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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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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두금馬頭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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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함께
김수인
김수인

마두금馬頭琴

낙타가 사경을 헤맨 끝에 새끼를 낳았다. 물 한 모금 벌컥벌컥 마실 수 없는 고비사막에서 힘에 부친 난산을 한 것이다. 산고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귀여운 새끼가 안중에도 없을까. 어미낙타는 새끼를 두고 멀찌감치 서서 ‘내 몸 가누기도 힘든데 새끼가 대수냐’는 모습이다. 하지만 어미의 고통을 모르는 새끼는 비틀거리면서 어미 젖무덤을 찾아 헤맨다. 그 광경을 보고 있는 낙타 주인은 애간장이 타들어간다.
해산한 낙타가 사막 한 가운데 망연히 서있는 모습을 카메라가 오래도록 비추고 있다. 죽을 만큼 고통스런 산모의 모습! 그래도 태어난 자식을 어쩌겠는가. ‘낙타야, 제발 새끼에게 젖을 주렴.’ 초조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는데 회오리바람이 정신 좀 차리라는 듯 산모의 등을 휘갈긴다. 보다 못한 주인이 젖병에 양유를 담아 먹여보지만 새끼낙타는 번번이 밀어내기만 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짐승과의 소통을 고민하던 주인은 궁여지책으로 음악을 들려줄 결심을 한다.
사막의 바람은 무소불위의 연주자다. 낙타 주인이 어미낙타의 등에 자신의 애장품인 마두금을 매달아놓고 선창을 하며 바람에게 연주를 청한다. 자연과 인간의 합일! 사막을 내달리던 바람이 마두금을 흔드니 악보도 없는 애절한 곡조가 사막을 뒤흔든다. 아름다운 음악은 우주만물과 소통하는 공통언어라 했다. 멍하니 서있던 어미낙타가 마두금의 애달픈 선율을 듣고 눈물을 주르륵 흘린다. 잠시 새끼를 버린 회한의 눈물인가. 암컷으로 태어난 가혹한 운명이 서러웠을까.
어미낙타가 우울한 마음을 눈물로 씻어냈나 보다. 갑자기 뿌리친 새끼에게 성큼성큼 다가가서 젖을 물린다. 어미의 퉁퉁 불은 젖가슴에 매달린 새끼가 쏟아지는 모유를 물고 떨어질 줄 모른다. 휴! 마음 조이며 지켜보던 시청자들도 가슴이 뭉클했으리라. 하잘것없는 한 마리 짐승도 모정 앞에선 어쩔 수가 없나보다. 음악으로 짐승의 마음을 돌린 마부의 지혜가 무릎을 치게 한다. 지난여름 TV에서 보았던 고약한 산모에게도 음악을 들려줬더라면 그러진 않았을까.
취재기자가 김해의 어느 아파트 관리실에서 CCTV를 틀어 달라고 한다. 잠깐 뒤 화질 좋은 모니터에 젊은 여자가 검정 비닐봉지를 묵직하게 채워 지하주차장 구석에 슬쩍 버리고 간다. 얼마 후에 순찰을 돌던 경비원이 검은 물체를 쓰레기인 줄 알고 들춰보다가 멈칫 놀라 뒤로 물러선다. 이럴 수가! 비닐봉지 속에 담긴 것은 쓰레기가 아니라 생명이다. 손발이 꼼지락거리는 갓 태어난 핏덩이 아기다.
추적한 결과 비닐봉투를 버리고 간 여인은 방금 아이를 해산한 산모였다. 탯줄에 매달린 새끼를 젖 한 모금 먹이지 않고 그대로 쓰레기처럼 버린 것이다. 어쩌다 사람 사는 세상이 이 지경이 되었을까. 전신에 소름이 돋는다. 자식을 버리는 어미 심정이야 오죽하겠냐마는 그 무슨 변명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죄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키울 형편이 못되면 보육원에라도 맡겨야지. 살아있는 제 새끼를 썩은 생선 버리듯 던지고 가다니. 생명에 대한 모독이다. 태어나자마자 어미 손에 버려진 아이는 몇 시간을 비닐봉지 속에서 사투를 벌이다가 간신이 경비원에 의해 살아났다니.
사막의 낙타와 내 이웃의 사람, 두 산모의 그림을 화면으로 지켜보며 마음이 착잡하다. 문명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데 인류의 마지막 양심인 모정의 추락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갑자기 세상이 무섭다. 나도 낙타주인처럼 마두금 하나쯤 간직하고 싶다
* 마두馬頭 금琴: 몽고의 민속악기. 현악기의 일종.

기고자 소개

김수인

월간《수필과비평》 신인상 등단

수필집 『객승』, 『달바라기』,

선집 『돌아갈 수 없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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