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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지도연구원

대전청소년

2019년 겨울호
청소년이 힘들 때
국번없이 1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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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목발

본문

부모님과 함께
김용숙
김용숙

부러진 목발

해가 한 뼘이나 남았는데 마음은 칠흑 길을 걷는다. 남편이 택시 운전을 하면서부터 종종 나타나는 증상이다. 차가 처참한 모습으로 널브러져 있는 도로에 피투성이가 된 남편이 구급차를 기다리는 망상에 사로잡힌다. 방정맞은 생각을 지우려 걸레질을 하고 애먼 옷가지를 빨아도 소용이 없다.
남편이 돈벌이를 위해 마지막 잡은 끈이 운전하는 직업이다. 목발 없이 한 걸음도 걸을 수 없는 그는 가속페달과 브레이크는 물론 모든 것을 손으로 작동한다. 목발을 마땅히 둘 곳이 없어서 운전석 옆에 놓는다. 이를 본 손님의 반응은 여러 가지다. 불안한 마음을 은근히 감추는가 하면, 엄지 척을 하며 위무해주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를 나쁘게 이용하기도 한다. 세상은 겉으로 볼 때 선량해 보여도 삶의 현장으로 들어가면 곳곳에 가면을 쓴 사람이 많다.
운전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몸이 불편해도 남자는 가정을 지키는 기둥이 되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으로 살아가는 남편은 손수 돈 버는 걸 보람으로 생각하고 충실한 삶을 살았다. 비바람이 불어도 눈보라가 휘날려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아프지 않은 한 늘 나가서 일했다. 일하고 돌아오면 천 원짜리를 세고 또 세며 세상을 다 얻은 양 하회탈을 그릴 때면 나도 덩달아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남편은 백미러가 떨어져 나가고 앞 문짝이 움푹 들어간 차를 몰고 들어왔다. 우듬지 떨어낸 고주박 모습이었다. 멀쩡하게 생긴 중년 남자가 그렇게 할 줄 몰랐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목발을 바라보며 열심히 사는 모습이 보기 좋다는 진심 어린 말에 이 런저런 이야기까지 나누며 운전했다고 했다. 그런 그가 목적지에 다다르자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하더라고 했다. 요금 낼 몸짓으로 지갑을 꺼내는 시늉을 하더니 차 문을 열어놓은 채 유유히 걸어가더라는 말에서 나는 가슴이 조여들었다. 경적을 울리며 아저씨를 목청껏 외쳐도 뒤도 돌아보지 않더라는 대목에서는 남편도 화가 나는지 얼굴이 붉어졌다. 자존심 하나로 살아온 남편이다. 자신의 몸을 미끼로, 따라잡지 못할 것을 예상해서 한 중년 남자의 행동에 걷잡을 수 없는 괘씸함을 느꼈다고 했다. 욱하는 마음에 차로 들이받아서라도 잡겠다고 골목길로 들어서자 턱없이 좁은 길에 차만 담벼락에 부딪혀 망가진 것이다.
남편의 자존감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사그라졌다. 비록 두 다리가 제 기능을 못하더라도‘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으로 살아온 그였다. 내려앉은 마음을 다독여 주는 게 우선순위라 생각되어, 인생 중년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남자의 처지가 초라하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떳떳한 삶을 사는 우리는 누구보다 행복한 삶이니 어서 잊으라고 했다. 한동안 말이 없던 남편은 고개를 끄덕이며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 후로 나는 아무리 늦고 이른 시간이라도 주차장에 나가서 그가 운전석에 앉으면 목발을 받아들고 들어왔다. 