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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지도연구원

대전청소년

2021년 봄호
청소년이 힘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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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쓰는 토끼와 거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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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글밭
김용순
김용순

새로 쓰는 토끼와 거북이

어쩌다 동물원에서 거북이를 보게 되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자는지 깨어있는지 아니, 살아있기나 한 건지조차 분간이 안 되는 답답한 모습이라 한참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러자면 어김없이 초등학교 시절에 공부한 ‘토끼와 거북이’의 우화가 떠오른다. 약삭빠른 토끼가 나무 그늘에서 낮잠을 자는 사이 성실한 거북이가 엉금엉금 기어가 결승점에 닿았다는 거북이, 그런 거북이 때문에 소동이 일어날 줄이야.
그때 나는 아직 수업 시작 전이었기에 사무실에서 잡일을 하고 있었다. 어린이들은 하나둘 강의실로 들어가서는 저희끼리 재잘거렸다. 그런데 갑자기 쿵 소리가 났다. 이어 둔탁한 물건이 충돌하는 소리가 들리고 아이들의 재잘거림은 뚝 끊겼다. 숨죽인 아이들이 몰려와서 훈이형이 이상하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떠밀려서 들어가 보니 한 아이가 책상을 걷어차고 책가방을 내던지고 있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흘끗 보고는 걸상에 털썩 주저앉아 두 팔 사이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평상시 보아온 그와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기에 아이들보다 내가 더 놀랐다.
그는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오고 느릿느릿 가는 아이다. 문제를 풀 때도 느리다. 빨리하자고 채근해도 눈만 한번 끄먹거리고 만다. 그러다 보니 혼자 남아서 나머지 공부를 하는 날이 많다. 다음 아이들의 수업을 위해 못한 부분을 숙제로 내면 하다 만 시험지를 가져올 때도 있다. 그런 어느 날 야단을 쳤더니 그 후부터는 숙제를 내면 아예 결강했다.
그나마 좀 나은 때는 수학 시간이다. 어느 날 사고력을 요구하는 서술형 문제를 쉽게 풀기에 지켜보니 스스로 공식을 응용하기까지 했다. 믿을 수 없어서 경시대회용 문제지를 한 장 내밀었다. 거북이처럼 고개를 주억대긴 해도 문제를 풀어나갔다. 풀다가 막히면 나를 멀뚱히 바라보기도 하고 답을 구해놓고는 원리를 모르겠다며 묻기도 했다. 정답을 쓴 후에는 오히려 부끄러운 듯 시선을 피했다.
그런 모습이 내 의욕을 부추겨서 특별지도까지 하게 되었다. 방학을 이용하여 가장 난도가 높은 수학 교재로 선행학습을 시켰다. 교재는 원리 개념 응용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녀석은 단순히 계산만 하는 원리 편에서는 가끔 오답을 쓰기도 했지만, 난도가 높을수록 강한 집중력을 발휘했다. 느리기는 해도 문제가 요구하는 답을 향해 풀이 과정을 전개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한편의 해피엔딩 동화를 읽는 것 같았다.
아이의 풀이 결과가 정답과 일치할 때면 나도 몰래 환호가 튀어나왔다.
그가 좋아하는 게 또 하나 있다. 마술이다. 특히 카드를 이용한 마술을 잘하는데 거북이같이 느린 아이가 빠른 손놀림으로 눈속임하는 게 신기했다. 어쩌다 내 눈에 들키기도 했지만, 마술이 끝나면 “우와!”하며 추임새 넣는 내게, 어디서 어떻게 익혔으며 속임의 원리는 무엇인지 상세히 가르쳐 주었다. 여기저기서 배우기도 하고 스스로 응용하여 계발도 하는 눈치였다. 특별한 기술이라도 익히는 날이면 만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동영상으로 촬영하여 카톡으로 보내주기도 했다.
