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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지도연구원

대전청소년

2020년 봄호
청소년이 힘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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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 1 - 아버지

본문

부모님도 함께
강승택
송봉은

나는 누구인가? · 1
- 아버지

한 편의 시를 읽다 당신 생각이 간절해졌습니다. 작품 속 주인공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운 까닭입니다.
이 시는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작품이라 합니다. 이야기 속에는 두 명의 인물이 나옵니다. 아흔이 넘은 아버지와 환갑을 지난 아들. 이들이 보여주는 내밀한 정서가 너무도 아름다워 시집에서 눈을 떼고도 한동안 책장을 덮을 수가 없었습니다. 언어가 꿈틀대며 가슴을 파고들었습니다. 끊임없이 영혼을 두드리는 언어의 파장에 나는 그만 눈을 감고 말았습니다.
이 시를 읽는 내내 당신이 생각났습니다. 작품 속 아버지에게서 당신이 생전에 내게 보였던 그 모습이,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 시를 하늘에 계신 당신께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그의 상가엘 다녀왔습니다.
환갑을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생(生)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노구를 떠났으므로, 하지만 정신은 아직 초롱 같았으므로 노인께서 참 난감해하실까봐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 허시것다아" 농하듯 어리광 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뉘였다고 합니다.
온몸, 온몸으로 사무쳐 들어가듯 아, 몸 갚아드리듯 그렇게 그가 아버지를 안고 있을 때 노인은 또 얼마나 더 작게, 더 가볍게 몸 움츠리려 애썼을까요. 툭, 툭, 끊기는 오줌발, 그러나 그 길고 긴 뜨신 끈, 아들은 자꾸 안타까이 따에 붙들어매려 했을 것이고, 아버지는 이제 힘겹게 마저 풀고 있었겠지요. 쉬 ―
쉬! 우주가 참 조용하였겠습니다. - 문인수, ‘쉬’ 전문
이 시는 작가가 정진규 시인의 부친상에 문상을 갔다가 선친에 대한 회고담을 듣고 쓴 시라고 합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시여서일까요. 읽는 내내 이들 부자가 보여주는 아름다운 정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내 마음속에 차곡히 들어왔습니다.
이 시는 어느덧 나의 애송시가 되었습니다. 세월은 흔히 감동의 무게조차 가벼운 깃털처럼 만들곤 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 시를 읽을 때면 가슴 한편이 먹먹해지곤 합니다. 부자지간에 흐르는 내밀한 정서가 쉼 없이 파장을 만들며 가슴속에 스며들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기억 속에 희미해진 당신의 실체가 뚜렷이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환갑이 지난 아들이 아흔이 넘은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뉘는 장면이 그 어느 풍경보다도 성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섭니다. 아흔이 넘어 오줌조차 혼자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아버지. 하지만 정신만큼은 아직도 초롱 같으신 아버지. 환갑이 지난 아들의 품에 안겨 오줌을 눌 수밖에 없는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난감했을까요.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허시것다아” 농하듯 어리광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누인 아들의 웅숭깊은 마음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보잘것없는 나(부모님이 자식에게 베풀어 주신 사랑에 비하면 자식의 존재란 얼마나 보잘것없는지요)를 만드신 아버지를 위해 “온몸으로 사무쳐 들어가듯 아, 몸 갚아드리듯 그렇게 그가 아버지를 안고 있”는 모습은 예순 갑자를 돌아 나온, 그래서 생을 누구 못지않게 이해할 수 있는 아들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일 것입니다. 아버지를 향한 존경과 사랑의 내밀한 정서가 물씬 묻어나는 아들의 행동에 절로 숙연해질 따름입니다. 이런 고마운 아들을 위해 아버지는 “또 얼마나 더 작게, 더 가볍게 몸 움츠리려 애썼을”런지요. 환갑이 지났어도 아버지에게는 아들일 따름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의 노고를 안타깝게 생각해 더 작게, 더 가볍게 몸을 움츠리려 애썼을 것입니다.
내게도 이런 존경과 사랑을 갚아드리고 싶은 아버지가 계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제가 미처 성숙한 어른이 되기도 전에 제 곁을 떠나셨습니다. 그분이 제게 주신 사랑을 저는 이제 갚을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와 같은 불효자는 이들 부자가 보여주는 따뜻함에 그저 마음 한구석이 먹먹해질 따름입니다.
힘이 없는 아버지의 오줌발이 툭, 툭 끊겨도 부자지간에 흐르는 내밀한 정서가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저 더운 강물이 만드는 “그 길고 긴 뜨신 끈”을 어느 누가 막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아들은 노구를 떠나는 생의 끈을 “자꾸 안타까이 따에 붙들어매려 했을 것이고” 아버지는 그런 아들이 안쓰러워 “이제 힘겹게 마저 풀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들 부자가 보여주는 절절한 모습에 자연도 그만 숨을 멈추었을 것입니다. 아니, 우주를 관장하는 하느님이 계셔서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해도 아마 침묵으로 이들 부자의 광경을 지켜보았을 것만 같습니다. 하느님의 가슴에도 따뜻한 강물이 넘쳐흘렀을 테니까요. 그래서 세상 모든 만물이 숨을 죽입니다.
“쉬! 우주가 참으로 조용하였겠습니다.”
아―, 아버지…….
아버지, 당신은 제게 하늘이었습니다.

기고자 소개

송봉은

2002년 현대수필 시인 문학상 수상

수필집 「당신의 마음에 기대어」. 「청소년을 위한 독후감」. 「비평문 쓰기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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