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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지도연구원

대전청소년

2020년 봄호
청소년이 힘들 때
국번없이 1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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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과 나

본문

부모님과 함께
김 경
김 경

악당

현관문 밖이 시끌시끌하다. 발자국 소릴 죽이며 문에 달린 조그만 렌즈에 눈을 갖다 댄다. 역시나 옆집 아이와 그 친구들이다. 서너 명이 계단에 모여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문을 박차고 나가고 싶은 충동을 꾹 누르자니 울화가 치민다.
옆집에 새로운 가족이 이사를 오고 난 뒤부터 엘리베이터 앞이며 계단이 하루도 깨끗한 날이 없다. 담배꽁초나 과자 봉지들이 떨어져 있는가 하면 심지어는 바닥이 누렇게 얼룩이 져 악취가 나기까지 한다. 그 집 아이의 짓인 줄 뻔히 알면서도 대놓고 말할 수가 없다. 자식들 이야기는 민감한 문제여서 행여 얼굴 붉히는 일이 생길까봐서다.
그 아이와 엘리베이터를 함께 탄 날이었다. 중학교 교복을 입은 아이는 내가 옆집에 사는 줄 알면서도 인사는커녕 불량한 표정으로 거울만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당황한 나머지 그동안의 행동에 대해 따끔하게 나무라야겠다던 마음도 잊고 허둥지둥 집으로 들어왔다.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나와 맞닥뜨린 아이는 애써 시선을 피하더니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휑하니 집으로 도망쳤다. 결국 우리는 몇 달 동안 말 한마디 못 건네 본 이웃이 되었다.
내가 쓰레기를 치우면 아이는 몰래 버렸다. 그런 일이 계속되자 급기야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우리 집 벨을 눌렀다. 맞벌이하는 옆집 부부를 만날 수가 없으니 나한테 하소연을 했다. 한 자리에서 반복되는 악취가 가장 큰 문제였다. 현장을 잡지 못했으니 꼭 그 집 아이 탓이라고 무작정 결론을 내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팽팽한 접전이 소리 없이 이어졌다.
대낮에 무리지어 집으로 온 아이들은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는 눈치였고 남은 담배 갑은 몰래 숨겨놓았다. 현관문 옆 벽에 설치되어 있는 소방함에서 우연히 담배 갑을 발견한 이후 습관처럼 열어보게 되었는데 담배는 모양만 다를 뿐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담배를 피운다고 다 불량학생은 아니다. 아들 둘을 키우는 동안 열혈엄마를 자처하며 학교에 들락거렸던 내가 남자 아이들의 세계를 모를 리 없다. 친구들과 어울릴 비밀스런 장소를 찾다가 어른들이 다 나가고 없는 틈을 노린 악당들의 허술한 계산이 오히려 천진스럽게도 보였다. 하지만 그런 일이 계속되자 옆집 부부에게 일러야 하는지는 여간 고민이 아니었다.
하루는 역시나 왁자한 소리에 밖을 엿보니 여럿이서 불장난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구긴 종이에 불을 붙여 던지고 받으며 낄낄대고 있었다. 그 순간만은 참을 수가 없어서 문을 박차고 나갔다. 놀란 악당들은 계단 위로 쏜살같이 달아났다. 한번만 더 이런 장난을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고함을 쳐놓고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들의 돌발행동이 걱정스러웠다.
결국 퇴근하는 옆집 여자를 불러 세웠다. 나보다 젊은 여자는 자신의 아이에 대해서 아는지 모르는 지 짙은 화장에 톤이 높은 목소리로 반가운 체를 했다. 혹시 강아지를 키우느냐고 물으니 아이들이 하도 졸라서 지인에게서 한 마리 얻어왔노라 했다. 그녀는 여전히 남아있는 누런 자국을 보더니 자기 집 개가 아니라며 정색을 했다. 며칠 뒤, 여자는 묻지도 않았는데 강아지를 다른 집으로 보냈다고 자랑처럼 늘어놓았다. 그녀에게 끝내 담배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문 밖까지 들리는 험한 소리는 내가 굳이 이야기 하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되는 그들만의 고충일 것이었다.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일련의 사건들을 볼 때 섣부른 충고를 할 배짱이 생기지 않았다. 좀 더 크면, 철이 더 들면 저절로 나아 질 거라 믿고 싶었다. 그렇지만 문만 열만 마주치는 이웃으로 살면서 불안하고 미심쩍은 행동은 이만저만한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시험치고 일찍 왔나보네.”, “오늘은 참 덥지?” 이후 그 아이와 마주칠 때면 작정하고 몇 마디를 건넸다. 아이는 갑작스러웠는지 대꾸할 시점을 잃고는 허둥댔다. 그러다가 다음번에 만나면 “예,” 하고 짧은 대답을 했고, 여전히 시선은 피하면서도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잘 들어가.” 했고 아이는 돌아보는 둥 마는 둥 고개를 숙이고는 문안으로 슥 사라졌다. 한번은 장바구니 속에 있던 아이스크림을 건네면서 “빈 봉지는 꼭 쓰레기통에 버리자.” 하고 장난치듯 말했더니 쑥스러운지 머리를 긁었다.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어느 날 악당은 나를 보자 먼저 인사를 했다. 부자연스럽기는 해도 나에 대한 경계를 풀고 있다는 신호였다. 아주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유리한 고지가 코앞에 있음을 감지했다. 매일같이 마주치는 나와 신경전을 벌이느니 차라리 쓰레기를 버리지 않기로 마음먹었나보다 생각하니 마음이 점점 누그러졌다. 여전히 무언가가 떨어져 있긴 했지만 복도는 점점 깨끗해지고 있었다. 아마도 내게 눈치가 보여 조심하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진심으로 그 아이가 부모의 걱정으로부터 벗어나는 시간이 오길 바랐다. 자식 키우는 부모마음이야 누군들 다르랴. 알고도 모른 척 해야 하는 인내심은 그들에 비하면 세 발의 피 아닌가.
아이와 내가 경계를 허물고 친해지는 중이었는데 이놈의 담배는 여전히 나를 시험한다. 아마도 내가 집에 없을 것이라 판단했음이 분명하다. 어른들이 헤아리지 못하는 고뇌가 저들만의 세상에도 있기는 하겠지. 그렇더라도 저 무지각한 행동을 계속 눈 감아 줄 수는 없다. 먼 훗날, 자신의 철없음을 꾸짖어준 옆집 아줌마가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해 주길 바라는 것은 무리일까. 절대절묘의 딱 한 수를 궁리하며 나는 지금 하얀 연기를 뿜어대는 악당들의 얼굴을 숨죽여 내다본다

기고자 소개

김 경

계간 《수필세계》 신인상 등단

동서문학상 수상

수필집 『매혹』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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