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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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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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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글밭
송귀연
송귀연

코스모스 아이

바람에 꺾일 듯 나풀거린다. 가느다란 다리가 넘어질 것처럼 휘청거려 위태롭기만 하다. 얼굴빛마저 까칠하다. 짐짓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아침 먹었냐고 물어보자 아이는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땅바닥으로 시선을 떨어뜨린다. 
신이 세상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꽃을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코스모스는 스케치를 맨 처음 해놓고 정작 색은 가장 나중에 입혔다고 전해진다. 코스모스는 신의 첫 숨결이 깃들은 꽃이라 하여 우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들녘, 척박한 땅 어디에서도 뿌리를 내리는 모습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을 끈다.
결혼 십 오년 만에 태어난 귀남이는 약골이었다고 한다. 또래들이 후다닥 점심을 먹고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놀이를 하는 동안, 아이는 아직 반이나 남은 식판을 잡고 씨름했다. 툭하면 감기로 몸져눕거나 배탈이 나서 결석을 하기 일쑤였다. 미세한 비바람에도 허리가 휘어지는 코스모스처럼.
아이는 삼학년이지만 일학년들보다 더 몸집이 작다. 배움터지킴이로 처음 만났을 때 묻는 말에 입을 다물며 경계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말을 붙이기가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었다. 삼 개월 정도 시간이 흐른 후, 낯이 익고 정이 들었는지 만나면 반갑게 달려와 인사를 건넨다. 내가 눈에 띄지 않으면 두리번거리다 곱절로 반색한다. 가끔씩 간밤 꿈 이야기를 해주기도 하는데, 매번 동일한 줄거리는 늘어난 카세트테이프처럼 며칠째 이어진다. 그나마 자신의 얘기에 귀 기울여주는 것에 힘이 나는 것 같았다.
아이 엄마는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길을 달리던 중 논둑 아래로 굴러 두 달째 입원 중이었다. 그래서 귀남이는 요즘 엄마와 떨어져 지낸다. 뒤늦게 결혼한 아이아빠는 이미 육십 대에 접어들었다. 가난한 노총각과 지적장애가 있는 처녀와의 결혼이었다. 아빠가 공공근로를 하여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엄마는 아이를 위해 밥을 짓는 대신 마트에서 김밥이며 과자로 끼니를 해결해버리곤 한다. 학교에 있는 동안 내내 의기소침해하다가도 토요일에 엄마 만나러 간다고 말할 땐 눈빛이 초롱초롱해진다.
축구하는 친구들 틈에서 귀남이는 한 번도 공을 잡지 못했다. 아이들에게 부탁해서 겨우 기회를 주었지만 공은 제대로 뻗어나가지 못한 채 바로 자신의 발 앞에 떨어지고 만다. 공부는 물론이고 체력마저 뒤지는 부진아이어도 잘 하는 것이 있다. 누구보다 먼저 학교에 도착하는 아이가 귀남이다. 등교일등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우면 얼굴에 활짝 미소가 번진다. 말을 할 때마다 팔을 휘젓는 동작이며 말투가 영락없는 아빠판박이어서 주변을 한바탕 자지러지게 만들기도 한다.
버스를 자주 이용하다보니 아이는 차 시간표와 노선을 꿰뚫고 있다. 쉬는 시간 놀이도중에도 교문 앞을 지나는 버스를 놓치지 않고 관심을 보인다. 언젠가 운전기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해 지나쳐버린 적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왜 그러느냐?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세상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것이 아이가 바라보는 사회의 부정적인 면인지, 아니면 부모의 말투를 흉내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거침없이 도시를 누비는 버스가 가장 멋있게 보인다며 자신의 꿈은 버스기사가 되는 거라고 자주 말을 한다.
귀남이는 술래잡기나 힘겨루기를 하면, 또래는 물론 일학년에게도 밀린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지 하루에도 몇 번씩 눈물을 훔치며 토라진다. 아이들을 타일러 보지만 철없는 애들에게 배려를 바라기는 어렵다. 먹은 음식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서인지 운동장에서 자주 토악질을 한다. 세상이란 허파는 때때로 아이에게 숨쉬기 불편한 인공호흡기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스스로 벗어버릴 수도 거역할 수도 없는 굴레는 어린 귀남에겐 너무 혹독한 형벌이다. 과연 제대로 성장할 수 있을까?
칠남매의 중간으로 태어나 아래위로 치이면서 자란 나는 제대로 기를 펴지 못했다. 매사에 소극적인 성격은 어른이 되었어도 완전히 바뀌지 않았다. 아이를 바라보면 어린 시절이 생각나 가슴이 아린다.
코스모스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만 야생에서 굳건히 견디며 제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른 봄 싹이 터 가을에서야 꽃을 피운다. 곧 쓰러질 듯 연약하면서도 어떤 꽃보다 강인하다. 사랑과 연민이 교차하는 코스모스처럼 이즈음 아이에게 자꾸 마음이 간다.
하굣길, 아이와 세발자전거가 하늘거리는 꽃길 속으로 잠긴다. 가물거리는 모습을 향해 힘차게 손을 흔들어준다. 희고 붉은 코스모스가 지천으로 피어나는 가을이다.

기고자 소개

송귀연

수필가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

계간 《수필세계》 신인상 등단

시흥문학상, 형산수필문학상 수상

수필집 『지상의 집 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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