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청소년지도연구원

대전청소년

2021년 가을호
청소년이 힘들 때
국번없이 1388
24시간 연결됩니다

코로나 영화사

본문

선생님 글밭
박지영
박지영

코로나 영화사

레 ~ 디 액션!”
“너 자꾸 약속 안 지키면 스마트폰 압수다!”
‘NG!’
“야! 자꾸 웃으면 어떡해!” 엄마 역役을 맡은 친구가 아들 역役을 맡은 친구에게 소리친다. 하지만 금세 둘 다 웃고 만다. 스마트폰을 두고 엄마와 아들 간의 팽팽한 긴장 장면을 촬영 중이다. 숨죽여 지켜보던 모둠 아이들도 참았던 웃음을 터트리고 만다. “좀 조용해!” 소리치지만 감독 학생도 웃기는 마찬가지다.
조용하던 복도가 시끄러워진다. 웃지 말고 좀 진지하게 연기하라는 잔소리, 시간 없다고 재촉하는 소리, 연기 시범을 보이는 아이, 대사를 연습하는 아이…. 감독과 배우와 스텝들의 소리에 복도가 시끌벅적하다. 아이들 신난 표정까지 보태져 그야말로 난장이다.
나는 프리랜서 강사다.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스마트폰 동영상 제작수업도 한다. 재작년, 그러니까 코로나 발생이전까지만 해도, 개인적으로 수행하는 컴퓨터 수업보다 모둠으로 진행되는 영상제작 수업 반응이 훨씬 좋았다. 그 이유는 쉽게 헤아릴 수 있다. 개별 활동이 아닌 친구들과 함께하는 모둠 활동이기 때문이다.
동영상 수업은 모둠별로 진행된다. 영화 제작사가 각기 이름을 가지듯 모둠 이름을 정하는 것으로 수업은 시작된다. 다음, 개인 스마트폰이나 학교 태블릿으로 동영상 제작 앱에 대한 사용법을 배운 뒤 본격적으로 영상 제작에 들어간다.
주제를 선정하고, 시나리오를 기획하고, 감독, 편집 담당 등 역할을 정하고 배역을 나눈다. 영상제작의 전 과정을 아이들이 주도한다. 아이들 삶이 대부분 지시받은 일을 수행하는 것이어서일까. 주도권과 자율성을 부여받았다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신이 났다. 영상 주제도 제한을 두지 않는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주제는 유감스럽게도(?) 스마트폰 중독예방, 학교폭력 예방, 흡연금지, 학교안전수칙 준수 등이며 때론 화장 잘 하는 법, 건정한 이성교제 등 솔직한(?) 주제도 등장한다.
영화사 이름을 정하는 것에서부터 영상기획, 촬영, 편집까지 이 모든 것을 4교시 만에 완성해야 한다. 물리적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기에 결과물의 완성도는 그리 높지 않다. 아이들은 모둠이 정해지는 순간부터 4교시 내내 쉬지 않고 재잘대고 깔깔거리며 열심이다.
하지만 이 모둠수업을 작년부터는 하지 못하고 있다. 같은 내용의 수업을 하고는 있지만 학생 간 접촉을 최소화해야 하므로 모둠활동을 할 수가 없다. 아이들은 플라스틱 방역 칸막이 안에서 각자의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화면만 쳐다보며 혼자 영상을 만든다. 모둠활동 때만큼 수업에 활기가 없다. 아이들 반응이 그러니 강사인 나 또한 시들해진다.
그러던 중 올해 초 중학교 수업 중에 학생 두엇이 비대면이 아니라 친구랑 힘을 합쳐 같이 만들면 안 되는지 조심스레 물어왔다. 동아리 선생님께 여쭤봤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최대한 접촉을 줄이겠다는 약속을 받고 허락을 해주셨다. 예전처럼 6~7명이 아니라 두 명씩 조를 만들어 활동하기로 했다. 순간 아이들 표정이 살아났다. 시들하고 무기력한 아이들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무슨 내용을 찍을 건지 의논하기 시작했다. 마스크로 반쯤 가려진 얼굴이 얼마나 상기되었을 지는 반짝이는 눈빛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초등학교 사회시간에 배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을 그때처럼 실감한 적이 없다. 친구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 그게 뭐라고 아이들이 이렇게 달라질까. 어쩌면 아이들 자신도 여태껏 몰랐을지 모른다. 친구와 함께 하는 시간이 이렇게 즐거운 지, 소중한 지 말이다. 우리 어른들이 몰랐던 것처럼. ‘코로나 블루’란 말에 추호라도 다른 의미가 있을까.
코로나가 우리에게 던진 문제는 참으로 복잡다단하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은 진부하지만 여러 차례 증명된 소중한 교훈이다. 관계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그 관계를 어떻게 지속하고 발전시킬지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비대면, 언택트 시대에 아이들은 그리고 우리는 어떤 관계를 만들고 유지할 수 있을까.

선생님께 재차 방역수칙 설명을 들은 아이들이 복도로, 화장실로, 운동장으로 촬영하러 나갔다. 잠시 후 몇몇 아이들이 코로나 예방수칙을 주제로 찍었다며 촬영 영상을 보여준다. 손 씻는 장면조차도 여러 번 NG후 성공했다며 자랑한다. 좔좔좔 수돗물 소리도 깔끔하게 담았다. 촬영을 마친 아이들이 교실로 돌아와 편집을 시작한다. 어떤 장면을 넣을까, 뺄까, 어떤 자막이 좋을까 재잘거리면서.
코로나 시대에 처음 시도해보는 모둠수업이다. 염려하는 선생님과 나와 달리 아이들은 친구와의 거리를 잘 유지하였다.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은 코로나 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방법을 터득이라도 한 것 마냥 아이들은 ‘거리두기’와 ‘친구와 함께’를 병행하였다.
이제 편집 마지막 단계인 배경음악 작업만 남았다. 촬영 못지않게 아이들이 심혈을 기울이는 과정이다. 이어폰을 꺼내서 스마트폰에 꽂는다. 그리곤 각자의 귀 한 쪽씩을 내어 친구와 나란히 이어폰을 꽂는다. 영상에 어울릴 음악을 고르느라 교실이 조용하다.

기고자 소개

박지영

아동문학가

머니투데이 경제신춘문예 산문부문 대상 당선(2017)

매일신문 신춘문예 동시 당선(2019)으로 등단

혜암아동문학회 회원

맨위로 이동 맨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