온몸을 맡긴 채 소파에서 한잠에 빠져있다. 나를 온전히 믿는 눈치다. 사람 사이에서처럼 이제 녀석과 나 사이에도 함부로 끊을 수 없는 인연의 끈이 생긴 것이다. 앞다리에 턱을 괴고 편안히 잠자고 있는 산이를 보며 사람이나 동물이나 모두 잘 늙어가기를 빈다

기고자 소개

백명철

계간 《수필세계》 신인상 등단

한국에세이포럼 회장

영남이공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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