그가 마술을 보여 줄 때만은 스마트폰 게임에 빠져 있던 친구들도 모여들었다. 속임수에 꼬빡 속아 탄성을 지르기라도 하면 빙긋이 웃었다. 교재를 안 가져온 날은 태평하지만, 마술 도구를 안 가져온 날은 바람처럼 집으로 되돌아 내달리는 아이에게 그토록 마술에 열중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친구들이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루는 전에 없이 스마트폰 충전을 부탁해 왔다. 게임을 즐기지 않는 그는 여간해서 그런 일이 없었기에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봤더니 정말로 배터리 표시의 막대기가 다 없어져 완전히 비어있었다. 동그래진 내 눈을 읽고는 봉서산으로 현장체험을 갔었는데, 그곳에서 핫스팟 기능을 실행했더니 그렇게 되었다고 했다. 핫스팟 기능을 실행하면 배터리뿐 아니라 데이터도 빠르게 소진된다. 반면 주변 다른 스마트폰에서는 무상으로 데이터를 쓸 수 있다. 배터리야 아무 곳에서 충전할 수 있지만, 데이터는 한 달 쓸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기에 소진하고 나면 다음 달까지 쓸 수가 없다. 물론 추가로 요금을 부담하면 되지만 아이들에게는 무용지물인 셈이다. 그러기에 데이터는 또 하나의 용돈인 셈이다.
그런 사정을 알기에 예전에 무제한으로 쓸 수 있는 핫스팟(와이파이)을 사무실에 설치했었다. 아이들의 반응은 광적이었다. 지각은커녕 너무 빨리 와서 귀찮을 정도였다. 너무나 게임에 빠지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수업 시간에는 스마트폰을 보관함에 두기로 한 약속을 잘 지키기에 관망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일과를 마치고 어둑어둑한 바깥으로 나오니 어디선가 아이들 목소리가 소곤소곤 들려왔다. 아뿔싸. 위층 층계참에서 스마트폰 빛이 반짝거리고 대여섯 명의 어린이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다른 학원을 거쳐 벌써 집에 가 있어야 할 시각인데 그때까지 스마트폰 게임에 빠져있었다. 그 일을 계기로 와이파이를 다시 철거하게 되면서 아이들은 데이터 소모에 더욱 신경을 곤두세운다. 아이의 데이터 사용량을 알리는 도돌폰을 눌러보니 이번에는 막대그래프가 꽉 차 더는 남은 양이 없음을 알리고 있었다. 새달이 되려면 아직 멀었는데 어떡할 거냐는 내 걱정에 “괜찮아요. 애들이 좋아해서 저도 좋았어요.” 라고 빙긋이 웃었었다.
다행히 울음소리가 잦아들며 진정될 기미가 보이기에 혼자 두고 나왔다가 수업 시간이 되어 다시 마주했다.
화나는 이유가 무엇인지 말해 줄 수 있느냐는 내 말에 눈물을 다시 글썽거렸다.
“친구들이…… 거북이라고…… 놀렸어요.”
울먹이며 더듬더듬 말했기에 혹시 잘 못 들은 게 아닌가 내 귀를 의심했다. 그게 그렇게 난리를 칠 일이란 말인가.
“사실 느리잖아?”
“그건 내 습관일 뿐이에요. 거북이는 아니라고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거북이가 아니라고? 그러고 보니 거북이는 느린 것만이 아니었다. 토끼가 낮잠을 자는 옆을 살그머니 지나 혼자 결승점으로 가 만세를 불렀었다. 관점에 따라 공존의식 없이 저만 아는 이기주의자일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아이는 뛰어난 수학 실력을 내세우지 않는다. 상대를 치고 차고 쏘고 베면서 혼자 스마트게임을 즐기기보다는 여러 번의 반복과 시행착오를 거쳐 터득한 마술로 모든 사람을 신나게 해 주는 아이다. 자신의 데이터를 소진해가며 친구들에게 핫스팟을 제공하는 아이이다. 오로지 이기기 위해 잠자는 토끼 옆을 살그머니 지나치는 거북이와는 다른 삶을 사는 아이다. 헤엄을 잘 치는 거북이가 뭍에서 경주했더라도 잠자는 토끼를 깨워 함께 가야 했다는 것이다. 자신만의 영달을 추구하는 인정머리 없는 거북이에 대해 분노했으리란 생각에 이르자 나도 모르게 어깨를 토닥이게 되었다.
오늘도 문밖은 치열한 경주의 연속이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오로지 승자 위주로 돌아가는, 패자가 대부분인 세상에서 몸으로 새로 쓰는 훈이의 ‘토끼와 거북이’가 새삼 가슴을 설레게 한다

기고자 소개

김용순

《수필과비평》등단

수필과비평작가회의 부회장

충남문학대상, 수필과비평문학상 수상

수필집『유리 인형』외 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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