그러나 장애로 살아가는 삶은 녹록하지 않았다. 이 방법이 장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목발이 없으니 생리작용을 스스로 할 수 없었다. 어중간한 시간에 장거리 손님을 맞으면 꼼짝없이 고통을 견뎌야 했다. 결국, 목발은 원위치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멍석을 깔아야 하는 걸까. 해거름부터 파고드는 방정맞은 예감이 적중한 듯, 남편이 자정을 갓 넘은 시간에 경찰의 도움을 받으며 현관문을 들어선다. 그는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칠흑의 어둠을 뚫고 할증요금 시간에도 일해 왔다. 새벽이 희붐할 때까지 일하고 낮에 잠깐씩 자는 남편에게 이 시간은 초저녁에 불과하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말에 대답이 없다. 순간 범상치 않은 일임에 가슴이 요동친다. 부부란 함께 한 연수가 오래되면 표정만 봐도 열 마디 말을 주고받은 것만큼 알 수 있다. 이런 경우 차 상태를 보는 게 습관이 됐다. 미끄러지듯 주차장으로 향한다. 그런데 차 모습이 얄궂다. 애들이 차위에서 장난한 것처럼 여기저기 움푹움푹 들어가고 깨지고 긁히고 몰골이 말이 아니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기 때문에 이 모양일까. 궁금증에 남편이 누워있는 침실로 들어선다.
그때다. 속옷 차림으로 누워있는 남편의 몸에 시퍼런 멍이 보인다. 이리저리 들춰보니 몽고반점처럼 나타나는 피멍에 눈을 뜨고 볼 수가 없다. 하체가 약해서 반 토막에 불과한 몸에 누가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단 말인가. 양심 없는 상황에 말을 잇지 못하고 가슴만 쓸어내린다. “운전을 그따위 밖에 몬 한다 이겁니꺼? 쉬지 말고 달리라 카잖아요. 빨리 못 가믄 집에 가가 알라나 봐야지. 내 말이 말 같지 않습니꺼? 내가 당신보다 어리다꼬 말이 아이다 이거가?” 말을 높였다 내렸다 빈정대는 행동에 따귀라도 때리며 끝까지 해보고 싶었단다. 그러나 가당찮은 행동에 똑같은 사람은 되기 싫었으리라. 전부터 취객은 태우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승차 거부는 양심이 허락지 않았던 것 같다. 목발을 보고 시비를 걸 때는 참기 힘들었다는 대목에서는 북받치는지 울분을 애써 참는 듯했다. 이를 악물고 손님이 원하는 H 모텔로 갔는데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고 말을 잇는다.
취객은 가는 중에 잠이 들었고 목적지에 도착한 남편은 조심스럽게 손님을 깨웠단다. 그러자 잠을 깨웠다고 눈을 부라리더니 갑자기 주먹이 날아오더란다. 차 안에 있으면 더 맞을 것 같아서 부랴부랴 밖으로 나와 112에 전화를 했더니 이를 본 그는 더 사나워져 풀어 놓은 망아지처럼 날뛰며 차에 화풀이하더란다. 남편에게는 목숨보다 소중한 차다. 차가 망가지면 당장 학업 중인 두 자녀와 아내에게 미칠 영향도 그러하거니와 어렵게 구한 직업이기 때문에 몸으로 차를 막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남편이 짚고 있던 목발을 빼앗아 마구 내리치더란다.
끝내, 목발은 부러진 채 나가떨어졌고 남편은 주저앉아 옴짝달싹하지 못했다는 말에 나는 남편의 입을 막았다. 듣는 나도 정신이 혼미한데 말하는 사람은 어떠하겠는가. 취객은 목발만 부러뜨린 것이 아니다. 남편의 삶까지 부러뜨렸다. 목발은 꿈을 실현하는 세상을 향한 발이다. 기가 막혀서일까. 일그러진 삶을 사는 중년 남자와 취객에 대한 미움보다 오히려 감사한 마음에 두 손이 모인다. 비록 육체는 어리보기에 불과하여도 맑은 정신을 가진 사람과 얼굴을 맞대고 있으니 이 아니 행복한가

기고자 소개

김용숙

수필가, 시낭송가

계간 ≪동리목월≫ 신인상 등단

울산문인협회, 에세이울산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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