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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지도연구원

대전청소년

2020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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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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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글밭
백송자
백송자

잠자리의 꿈

아파트의 각진 표정을 풀어내는 벽화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잠자리 세 마리가 만발한 국화 꽃잎 위로 날개를 펴고 하늘로 오르는 그림이다. 이름을 얻지 못한 어느 화공이 온 힘을 다하여 그렸을 것으로 짐작한다. 화공이 불어넣은 실팍한 혼을 붙들고 잠자리들은 그 자리를 뜨지 못했다. 수년째다.
물감이 마르기도 전에 잠자리들은 꿈을 키웠을 것이다. 이슬이 영롱한 풀밭 위에 앉아 짝짓기도 하고 물밑이나 습한 땅속에 알을 낳고 그 여린 알이 깨어나 *학배기가 되면 여러 번의 허물을 벗는 것을 지켜보고자 했을 것이다. 비록 지금 당장 날지는 못하더라도 분명 자나 깨나 수없이 날갯짓을 해대었으리라. 오랜 세월, 비바람에 퇴색한 눈을 비비며 푸른 하늘로 비상하는 꿈을 놓치지 않았음인가. 드디어 오늘 잠자리들이 꿈꾸던 그 날이 왔다. 온 세상이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이다. 떠났다. 상처 난 날개로 흐린 창공을 가르며 바람길을 제때 따라 잡을 수 있었을까. 고것들이 떠난 자리에 아파트 벽을 타고 오르내리는 페인트공이 곡예사처럼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다.
아파트 옆에는 작은 도서관이 있다. 젊은이 몇 명이 도서관 출입구 옆 의자에 앉아 있다. 잠자리 같은 것들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겉으로 보면 참 한가로운 모습이다. 그들의 얼굴 위로 가을볕이 내려온다. 가을볕은 젊은이들이 품고 있는 꿈의 씨앗을 내년 봄에 틔우는 에너지가 되고, 이를 발판 삼아 사회로 걸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도서관 책상에 머리를 고정하고 책을 보다가 잠시 벗어난 이 순간만은 잠자리처럼 날개를 펴고 날아가고픈 마음이리라.
한때 큰아들도 날지 못하는 잠자리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으로 단숨에 첫걸음마를 떼지 못했다. 학교와 사회의 문턱을 넘는다는 것이 쉬운 듯 보여도 그리 만만하지 않은 게 현실이다. 아들은 한 발짝 떼기가 버거웠는지 힘없이 주저앉기도 하였다. 말조차 줄어들었다. 어학연수도 다녀오고 나름대로 스펙도 쌓았지만, 사회로 진출하기 위한 우화를 하는데 꽤 긴 시간이 걸렸다. 우화는 누가 도와주지도 대신해주지도 못하는 혼자만의 몫이었다. 아무도 봐주지 않는 은밀한 공간에서 힘겹게 우화를 하면서 생채기가 많이 났다. 그 상처가 아물 즈음 드디어 아들도 여린 날개를 달고 세상의 품으로 날아들었다. 그 품은 부모의 것처럼 늘 포근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주변 사람들과 서로 부딪히며 온기를 나누고 살다 보면 세상의 품도 크고 따듯하리라.
잠자리 알에서 깨어난 학배기는 여러 번 허물을 벗는다. 잠자리가 *날개돋이하는 동안은 천적으로부터 무방비 상태다. 잠자리는 안전한 우화를 위해 본능적으로 이른 새벽에 시작하여 동트는 아침 햇살에 날개를 말리고 하늘로 날아 잠자리의 화려한 일생을 시작한다. 단 한 번의 허물조차도 벗지 않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들만의 탈피를 통하여 다시 일어선다. 그 좌절의 아픔이 승화되어 날개를 달고 응달진 세상 구석구석에 다가가 따듯한 마음을 보탠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파트의 벽화처럼 무미건조한 듯 보이지만, 실상은 꿈을 버리지 않고 움켜쥐고 있는 작은 힘이 모인 곳이다. 이곳에서 꿈의 날갯짓을 반복하면서 각자에 알맞은 탈바꿈으로 우리는 살아간다. 잠자리의 수채가 처음부터 날개를 지니는 것처럼 우리도 꿈의 날개를 마음속에 펼치며 세상으로 날고 있다.
젊은이들은 취업이라는 목표를 갖고 도서관으로 들어간다. 가을볕에 익은 모과 그림자가 그들의 등을 바짝 따라붙는다. 조만간 그들도 혼자만의 우화를 해낼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온몸에 해맑은 웃음을 달고 세상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올 것이다. 세상은 고단했던 그들의 어깨를 다독이며 포옹하리라.
페인트 공이 작업을 마치고 돌아선 자리에 화공이 다시 올라선다. 긴 줄을 허리에 매단 채 두 다리를 허공에 디딘다. 그는 아파트 벽면을 응시하며 참선에 든다. 깊은 산속의 수도승 같다. 하늘을 닮은 파란 색 벽면 그림자가 붓을 든 그의 왼손위에 사선을 긋는다. 꽤나 긴 시간이 흐르고 난 뒤 붓놀림이 시작된다. 작은 점 하나로 시작된 그리기는 어느새 한 폭의 그림으로 완성되어 아파트 벽면에 걸린다. 여유로운 풍경이다. 잠자리가 먹이를 배불리 먹고 오곡이 무르익어가는 가을 하늘을 날고 있는 비천도(飛天圖)다.
국화향기를 등에 업은 가을바람이 아파트 벽을 타고 오르며 잠자리 날개를 흔들어댄다. 잠자리의 날갯짓을 마음의 눈으로 바라본다
*학배기-잠자리의 애벌레, 수채라고도 함. 1~5년 정도 있다가 성충이 됨
*날개돋이-애벌레의 마지막 허물벗기

기고자 소개

백송자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

촌티문학회 회장

『촌티나게 살았소 2,3권』 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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