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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지도연구원

대전청소년

2021년 가을호
청소년이 힘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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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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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함께
김미수
김미수

터메인

터메인은 미얀마 여인들이 두르는 치마의 일종이다. 동남아시아에는 나라마다 그런 모양의 치마가 있다. 특히 원주민들이 사는 곳에 가면 한 부족이었나 싶을 정도로 생활상이나 의복이 닮아있다. 필리핀, 태국, 라오스, 미얀마 등을 여행하며 원시부족이 사는 마을을 둘러 볼 때마다 부르는 이름은 달라도 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미얀마에서 터메인이라 부르는 치마를 구입했는데 돗자리로, 이불로, 목도리로 두루 쓰임이 되어 여간 요긴한 게 아니었다. 마치 어릴 적 어머니의 넓은 치마폭이 연상되었다. 낯선 여행길에서 어머니의 품 같은 치마와 동행하다보니 마치 어머니 품에 안기는 듯한 평안이 찾아왔다.
새벽에 사원에 들르니 평화와 고요 속으로 내면 깊숙이 침잠되었다. 미얀마는 수양의 길에 들어서기에 알맞은 곳이라 여겨졌다. 황금 사원에서 기도하는 그들의 극진한 불심은 경건하였다. 세세년년 이토록 고요하고 평화로운 나라로 나아가기를 더불어 기도 했다. 다가서면 수줍은 듯 대하는 그들은 순박했다. 섬김이 무엇인지 스스로 알게 해주었다.
사원 주위에서 한 소년이 새 둥지를 들고 소원의 새를 팔고 있었다. 새가 하늘에 있는 신에게 소원을 전달한단다. 새가 전령사라는 말은 다른 나라를 여행하면서도 들은 적이 있다. 티벳에서는 독수리가, 페루에서는 콘도라가 그 역할을 한다 하였다. 과학문명이 발달한 현실에서도 이러한 믿음은 이어지고 있었다. 신에게 닿기를 염원하는 것은 아마도 인간의 능력의 한계를 알기에, 신에게 기대는 인간의 미약함에 있을 것이다. 작은 새가 어찌 그럴까 싶었는데, 이 사람 저 사람 새를 사서 소원을 달아 날리는 것이다. 먼 곳에 와 있으니 무사귀가를 바라는 소원이라도 빌어보아야겠다는 마음이 일어 새를 샀다. 단 하나의 소원, 가벼운 소원을 달라 한다. 소원이 가벼울 수 있을까?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모든 소원의 무게는 등가이지 않을까. ‘즐거이 여행을 마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게 해 주세요’. 새는 내 소원을 적은 종이 꼬리를 다리에 달고 높이 날아올랐다. 새가 보이지 않을 만큼 날아 오른 뒤 발길을 돌리려는데, 소년이 해바라기 씨 몇 개를 들고 휘파람을 불자 어디선가 새가 날아와 손바닥에 앉는다. 날아올랐던 새가 금세 날아와 해바라기 씨를 쪼으며 소원을 빌 다른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새를 파는 게 소년의 소원이고, 해바라기 씨를 먹는 것이 새의 소원인데, 사람들의 소원은 단 하나일 수 있을까.
여행에서 돌아온 지금, 미얀마는 급박하고 처절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뉴스에 나온다. 군부에 맞선 국민들의 희생이 이어지고 있다. 정치는 정치를 위한 정치이기 이전에 국민을 위한 정치여야 한다고 현자들이 전한다. 위민을 하지 못한 정치는 실패라고. 그러나 위정자들은 위민이기보다 권력을 앞세우며 위력을 행사하는데 급급하다. 무장한 군인들이 고요한 마을로 밀고 들어오자 여인들이 터메인을 벗어 겹겹이 빨래 줄을 매고 널어놓았다. 전진하던 무장군인들은 어떻게 했을까. 걷어치우고 짓밟고 지나갔을 수도, 멈추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장한 군인들은 빨랫줄 아래에서 멈췄다. 안도의 길로 접어드는 순간이었다. 터메인이 널린 빨랫줄을 지나면 남성성을 잃는다고 전해져 내려온다. 그네들의 전통이다. 전장 중에도 전통을 어기지 않는 이들의 믿음은 무엇 때문일까. 남성성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일까? 아니면 어머니에 대한 도전이 무례함이어서 일까. 전자 후자 모두일 것이다. 세상의 모든 평화를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에 다가선 것이라 믿고 싶다.
어머니를 짓밟은 자들이 무엇을 지킬 수 있을까.
어머니를 짓이기고. 걷어차고. 진군하는 자라면, 숭고함을 모르는 무모한 용맹이라면, 치욕스런 불명예로 남을 일이다. 영광스런 불멸의 길을 택하는 자는 후대에 영웅으로 남는다. 슬기로운 용맹은 멈춤과 전진을 스스로 선택할 줄 알았다. 넓은 어머니의 품으로 들어온 것이다. 각양각색의 씨줄과 날줄로 만들어진 터메인을 치마로 둘러본다. 아름답다. 그리고 이내 바닥에 펼쳐 앉아본다. 편안하다. 목도리로 감아본다. 따스하다. 이토록 어머니는 아름답고 편안하고 따뜻하다. 터메인이 널린 빨랫줄에서의 멈춤은 어쩌면 인간이 가장 누리고 싶은 평화를 원함이자, 폭력에 대한 저마다의 저항이지 않을까. 세상을 날아오르는 모든 새들이 신에게 소원을 전하여 모든 세상에 평화가 오기를 바래본다. 미얀마에 봄이 오기를… 어머니의 치마폭처럼 편안한 세상을 꿈꾸어 본다

기고자 소개

김미수
수필가 , 2003 한국문인 등단
문인화 초대작가
공저 『오월에 내린 눈』 외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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