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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청소년

2020년 겨울호
청소년이 힘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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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길에서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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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글밭
강표성
강표성

알렉산더, 길에서 만나다

때가 때인지라 안개 속에 갇힌 느낌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기고, 세상의 길들은 출구가 막혀버렸다. 바이러스가 가둔 세상이 참으로 답답하다. 어딘가로 떠나고 싶지만 마땅한 데도 없다. 이런 자신에 대한 위로랄까, 일 년 전의 시간 속으로 잠시 여행을 떠난다.
‘마케도니아 평야’, 이 한마디에 여독에 지친 눈이 퍼뜩 떠졌다. 머릿속이 팽이처럼 신나게 돌아간다. 이게 여행의 묘미인지도 모른다. 그리스 하면 아크로폴리스나 파르테논 신전, 푸른 에게 해 그리고 희랍인 조르바가 떠오르는데 차창 밖 풍경이 예사로워 보이지 않는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 위로 상상의 나래가 펼쳐진다. 아스라한 지평선에 점 하나가 달려 나온다. 그 뒤로 먼지구름이 자욱해진다. 우렁찬 말발굽 소리에 드넓은 평원이 움찔움찔 뒤로 물러서는 것 같다. 대군을 앞장서서 달리는, 커다란 깃털을 투구에 꽂은 사내가 박차를 가하며 외친다. 앞으로, 좀 더 앞으로.
스무 살의 알렉산더가 아버지 필리포스 2세의 유업을 이어 페르시아 원정길에 오른 것이다. 비장의 무기는 속전속결이다. 유리한 지형을 택해 상대의 허를 찌른 후, 재빠른 승리로 현지에서 보급품을 얻는다는 전술이다. 잘 훈련된 보병과 기병 덕에 두 배가 넘는 페르시아 군을 보기 좋게 무찌른다. 기원전 334년의 일이다.
그리스의 변방이나 다름없던 마케도니아 출신의 젊은 왕은 가는 곳마다 승리의 깃발을 꽂는다. 이집트에서는 외국인으로선 처음으로 ‘파라오’라는 칭호를 받고, 페르시아의 황제로부터는 드넓은 땅과 자신의 딸까지 주겠다는 제안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몸과 마음은 한 곳에 머물지 않는 바람이다. 그리스와 페르시아, 이집트와 파키스탄 그리고 인도까지 몰아 부친다.
세상을 향해 질주한다. 가는 곳마다 자신의 이름을 따서 ‘알렉산드리아’란 도시를 세운다. 이는 그만의 신전이나 다름없다. 왕이 신전을 짓는 건 신의 신탁이 필요해서다. 그는 신의 응답을 기다리는 대신, 스스로 신이 되고자 한다. 그가 만든 도시는 거대한 신전이 된다. 이집트에서부터 중앙아시아 사마르칸트에 이르기까지 칠십 여개의 알렉산드리아를 건설하기에 이른다.
인도의 힌두쿠시 산맥을 넘으면서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고지가 저기다, 저 길만 뚫으면 세상은 서로 연결될 수 있다. 그러나 복병이 만만치 않았으니. 더운 날씨와 잦은 비로 전염병이 돌기 일쑤고, 현지인들의 끈질긴 저항 또한 녹록치 않다. 그런데다 십여 년간 전장을 떠돌던 병사들의 사기는 바다에 빠진 전함처럼 가라앉고.
어쩔 수 없이 귀로에 오른다. 불행하게도 그는 바빌론에서 꼼짝할 수 없게 된다. 지독한 열병에 걸린 것이다. 숱한 주검을 넘고 넘어 온 그에게 진짜 죽음의 그림자가 너울거린다. 살아생전 최고의 영웅이었던 이는 전쟁터가 아닌 침상에서 생의 마지막을 맞이한다. 겨우 서른세 살이다.
‘미천하게 오래 사느니 차라리 영광스럽게 짧게 살고 싶다’던 그의 말이 너무 빨리 이뤄진 셈일까. 사후의 후계자는 준비되지 않았고, ‘가장 강한 자를 택하라’는 그의 유훈은 많은 혼란을 가져온다. 자신이 죽은 후에 대제국이 세 개의 나라로 흩어지고 말리라는 걸 상상이나 했을지. 거기다 아내 록사나와 유복자인 알렉산더 4세, 그의 어머니까지 의문의 죽임을 당하고 만다. 세계 최고의 대왕은 가족조차 지키지 못한 것이다. 이게 인생의 아이러니인지도 모른다.
인간 알렉산더를 생각해본다. 어린 시절 그는 촉망받는 왕자였지만, 아버지인 필리포스 2세 왕과 어머니의 이혼으로 인해 입지가 흔들린다. 탁월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으나 스승으로부터는 잘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다’고 한 것처럼 스승 아리스토텔레스 밑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는다. 매사에 열정적이고 진취적인 그는 스승의 철학적인 견해까지 이어받는다. 그러나 아버지의 죽음에 연루되었다는 세간의 의심어린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하여 자신이 누구인가를 늘 증명해야 했는지도 모른다.
세상은 길이 되어 나아가는 자와 길을 따라가는 자가 있다. 길이 되어 나아가는 자는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열어간다. 그만의 방향을 찾거나, 기존의 길과 길을 묶어 새로운 노정을 만든다. 그것은 왕성한 생명력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거대한 통로가 되고, 그로 인해 역사는 한결 풍요로워진다. 지도자의 신념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시대의 가치를 낳는다. 알렉산더, 그는 어쩌면 세계시민이나 지구촌 개념을 가진 최초의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마케도니아 평원에서 그를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천년도 더 된 인물이 아주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언가. 그가 징기스칸 다음으로 많은 땅을 차지한 정복군주여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알렉산더, 그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았다. 민족과 인종, 문명과 야만으로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세상으로 연결하고자 했다. 그의 차별 없는 통치 이념은 세상의 또 다른 길을 만들기에 이른다. 서방과 동방을 연결하여 새로운 문화 즉 헬레니즘 문화까지 낳게 된다.
세월도 흐르고 역사도 흐른다. 많은 사람이 넓은 길로 가지만, 어떤 이는 걸어야 할 길을 찾는다. 용기 있는 자만이 길 바깥을 택한다. 위험한 줄 알지만 물러서지 않는다. 자신의 길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노정을 벗어날 수 있는 용기, 가풀막지고 위태로운 과정에 목숨을 던질 수 있는 이에게 운명은 길을 내준다. 걷고 걸어 길을 만드는 이, 사람들은 그를 영웅이라 부른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그가 삼십 대에 요절하지 않고 좀 더 긴 시간을 살았다면 세계사는 어떻게 변했을지. 짧고 굵게 살다 갔지만 역사는 그를 기억한다. 자신만의 길을 만들고 그만의 깃발을 세운 알렉산더.
차창 밖 풍경은 12월로 출렁인다. 마케도니아 평원은 푸른 여름을 보내고 지금은 무채색의 시간을 버티고 있다. 바람이 한차례 달리기를 하자 마른풀들이 지평선 쪽으로 허리를 굽힌다. 저 너머, 누군가 힘차게 달려오는 거 같다

기고자 소개

강표성

『수필문학』 등단.

현재 대전여성문학회 회장. 대전수필문학회 회장 역임.

원종린 수필문학상 수상

수필집 『마음싸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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