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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지도연구원

대전청소년

2020년 가을호
청소년이 힘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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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글밭
강여울
강여울

나는 지금 소백산 줄기 단양의 사인암舍人巖 앞에 서 있다. 세월의 비바람이 시나브로 다듬어 왔을 기암괴석이 수직의 발아래서 맑디맑은 남조천에 자신을 씻어 온 듯 단아하다. 아니 물이 오히려 바위에 몸을 씻어 어린 물고기들을 키워내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물에도 고기들이 다니는 길이 있듯이 깎아지른 모양을 한 돌들도 층층이 틈을 내어 저희들끼리 길을 튼 듯하다. 
사인암의 미로처럼 이어진 틈, 그 틈들은 소나무를 비롯한 갖가지 나무와 풀들을 키워내고 있다. 그것들은 천 년 침묵의 바위를 믿는 듯 불평 없이 그 틈에 뿌리를 박고 푸른 생을 살아내고 있으되 바위를 넘보지 않는다. 그렇게 뿌리가 숨 쉬는 그 틈들은 돌들이 서로를 당겨 이어주는 힘이 되어 천만 년 세월을 버티어 온 것이리라.
   틈들이 장관의 한몫을 연출하는 사인암을 바라보며, 틈이란 것이 필요하지 않은 곳에서는 파괴의 징조인 균열이 되지만, 필요한 곳에서는 예술이 되기도 하고, 더욱 견고한 힘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틈의 힘을 믿지 않고서야 보기만 해도 아찔한 암벽 끝, 비좁은 돌 틈에서 소나무가 그렇듯 늠름할 수 있을 것인가. 결국 사인암이 아름다운 것은 크고 작은 틈들이 적당하게 암석들을 엮고, 뿌리 또한 그 틈을 누비며 바위와 돌을 잡아 주기 때문이다.  
사인암 아래 너럭바위에 새겨진 장기판과 바둑판 모양의 틈 또한 상대의 틈을 노리는 게임이 아니던가. 사람의 삶이란 것도 서로의 틈을 찾아내고 그 틈을 채워 가는 것이 아닌가 한다. 아슬아슬하게 깎아지른 암벽 아래 장기, 바둑을 두며 신선처럼 살아도 사람이란 그 암벽의 틈바구니에 사는 나무들보다 짧게 머물렀다 가는 것이다. 그래서 우탁 선생의 인생무상을 읊은 탄로가도 이곳의 절경이 만든 것이리라 여겨진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장기판이며 바둑판 모양으로 갈라진 바위들은 그곳에서 허허실실 틈을 찾던 사람들을 추억하듯 세월의 흔적을 안고 있다.  
십여 년 전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지었었다. 건축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경험도 없어 무조건 단단하고 좋은 자재만 쓰면 튼튼한 집이 되는 줄 알았다. 콘크리트며 벽돌이며 타일까지 최고의 강도를 가진 것을 선택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몇 해가 지나지 않아 집 안팎으로 적지 않은 균열이 생겼는데 그 균열의 틈마다 먼지가 가득 들어찼다. 집도 숨을 쉰다더니 그 숨길 따라 먼지도 자릴 잡나 보다. 건축에 무지했던 우리는 조금의 틈이라도 있을까 하여 빈틈없이 꼼꼼하고 튼튼하게 공사해 줄 것만 강조한 것이 균열의 원인이 되었다.
큰 다리나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을 지을 때는 반드시 이 숨구멍인 틈을 필수적으로 내야 한다고 한다. 이 틈을 건축 용어로는 ‘줄눈’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없으면 온도 변화나 건조 수축, 지진과 같은 진동, 기초 부동 침하 등으로 균열이 심하게 생기고 이로 인한 건물의 부식이나 파괴가 빠르게 진행된다고 한다. 이 줄눈은 도로 가나 강 언덕에 높이 쳐진 콘크리트 옹벽이나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나 고가도로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철길에도 이 틈은 있는데 이 틈이 철길이 휘어지는 것을 방지하여 늘 기차가 똑바로 갈 수 있도록 한다고 한다. 이러한 틈들은 없어서는 안 되는 틈임에 틀림없다. 
건축 구조물이나 집뿐만이 아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마음을 닫고 빈틈없이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은 어쩐지 가까이하기가 겁이 난다. 나는 공부는 뛰어나게 잘하지 못했지만 너무나 엄격한 부모님 때문에 본의 아니게 모범생이었고 친구가 없었다. 그런 내게도 결정적인 문제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거의 매일 지각을 하는 것이었다. 언젠가 가정방문을 하신 선생님께 아버지는 “시집가서 팔자가 좋아 사람을 부리며 살 팔자라 하더라도 주인이 할 줄 알아야 남을 부리지요. 당연히 밥하고 설거지는 다 해 놓고 학교에 가야 합니다.” 하셨다. 그 때문에 나는 아무리 지각을 해도 벌을 받지 않는 특혜를 받았으므로 오히려 나의 틈은 같은 반의 친구들과 멀어지게 하는 것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늦어 부랴부랴 학교로 달려갔는데 아이들이 나를 보자 킥킥 웃는 것이었다. 메리야스가 하얀 교복 윗도리 아래로 나와 치마 위에서 덜렁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틈을 보인 것이다. 그 순간은 창피했으나 그 후로 내게 절친한 친구 몇이 생겼다. 친구들을 통해 깔끔하고 시계바늘처럼 빈틈없이 움직이는 사람은 가까이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이후로 나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라면 내가 저지르는 실수들을 내 모습의 일부분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나 역시도 적당히 틈이 있는 사람이 좋다.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한 집에는 혹시나 내 몸에서 머리카락이라도 떨어지면 어쩌나 신경이 쓰이고, 못하는 것이 없는 팔방미인은 사람이 맞나 싶어 다가서기 망설여진다.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은 부딪히면 튕겨져 나오는 유리벽 같은 느낌이 들어 대하기 조심스럽다. 더러 실수도 하며 남의 실수도 포용하는 사람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사인암을 비롯하여 단양의 절경인 높은 바위를 생각해 본다. 그들은 적당한 틈을 두고 각각 그 틈에 맞는 나무들과 바위들과 키가 크고 작은 생명들을 골고루 키워내기에 엮어지는 아름다움이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 수십 층의 높은 건물과 긴 다리와 고가도로가 수많은 사람과 자동차를 견디는 것도 일정한 틈으로 숨을 쉴 수 있도록 설계되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지구촌의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쓰는 역사, 이는 사람과 사람 사이 서로 다른 틈을 메울 수 있는 저마다의 멋과 재주들을 지녔기에 가능한 것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 사이에 틈이 있고, 이 틈이 서로 다른 존재의 가치를 일깨운다. 자각하지 못할지라도 틈의 가치를 알기에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노래할 수 있는 것이다

기고자 소개

강여울

수필가, 시인.

《월간 문학》 등단

평사리토지문학상 수필부문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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