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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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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가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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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글밭
석귀화
석귀화

세대가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어느 언어학 교재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한 꼬마가 어느 집 현관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앉아 있었다. 커다란 택배차가 집 앞에 도착했다. 창문이 내려오고 기사가 머리를 내밀며 물었다.
“꼬마야, 어머니 집에 계시니?”
“예, 우리 엄마 지금 집에 계세요.”
택배기사는 내려서 냉장고를 짐칸에서 겨우겨우 꺼냈다. 현관이 마당보다 몇 계단 위에 있어 미끄럼 받침대를 써서 간신히 현관 앞에 짐을 옮긴 기사가 아무리 초인종을 눌러도 집안에서는 인기척이 없었다. 기사가 옆에 서서 구경하는 꼬마에게 물었다.
“엄마 안에 계신다며?”
꼬마가 대답했다.
“여기 우리 집 아닌데요.”
꼬마가 잘못한 것은 아니다. 택배기사가 ‘너네 집’이냐고 먼저 물었어야 했다.
얼마 전 딱 이런 일을 당했다. 밥솥에서 뿜어대는 뜨거운 김에 쏘여 팔뚝에 화상을 입었다. 아리고 화끈거렸지만 아직 병원 문을 열 때가 되지 않아 우선 찬 감자즙을 붙여놓고 집 건너편에 있는 피부과를 찾아갔다.
피부과 병원이라고 간판이 붙었는데 미용업을 겸하고 있는지 피부관리실 같이 미니 치마를 입은 직원들이 많이 있었다. 족히 열 명은 되어 보였다. 이런 곳에서 화상치료를 제대로 할까 싶었지만 딱히 생각나는 병원이 없어서 참고 기다렸다.
치료는 생각 외로 꼼꼼했다. 여의사는 진단을 내리고 간호사는 드레싱을 한 다음 레이저를 10분 이상 쏘여 주었다. 친절했다. 처음에는 좀 따끔거리고 아려서 병을 키우는 게 아닌가 우려했는데 조금 지나니 통증이 없어지는 것 같았다. 그런 다음 약을 발라주고 거즈로 덮어 반창고로 고정해 주었다.
의사는 상처부위의 사진은 찍어 놓고는 내일 또 오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때 내가 질문을 했어야 했다. 약은 안 주느냐고, 그리고 내일도 와야 하느냐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계산대의 젊은 여인은 치료비로 5,800원을 받아 넣고 주차증에 도장을 찍어 주었다. 나도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고 또 그대로 나오고 말았다. 약은 안 주느냐고, 그리고 내일도 와야 하느냐고.
그때 병원에서 내가 받은 인상으로는 나 같은 화상환자는 병원에 큰 수입원이 되지 못하는지 신경을 쓰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 역시 자세하게 질문을 안 했던 것도 같다.
친구에게 화상을 치료한 얘기를 해 주면서 시설 좋고 큰 피부과 병원이 바로 근처에 있어 치료를 잘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덤으로 ‘그 피부과는 주로 피부 관리가 전문인가 보다’라고 했다. 친구는 ‘내 얼굴의 그을음도 거기 가서 제거할까’ 하고 물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그 병원 같으면 충분히 잘할 것이라고 했다. 내일 아침에 같이 가서 내 치료도 받을 겸 진찰을 받아보자고 했다.
다음날 아침, 병원에서 친구를 만났어도 9시가 되지 않았다.
“좀 기다리지 뭐.”
통상 병원은 9시30분이면 문을 여니까 10여 분만 기다리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건물 3층에 있는 병원으로 들어가니 ‘진료는 10시부터 시작’이란다. 아무래도 30분 이상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우리는 그 정도야 기다릴 수 있지’ 하는 여유를 부리며 1층으로 내려가 주차장 앞마당 데크 위에서 정원을 바라보며 느긋한 척하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면서 30분 정도 시간을 때웠다. 좀 지겹기는 했지만 참았다.
열 시가 되어 병원으로 올라가서 다시 진료를 청하니, 접수대 직원이 오전에는 휴진이라고 했다. 목요일은 의사 진료가 오후 2시부터 있단다. 그러면 아까 왔을 때 왜 얘기해 주지 않았느냐고 했더니 보통 피부 관리 받는 사람들은 의사 없어도 되니까 그런 환자라고 생각하여 아무 말도 안했고, 목요일 오전 진료를 하지 않는 것은 문 입구 게시판에 적어 놓았으니 그걸 확인 안한 손님 불찰이라고 또박또박 대답했다.
이런 대화들이 요즘 세대 간 소통할 때 주의할 점이다. 묻지 않으면 대답하는 법이 없다. 주변 정보를 덤으로 알려주지도 않는다. 살아온 경험에 의지하여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나와 같은 구세대와 딱 필요한 정보만 주는 세대 사이의 극심한 소통부재의 예화이다.  
이 병원 카운터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내 아들 녀석조차 그렇다. 묻는 말에만, 바로 그 일에 관해서만 대답하고 우수리로 더해 주는 말이 없어 곤혹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고는 왜 그 때 말해주지 않았느냐고 하면 “언제 그것에 대해 물으셨어요?” 하며 어깃장을 놓는다. 통상 우리 세대 경우는 상대방에게 약간 가외적인 정보까지도 제공하는데 요즘 디지털 세대는 그런 립서비스가 없다.
9시 반에 찾아간 환자에게 10시에 시작하니 그때 오라고 했다가 10시에 가니 의사는 오전 진료가 없다고 한다. 날더러 피부 관리를 받으러 온 손님인 줄 알았다고 한다. 나오면서 보니까 출입구 옆에 목요일 휴진이라고 씌어 있기는 했다.
대구에 지하철 화재 참사가 났을 때 열차가 멈춘 지 10여 분이 지나고 연기가 자욱해 질 때까지 “무슨 일이죠? 이거 이상하지 않은가요?” 서로 묻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자욱한 연기를 들이마시면서도 안내 방송 나오기만 기다리는 것이 요즘 세대들의 모습이다. 아니 누구에게 묻고 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요즘뿐이 아니라 예전부터 그랬던 것 같다. 그것이 남의 프라이버시 존중이라고 생각하는 태도도 한 몫 한다.
 병원 직원에게 한 마디 건네려다가 스스로 민망해서 그냥 나와 버렸다. 그 아가씨는 곧 눈길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뭘 할까? 아마도 휴대폰을 만지작거릴 것이다

기고자 소개

석귀화

수필가, 수필집 『석양에서 바라보기』

전 중등학교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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