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청소년지도연구원

대전청소년

2020년 가을호
청소년이 힘들 때
국번없이 1388
24시간 연결됩니다

조화롭고 꿋꿋한 삶을 위하여

본문

선생님 글밭
김채운
김채운

조화롭고 꿋꿋한 삶을 위하여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극단적으로 아름답지만도, 추하지만도 않아요. 그리고 한없이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을뿐더러 제각각 양면성과 다양성을 지니고 있지요. 여러분이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인가요?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선(善)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나에게 좋은 것? 나에게 호의적인 태도로 대하는 것? 혹은 나를 인정해주고 오롯이 내 편이 되어주는 것? 그렇다면 악(惡)은 또 어떻게 정의내릴 수 있을까요? 나에게 해를 끼치고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태도? 엄밀히 따져보면 선과 악을 구분하는 뚜렷한 잣대는 애초에 없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제 아무리 올바른 것이라 해도 내 삶에 추호의 도움이 안 된다거나, 불쾌하고 불편한 감정을 갖게 만든다면 그것은 진정 선(착함)이라고 말할 수 없을 테니까요.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는 주인공 싱클레어가 자신이 꿈에서 본 그림을 그려서 데미안에게 보내는 이야기가 나오지요. 그리고 얼마 후 그는 자신의 책갈피 속에서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세계를 파기해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라고 쓴 데미안의 답장을 발견해요.
‘나’를 감싸고 있는 ‘알’의 세상은 어머니의 자궁 속처럼 완전하고 따스하며 안전한 세계이지요. 그렇지만 그 안에 계속 머물면서 벗어날 궁리조차 않는다면 그곳은 또 다른 감옥과 다름없을 거예요. 그 단단한 틀을 깨고 예측불허의 세상으로 나오는 일은 제2의 탄생이며, 어른으로 성장해나가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과정인 것이지요. 첫 번째 어머니 몸으로부터의 탄생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타의에 의해 일어난 일이지요. 반면에 두 번째, 세 번째 연이어 견고한 알의 껍데기를 깨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오는 과정은 자발적이며 자의적인 일, 따라서 보다 유의미한 통과의례라고 할 수 있어요.
저는 데미안이라는 정신적인 조력자, 혹은 귀인과의 만남을 통해 싱클레어가 한 인격체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그린 헤르만 헤세의 소설을 연거푸 읽었어요. 데미안을 차츰 알아갈수록 그의 매력과 준수한 정신세계에 흠뻑 빠져들게 만드는, 그는 그 시절 제 마음 속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거든요. 저와 두세, 네댓 살 터울의 언니들과 오빠의 영향을 받아, 중학교 1학년 때 『데미안』을 처음 접하고는 퍽 실망했어요. 사실은 도대체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맥락도 의미도 도저히 알아채지 못했거든요. 그냥저냥 완독은 하였으나, 주제를 파악하지도 못하고 그저 인내심을 갖고 글자만 읽어냈다고나 할까요?
하여 이 소설이 왜 그리 유명하다는 건지, 무슨 교훈이나 흥미가 있는 것인지 회의에 빠져버렸지요. 그도 그럴 것이 그 즈음 삶을 이해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아직은 너무 어렸기 때문일 거예요. 저는 여전히 동요를 좋아하고, 얄포름한 동화책 따위 읽기를 즐겼을 뿐, 인생과 문학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이해의 폭은 좁았거든요. 그럼에도 데미안이라는 인물에게 품은 일말의 호기심이 소설 읽기를 끝내 포기할 수 없도록 만든 근거가 아닐까 생각해요. 십대에 처음 데미안을 만난 이후로 이십대, 삼십대, 사십대, 그리고 오십대가 된 지금까지도, 그에게는 아직 더 찾아내야 할 무언가가 남아 있어요. 거듭거듭 책을 읽을수록 작가의 숨결과 숨겨 둔 보물과 같은 진면목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해요.
아브락사스(αβραξαζ)는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시키는 상징적인 신”이래요. 보통 신은 전능하고, 지극히 선할 것이라는 선입견과 다르게 빛의 세계와 어둠의 세계를 함께 소유하고 지배하는 신을 의미해요. 싱클레어는 어느 세계에 속하든 다른 반쪽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함께 죄의식에 시달려야 했지요.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그런 편협한 반쪽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충만한 세계로 나아갈 것을 조언한 것으로 파악할 수 있겠지요.
대충 살아도 삶이라 할 수는 있겠지요. 그렇지만 우리는 기왕지사 지구상에 태어나 보란 듯이 살아내고, 의미 있는 무엇인가를 성취한 연후에 떠나야 하지 않을까요? 살면서 크고 작은 일들, 문제적 상황들은 다반사일 거예요. 그 누가 삶의 정답을 알겠어요. 어떤 것은 쉽게 해결책을 찾아지는 반면 어떤 것은 힘에 부치기도 하고, 때론 회피하고 싶을 만큼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감으로 가슴을 짓누를 수도 있을 거예요. 그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에게 닥친 모든 일들에 주체적으로 맞서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삶에 대한 균형감각과 과감히 자신을 감싸고 있던 세상, 편견과 선입견으로 표상되는 알, 그 단단한 껍질을 깨고 나올 수 있는 용기와 강단이 필요해요. 기탄없이 알을 깨고 나와 창공으로 힘차게 날아오르세요. 그 지난한 과정을 통해 지극한 선과 지극한 악, 아름다움과 추함, 눈부신 빛과 짙은 어둠의 영역, 내면에 잠재한 양면성들이 온전하고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나갈 수 있을 테니까요.
자기 삶의 주인이자 주체가 되어, 삶의 중심을 올곧게 세울 때 공동체 속에서도 나름의 힘을 발휘하고, 나아가 우주의 쓸모 있는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을 거예요. 삶의 목표를 향해 확고히 방향키를 틀어쥐고 매 순간 자신을 믿고 험난한 여정을 잘 헤쳐 나가길 바라요. 적당히 안주하려고도 하지 말고 일희일비도 하지 않으며 뚜벅뚜벅 더 큰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여러분들의 멋진 삶이 성취되길 진심으로 응원해요

기고자 소개

김채운

2010년 계간 《시에》를 통해 문단활동을 시작함

한남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한남대학교 출강

대전작가회의 이사 및 <큰시>동인으로 활동

시집 : 『활어』(2011), 『너머』(2019)가 있음

맨위로 이동 맨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