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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가을호
청소년이 힘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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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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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글밭
박미련
박미련

코로나가 고마워요

코로나19 때문에 열 명 중 아홉은 화색이 돈다. 텅 비었던 동공이 반짝반짝 빛이 난다. 무엇을 할까, 하고 싶은 것이 많기도 하다. 놀잇감 사냥에 나선 아이의 걸음을 그의 눈빛이 먼저 안내한다.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코로나를 글감으로 글을 써 오라했다. 그들이 내린 결론이 민망하여 눈을 마주할 수가 없다. 수십만의 목숨을 앗아간 코로나가 고맙다니…. 듣기 싫은 잔소리를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아이들의 귀는 이미 닫혔는데 나의 가치관만 주입하는 중이다. “그래도 인류애로 마무리해야지.” 아무리 아이들이라도 수십만 목숨을 잡아먹은 코로나를 고마워하다니, 듣는 것으로도 민망했다.
그러나 아이들이기에 가능한 반응이지 싶다. “선생님, 할머니 같아요, 머리가….” “선생님, 한 달에 얼마 벌어요? 우리 때문에 무지 부자일 거 같아요.” 낯 뜨거운 질문이 이어진다. “헤헤, 엄청 부자야.” 처음엔 당황하여 얼굴을 붉히곤 하였는데 많은 아이들을 만나다보니 이제는 태연하게 위기의 순간을 모면하곤 한다.
아이들은 솔직하다. 직설적이어서 일의 선후를 걱정하지 않는다. 가져야 할 자세보다 보이는 대로 믿고 마음의 소리에 따라 반응한다. 교정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를 보는 기분이다. 이래서 때로는 아이들이 생각에 분칠한 많은 어른들의 스승이기도 한 게다.
코로나 때문에 학교는 문을 닫았고 다니던 학원도 선택이다. 걱정 많은 부모들은 모든 걸 끊고 집에만 머물게 했다. 덕분에 아이들의 시간은 수 십 분에서 수 시간으로 늘어났다. 그간 24시간 동일하게 살지만 그들이 누릴 시간은 그렇게 짧았다. 학교에 저당 잡히고 학원 과제에 쫓겨, 하고 싶은 일은 고이 접어두기만 했다. 코로나 덕에 게임도 하고 친구들과 채팅도 원 없이 하게 되었다. 뒹굴뒹굴 맛난 간식을 먹으며 읽고 싶은 만화를 진종일 볼 수도 있다. 생각지도 않은 호사를 학생의 신분으로 누리게 된 거다. 따져보니 코로나가 고마울 수밖에 없겠구나 싶다.
아이들을 가까이서 보면 참으로 안타까울 때가 있다. 가르치던 그 아이의 일상도 그랬다. 하루가 얼마나 빡빡한지 단 30분의 시간도 맘대로 쓸 수 없었다. 눈빛이 죽어가는 걸 느낀 순간 나의 고민은 시작되었다. 수업시간에 몸만 있지 머리는 다른 곳을 여행 중인 거 같았다. 수업을 유지하는 것은 그도 나도 못할 짓이다. 아이의 엄마에게 털어놓았다. 그러나 의외의 반응이다. 그저 잘 붙들어 달란다. 그냥 수업시간만이라도 데리고 있어 달란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중1이면 폭풍처럼 많은 생각들이 밀려올 시기다. 급성장하는 신체도 적응하기 버거운데 머리는 또 얼마나 복잡하던가. 아이의 일상에는 당장 자신에게 필요한 처방은 하나도 없다.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딜 가고 있는지 들여다보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생각할 시간은 아예 없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밀려오는 잠에 몸을 맡겨버리기 일쑤다. 어김없이 아침은 밝아오고 또 어제 같은 하루가 시작된다. 반복하여 같은 시간을 살고나면 일 년은 순식간에 지나가버린다.
생각을 하면 나아가지 못하고 한 곳에서 맴돌까봐 두렵기도 하다. 부모도 자신도 바쁘게 달리는 세상에 보조를 맞추려면 도리 없는 일이라 자위한다. 생각을 줄이고 당분간은 이렇게 가는 수밖에. 불안하게 살았지만 아이는 다행히 위태로운 시기를 잘 견디고 상급학교에 진학하였다.
이 아이처럼 대개는 별 탈 없이 청소년기를 마치는데 그 중 몇몇은 진창이 되고 만다. 버티다 두 손을 들면 남는 건 아무 것도 없다. 패배자란 낙인만 찍힌다. 벗어나려면 지나온 시간의 두 배는 투자해야 하는데 아득한 일이다. 길이 보일 때까지 숨죽여 살아야 하니 참으로 숨이 찰 밖에.
가르치는 아이들 때문에 지나온 시간을 자주 돌아보게 된다. 내 아이를 기를 때는 욕심이 눈을 가려 아이의 감정 따윈 마음에 두지 않았다. 목표가 뚜렷했고 시간은 부족했다. 잠시도 곁눈질할 여가가 없었다. 영어를 잘 한 큰 애는 유명 경시대회는 다 데리고 다녔다. 쓰기와 말하기 대회와 토익에 토플까지, 시험도 참 많이 보았다. 하루는 배가 아프다고 인상을 썼다. 아이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고 대회의 중요성만 떠올랐다. 조금만 참고 병원에 가보자고 달래어 교실에 밀어 넣었다. 아이는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을까! 엄마가 괴물로 보이지 않았을까? ‘날 사랑하긴 하는 걸까.’ 가장 믿고 싶은 엄마였을 텐데 엄마의 사랑도 의심하였을 거다. 부끄럽고 미안하다. 지난 시절이 떠오르면 혼자 감상에 젖어 자주 수화기를 든다. 아이에게 이제라도 부족했다 말하고 싶어서 혼자 안달이다. 그렇게 미친 듯이 살았지만 후회가 많다.
그러한데 아직도 난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미래를 위해 오늘은 저축할 때라고 강조한다.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면서 아이들에게는 미래를 위해 현실을 희생하라 말한다. 그들에게 온전히 시간을 내어준 코로나가 꿀처럼 달다는 솔직한 반응에 실망할 일이 아니다. 기성 가치관으로 분칠하지 말고 무엇보다 그들의 오늘이 행복하길 살뜰히 챙길 일이다

기고자 소개

박미련

2011년< 수필문학> 등단

대전수필문학회 사무국장 역임

한국수필문학회 · 대전여성문학회 회원

저서 『사랑으로 물들인 어머니』 2020. 이든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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