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청소년지도연구원

대전청소년

2021년 여름호
청소년이 힘들 때
국번없이 1388
24시간 연결됩니다

십자매

본문

부모님과 함께
이선
이 선

십자매

이른 새벽 산에 오르면 예쁜 새들이 아침을 연다. 제일 먼저 굵은 목소리의 비둘기가 구구거리면 새들은 일제히 잠에서 깨어 아름다운 목소리로 인사를 나눈다.
산에서 내려오다 보니 아파트 정문 앞에 새 장수 아주머니가 왔다. 그것을 보는 순간 어렸을 적 언니네 집 대청 가득 아파트처럼 쌓여 있던 새장이 떠올랐다. 새장 속에는 갖가지 새들이 있었다.
그 중에 하얀 색에 주둥이만 빨간 귀족 같은 문조라는 새가 있었다. 그 새는 예쁘기는 하지만 번식력이 없어 알을 잘 품지 않았다. 그래서 문조가 낳은 알 하나를 알을 잘 품는 십자매 둥지에 넣어 주고 새끼를 까게 했다. 품을 때는 모르더니 새끼가 깨어나자 십자매는 제 새끼가 아닌 것을 알고 자꾸만 둥지에서 아기 문조를 찍어내었다.
언니는 그대로 두면 가여운 문조가 죽을 것 같아 꺼내어 조그만 상자에 솜을 깔고 어미 대신 밥을 먹여 정성껏 키웠다. 털도 없이 알몸이던 것이 차츰 자라 깃털이 나고 제법 어른 새가 되었다. 그래도 그것은 달아나려 하지 않고 늘 언니 주변을 맴돌았다. 마치 아기가 엄마를 따라다니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도 밖으로 외출을 하려면 잘 다녀오라는 듯 고개만 끄덕일 뿐 따라나서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형부께서 식사하러 들어오셨다. 언니는 밥상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졸졸졸 종종걸음으로 언니를 따라 다니던 문조가 형부 옆에 있는 줄도 모르고 형부께서 자리에 앉았다. 아뿔싸! 그 귀여운 문조는 그만 형부의 엉덩이에 깔려 압사를 하고 말았다. 두 분은 너무 안타까워 저녁 식사도 못하고 죽은 문조를 화단에 묻어 주었다. 그 뒤로 며칠을 새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 참을 수가 없었단다. 마치 자식을 잃은 부모처럼.
잠시 옛 생각에 잠기다 새들에게 눈을 돌렸다. 예쁜 잉꼬를 사 그들에게 금실지락(琴瑟之樂)을 배우고 싶기도 했다. 허나 새를 처음 길러보게 되는지라 조심스러웠다. 망설이다가 값도 제일 저렴하고 번식력이 강해 기르기가 가장 수월한 십자매 한 쌍을 샀다. 참새를 닮은 조그만 것이 아주 귀여웠다. 십자매를 데리고 집으로 와 베란다 빨랫대에 대롱대롱 매달았다. 새장이 빙글빙글 돌아서인지 낯선 곳이라 불안해서인지 두려운 듯 눈망울을 굴리며 푸드덕거렸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새는 숲 속을 좋아 하니 화분 사이에 놓기로 했다. 화분을 양쪽으로 갈라놓고 그 가운데 새 장을 예쁘게 놓았다. 기다란 난 잎이 새 장 옆으로 뻗어 마치 작은 숲 속 마을 같았다. 그랬더니 안심이 되었는지 잠잠해졌다.
오후 다섯 시 삼십분쯤 되었을까. 용케도 해지는 줄 알고 둘이 꼭 끼어 안 듯 둥지 속으로 들어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불이 환하게 밝혀졌는데도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너무 기특해 가만히 들여다보았더니 까만 눈동자만 반짝거렸다.
이튿날 아침, 잠자리에서 눈을 뜨니 갑자기 밖에서 ‘찌직찌직’ 하는 소리가 들렸다. 벌떡 일어나 베란다로 나갔다. 밤새 죽은 듯이 있던 십자매가 날이 샌 줄 알고 일어나 아침을 알렸다.
넓은 집에 사람은 단 둘, 그나마 대학생인 둘째는 아침 일찍 나가면 자정이 다 되어서야 들어오기가 일쑤다. 남편과 큰아들은 각자 직장 따라 나가 손님처럼 가끔 들린다. 살아서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수족관 속의 금붕어 가족 뿐, 화초들도 아침이면 날 반겨주지만 그 녀석들은 말수가 적어 좀 적적하다. 그런데 요 얍살스런 십자매는 고갯짓도 예쁘려니와 ‘찌직찌직’ 말을 걸어오니 더욱 정답다.
우리는 보통 사람끼리만 정을 나누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집안에 사람이 없으면 쓸쓸해하고 허전해한다. 핵가족으로 적어진 식구가 그나마 제각기 할 일이 달라 나 홀로 가족이 많다. 해서 요즘엔 ‘빈 둥지 증후군’이라는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 소리를 낼 수 없는 화초도 정을 주면 대화가 통하고 작은 금붕어나 새들도 친구가 된다.
갑자기 대가족이 모여 사는 기분이다. 수족관 속의 금붕어, 베란다의 화초들과 십자매 가족, 식솔들이 아주 많다. 그들에게 먹이를 주고 돌보기에 바쁘다. 그 중에 문조의 못 다한 애석한 삶을 생각하여 십자매 가족에게 더욱 관심이 간다. 나는 아기에게 기저귀를 갈아 채우듯 그들의 배설물이 묻은 깔판을 갈아 끼워 준다. 개운한가 보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좋아한다.
문조가 언니를 엄마처럼 따르듯 이들도 하루 속히 나를 알아보았으면 좋겠다. ‘내 손이 새 장안에 들어가도 놀라 푸드덕거리지 말고 사뿐히 앉아 준다면 얼마나 예쁠까’ 그들과 빨리 친해지고 싶어 엄마 새처럼 새소리를 내며 다가간다. 너무 사랑스럽다.
사람은 은혜를 모르는 일이 종종 있지만 동식물은 공들인 만큼 거짓 없이 잘 자라고 기쁨을 준다. 아무쪼록 내 집에 입양된 십자매가 건강하고 예쁘게 자라기를 바란다. 이른 아침 산에 오르지 않아도 새소리를 들을 수 있어 아주 상쾌하다

기고자 소개

이선
전직 교사
‘창작수필’ 수필등단(2001)
‘공무원문학’ 시 등단(2003)
저서 :
『나는 섬이 된다』 『환한 나이테』 『사막에는 뼈를 묻지 않았다』 『계단의 곁』 『꽃의 잠』
수필집 : 『자마이카』 『사십 년 만에 떠난 여행』
맨위로 이동 맨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