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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지도연구원

대전청소년

2019년 가을호
청소년이 힘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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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겨진 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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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글밭
김주남
김주남

구겨진 상장

오래전, 친정에 다니러 갔다가 막 일어설 때였다. 아버지께서 서류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이제는 너가 보관해라.”
누런 봉투에 봉해져 있던 것은 뜻밖에도 상장 한 뭉치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내가 받은 상장이 차곡차곡, 그것도 날짜순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의외였다. 칭찬 한 번 안 해주시던 아버지였기에 더욱 의아했다.
까마득하게 세월이 흘러도 잊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상장 중에도 잊을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맨 위에 놓인 상장은 보잘 것 없기가 이를 데 없었다. 색 바랜 얇은 종이에 글자는 흐릿하게 퍼져 있었다. 고작 이 종이 한 장이 어린 그때의 나를 그토록 불편하게 했던가.
초등학교 일학년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세 밤을 자고 나면 개학이라고 일러주면서 방학 숙제는 다 했느냐고 언니가 물었다. “방학 숙제? 그게 뭔데?” 언니가 찾아준 ‘방학 과제 안내문’에는 ‘그림일기’라는 숙제가 있었다. 그 긴 방학에 매일매일 써야 하는, 더구나 그림까지 그려야 하는 숙제였다. 그 어마어마한 과제의 중압감에 나는 그만 대성통곡했다.
보다 못한 언니가 왼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일부러 삐뚤빼뚤 글씨를 써서 개학 전날에 그림일기를 완성해 주었다. 왼손으로 썼다고는 하나 언니는 육학년인 데다 필체까지 좋아 내 눈에도 수준 차이가 났다. 들고 갈 마음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사흘을 꼬박 그리고 칠하고 쓴 언니 앞에서 안 가져가겠다고 할 수도 없었다.
불길한 예감은 어긋나는 법이 없다. 숙제를 제출하며 느꼈던 불안감대로 며칠 후 그림일기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내 생애 처음으로 받은 상이었다. 숙제를 안 한 것으로도 모자라 선생님을 속이고도 상까지 받게 된 것이다. 정말이지 받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안 받을 수도 없었다. 죄책감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이건 제가 한 숙제가 아닙니다.’ 마음속으로만 말했을 뿐, 말이 되어 나오지는 못했다. 매를 맞아 마땅할 일에 가당치도 않게 받은 상은 양심의 가책이라는 벌이 되었다.
집에 와서도 상장을 내놓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어디다 숨길 수도 없어 슬그머니 꺼내 서랍장 위에 올려놓았다. 책보 속에 오래 눌려있던 상장은 구깃구깃한 내 마음처럼 모서리가 구겨져 있었다. “어이구, 저것이 그래도 상을 다 받아왔네.” 한참 후에 상장을 발견한 부모님의 목소리를 뒤로 들으며 나는 슬며시 마당으로 나와 버렸다.
그 부끄러운 상 덕분인지 섣부른 상 욕심이 일지는 않았다. 상 받을 만한 자격과 실력이 갖추어졌을 때 상을 받아야 비로소 떳떳할 수 있음을, 떳떳하지 못한 상으로 오래 부끄러웠던 어린 날이 가르쳤기 때문이다.
또 다른 상장 한 장은 한쪽 귀가 떨어져 나간 데다 심하게 구긴 흔적이 있었다. 4학년 때 처음으로 일제고사에서 일등을 하고 상장을 받았다. 내 힘으로 떳떳하게 나도 상을 받은 것이다, 언니처럼. 바로 위의 언니는 상이란 상은 모조리 휩쓰는 데다 학교 장학생에 군 장학생까지 되어 아버지의 자존심을 세워 드렸다. 언니는 단연코 아버지의 자랑이었다. 손님이나 이웃이 오면 언니의 이름과 함께 수재니 장학생이니 하는 단어들이 동생과 놀고 있던 내 귀에도 들리곤 했다.
난생처음 일등상을 받은 날, 십 리 길을 냅다 내달렸다. 구름 위를 나는 기분이었다. ‘상을 보여드리면 아버지는 드디어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실 거야. 등이라도 두드려 주시겠지. 아무렴, 상을 받았는데. 그것도 육십 명이 넘는 우리 반에서 일등을 했는데…….’
마당에 들어서며 아버지부터 찾았다.
“아부지, 나, 상 받았어요.”
가쁜 숨을 쉬며 자랑스레 내밀었건만, 하던 일을 다 마치고서야 아버지는 상장을 펴들었다. 기대를 가지고 쳐다보고 있던 내게 하신 아버지의 일성은 “너거 학교에는 똥통들만 다니는 모양이구나. 니가 상을 다 받아오고!” 였다.
어린 내게 ‘똥’자가 들어가는 말은 모두가 욕이거나 욕에 가까웠다. 아버지는 유독 내게 칭찬에 그렇게 인색했다. 칭찬은커녕 내가 골이 잔뜩 날 때까지 말의 수위를 높여 화를 돋게 하곤 했다. 나는 ‘밥통’이라거나 ‘바보’라거나 더 심하면 ‘똥통’이란 말을 들었다. 이번에는 나뿐 아니라 우리 학교 전교생을 ‘똥통’으로 몰아 욕을 보인 것이다. 골이 머리끝까지 난 내게 아버지는 한 번 더 쐐기를 박았다.
“너는 아직 너거 언니 따라갈라카만 한참 멀었다.”
화가 폭발했다. 상장을 확 말아 마구 구겨서 씩씩대며 집어 던져 버렸다. 그리고는 집을 나왔다. 대문 없는 집이지만 집을 나오자 막상 갈 데가 없었다. 동쪽 담벼락에 잎이 무성한 뽕나무가 한그루 있었다. 그 뒤에 숨었다. 담 안에서 가족들이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가지 않았다. 날이 어둑해지고 온 식구가 나를 찾아 나설 때까지 숨어있는 것으로 철없는 반항을 했다.
그때 골을 낸 흔적으로 남은 구김살 상장이었다. 겉으로 드러내는 말이 아니라 그 말 속에 들어있는 기쁨을 찾아내어 속마음을 헤아리기에는 너무 어렸던 때였다. 마음과는 달리 막내딸의 화를 돋게 한 아버지는 그 구겨진 상장을 여러 번의 손 다림질로 이만큼 펴놓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차곡차곡 정리하여 여태 사랑으로 간직하셨던 것이다.
이제 나는 그때의 아버지보다 더 나이를 먹었고, 아버지는 이 세상에 안 계신다. 오늘 다시 철없는 딸의 다친 마음을 어루만지듯 펴고 쓰다듬었을 구겨진 상장을 들고서 아버지의 손길과 온기를 더듬는다. 내 어린 날의 상처 입은 마음도 가만가만 쓰다듬는다.
불현듯 이렇게 모아놓은 상장이야말로 아버지가 나에게 주는 상이란 생각이 든다. 어린 날 나름대로의 영광스러웠던 시간들을 모아 아버지가 내게 주신 상. 그토록 바랐던 아버지의 칭찬을 이제야 알아듣는다

기고자 소개

김주남

문예시대》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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