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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지도연구원

대전청소년

2021년 여름호
청소년이 힘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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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화 한 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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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글밭
홍인숙
홍인숙

실내화 한 짝

내 어린 시절에는 사진기를 가진 집이 그리 많지 않았다. 흔한 운동회 사진 한 장 없이 지나간 어린 시절이지만 그때는 다 그렇게 사는 줄만 알았다. 가끔 동네에 이동식 배경화면을 싣고 다니며 얼마간의 요금을 받고 사진을 찍어주는 사진사가 오곤 했었다. 초등학교 시절 어느 날의 기억이다. 사진사 아저씨가 동네에 들어왔는데 엄마가 바로 아래 남동생과 나를 조각배 그림이 그려진 화면 앞에 나란히 앉게 하고 사진을 한 장 찍게 하셨다. 지나고 보니 우리 남매가 둘이서 어릴 때 찍은 사진은 그것이 유일해서 동생과 함께 한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되기 전에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날로그 필름을 아낌없이 인화하며 열심히 사진을 남겼다. 어느 날인가부터 얼마든지 찍어도 필름 값 걱정 없고 사진을 망칠 염려도 없는 디지털 시대가 되자 사진을 맡기고 인화되어 나오기를 기다리는 설렘은 사라졌지만, 그 대신 얼마든지 사진을 되풀이해서 찍을 수 있는 풍족한 시대를 살게 되었다. 그래도 한 장 한 장 뽑아낸 사진을 손으로 넘기며 순간순간의 소중함을 온몸으로 느끼는 종이 사진이 아쉬운 건 구닥다리 같은 태도일까? 오래전 두 아이의 성장 과정을 찍어 소중하게 간직한 몇 권의 앨범을 이따금 꺼내 볼 때마다 커다란 기쁨을 안겨준다.
그 사진 중에 유난히 선명한 장면으로 남아서 잊히지 않는 것이 있다. 평송청소년수련원 강당에서 치른 아이들의 유치원 재롱잔치 무대가 그중 하나이다. 그 당시 한참 크는 아이라고 실내화를 한 치수 넉넉하게 사준 일이 그만 사달이 났던 것이다. 발표 프로그램 중에 남아의 “태권무” 순서가 있었다. 몇 줄로 줄을 선 아이들이 힘차게 태권도 동작을 펼치는 참이었다. 아들 녀석도 열심히 무용 순서에 맞춰 율동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실내화 한 짝이 휙 벗겨지면서 무대에 나뒹구는 게 아닌가. 순간적으로 당황한 아이는 주춤주춤 동작을 따라 하면서도 떨어진 실내화에 연신 눈길이 가고 있었다. 객석에서 민망하게 바라만 보려니 어찌나 안타까운지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 같았다.
실내화에 온통 신경이 쏠리는 듯한 아이를 보면서 초보 엄마인 나도 함께 ‘아이쿠! 저 무용 순서는 언제 끝나려나’ 겨우 몇 분짜리 무용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손바닥에 땀이 날 지경이었다. 열심히 셔터를 누르던 카메라는 그대로 멈춰버린 채 말이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음악에 맞춘 “태권무”는 길게 이어졌고, 아들은 당황한 표정으로 동작을 겨우겨우 따라가며 무사히 순서를 마치는가 싶었다. 순서가 끝나고 다들 무대 뒤로 퇴장하는 참이었다. 아들도 다른 친구들을 따라가는가 싶더니 주춤주춤 되돌아와서 실내화를 번쩍 집어 들고 뛰어가는 게 아닌가. 아이들 꽁무니를 따라 무대를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같이 온 학부모들은 즐거운 듯 웃었지만 나 혼자 애타던 순간만은 마음속에 두고두고 남았다.
마침 연년생인 남매가 같은 유치원을 다니던 터라 딸아이도 부채춤이며 여러 순서를 하고 있었는데 손에 든 카메라로는 연신 아이의 모습을 찍어주면서도 마음은 영 개운하지가 않았다. 그 넓은 무대 위에서 신발이 벗겨져 버린 순간 아들의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하니 너무나 미안하고 속이 상해서 나 자신에게 화가 치미는 것이었다. 실내화 한 켤레에 얼마나 한다고, 채 자라지도 못한 작은 발에 미리 큰 신발을 신겨서 창피를 당하게 하다니 내 어리석은 마음을 탓할 뿐이었다. 무대 위의 딸은 해맑은 표정으로 자기 순서를 하느라 열심인데 나는 실내화의 잔상에 온통 마음이 쏠려 속상해하던 기억이 지금도 선하다. 언젠가 오래된 앨범을 꺼내서 보다가 유치원 시절의 행사 사진을 발견하고 웃으면서 사과를 했더니 아들은 “어 그런 일이 있었어?” 하면서 씨익 웃고 만다. 그 뒤로 나는 항상 그때그때 딱 맞는 신발을 사주게 된 것은 물론이다.
누구에게나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지나간 일 가운데 일그러진 사진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성찰과 전환을 통해 새로운 발돋움을 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모든 게 다 나쁜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어느 날 훌쩍 커버린 아이를 바라보며, 살면서 뭐든 잘 해낼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생긴 건 엄마의 미안함을 상쇄하려는 무의식적 보상심리일까. 아이의 헐렁한 실내화 한 짝이 벗겨지던 그때, 내게는 잊지 못할 장면으로 마음속에 박혀버린 그때 이후 나는 “지금, 여기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말에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언제나 내 아이가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그래서 행복하고, 그 기쁨으로 주변까지 밝힐 수 있다면 자기 자신을 믿고 용감하게 나가라고 북돋아 줄 것이다

기고자 소개

홍인숙

시인

대전대학교 교수

한국독서치료학회 독서심리상담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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