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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지도연구원

대전청소년

2021년 가을호
청소년이 힘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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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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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함께
배정순
배정순

화해

“엄마, 왜 전화했어?”
“우리 똥강아지 보고 싶어 했지. 엄마가 맛있는 카레 끓여놓았으니 집에 가서 먹어.”
“응.”
“그리고 공부 쪼금만 했으면 좋겠어.”
“알았어.”
“영어 공부도 쪼금만.”
“아이, 싫어!”
“그래 우리 딸,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단골 미용실 원장과 딸의 대화다. 이들 모녀의 대화가 나를 부끄럽게 한다. 저맘때의 우리 모자는 편안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다. 어린 망아지 길들이듯 고삐를 조여 쉴 틈 없이 “공부하라”라고 다그쳤다. 어리지 않은 나이에 나는 결혼했지만, 아이를 다루는 데는 생속이었다. 아이를 어떻게 길러야겠다는 엄마로서의 바른 계획도 가치관도 없었다. 무식하게 우격다짐으로라도 공부만 시키면 똑똑한 아이로 성장할 줄 알았다. 문방구에서 문제지를 종류별로 사와 쉴 틈 없이 문제를 풀게 하고, 아이의 의사와 관계없이 미술학원, 웅변학원, 피아노 개인 교습까지 시켰다. 13평 아파트에 사는 수준으로는 넘치는 사교육 열이었다. 다른 곳에 드는 돈은 벌벌 떨면서 아이에게 들어가는 교육비는 아깝지 않았다.
아들이 친구들과 밖에서 뛰노는 꼴을 못 보았다. 노는 것을 보면 불러들여 책상 앞에 앉혔다. 친구들은 뛰노는데 공부해야 하는 아이 머릿속에 공부가 될 리 없다. 한데도 책상 앞에 아이가 앉아있어야 마음이 놓였다. 양돈가가 돼지 몸피를 불리기 위해 비좁은 울안에 가두어 먹이듯, 나도 아들에게 소화도 못 할 과도한 학습량을 들이대며 먹으라고 다그쳤다. 귀마저 팔랑귀가 되어 이 학원, 저 학원 끌고 다녔다.
쏟은 열성과는 달리 선생님으로부터 수업 태도가 산만하다느니, 집중력이 떨어진다느니 지적받기 일쑤였다.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때 조금만 지혜로운 엄마였다면 아이의 마음을 알아봤어야 했다.
중학교 때까지는 그런대로 상위권이었다. 아들이 반기를 들기 시작한 건 사춘기 들어서면서부터였다. 시간 절약을 위해 등하교를 직접 시킬 요량으로 운전면허까지 땄는데 아들은 엄마 차타기를 거부했다. 얼굴엔 웃음기가 사라지고 묻는 말에나 마지못해 입을 뗐다.
고교시절, 어머니 모임 때였다. 선생님이 야간자습을 할 때 한 번씩 와 보라는 말을 넌지시 했다. 밤에 학교에 찾아가 문틈으로 여기저기 찾아보았다. 공부하고 있어야 할 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남의 자식의 일탈을 흉보았는데 아들은 자습실을 벗어나 당구장을 드나들고 있었다. 나에 대한 반감도 있었지만, 그렇게라도 숨 쉴 구멍을 찾아 나선 것이었으리라.
성적이 곤두박질친 건 당연했다. 성적표는 아예 가져오지도 않았다. 집에 들어와도 눈길을 피해 방문을 꼭 닫는 것으로 바리케이드를 쳤다. 아들은 이미 내 손에서 주무를 수 있는 선을 넘어서 있었다. 야망에 찬 스파르타식 교육은 고배를 마셨고, 집안은 냉기만 감돌았다.
이제는 반대로 아들 처분만 지켜보는 형국이었다. 다행히 공부가 아주 바닥은 아니었던지 원하던 학교는 아니었지만 수시 합격이라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들이 타 도시 학교로 가기 위해 집을 떠났다. 아들의 빈자리는 전쟁 속에서 팽팽한 활시위를 잡고 있다가 놓친 궁수처럼 허탈했다. 홀가분함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집안을 둘러보니 아들의 빈자리가 너무 컸다. 나는 무엇을 얻기 위해 그리도 극성을 떨었을까. 콩 심은 데 콩 나온다고 내 그릇은 생각 못하고 무지하게 아들에게 과도한 짐을 지웠다는 자책이 따랐다. 떠나간 아들이 안쓰러워 마음이 쓰렸다. 여태까지 내가 아들에게 강요한 건 부, 명예욕을 부추기는, 그래서 내가 못 이른 꿈을 이루려는 탐심은 아니었을까.
감시의 눈길이 없는 대학 생활이 아들이겐 물 만난 고기 같았으리라. 취업 준비에 열중해야 할 시기에 아들의 어깨에 메고 다니는 건 포켓볼 스틱이었다. 활시위는 떠났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끝이라고 생각되는 자리에서도 놓아버릴 수 없는 게 모정인가. 지켜보는 마음이 씁쓸했다.
그러던 아들이 대학 졸업과 동시에 취업의 낭보를 알려 왔다. 내가 꿈꾸던 자리는 아니었지만, 아들이 뭔가 의지를 보였다는 게 중요했다. 대학을 나와 갈 길 잃어 헤매는 또래들이 다수인 시대에 제 앞가림은 하겠다는 것 아닌가!
시간은 모든 것을 덮고 지나간다고 하지만 아들 마음에 패인 골은 어찌 메울 것인가. 훼손된 자연환경이건, 상처 입은 마음이건 원상회복하는 대는 파괴될 때 소요된 시간만큼, 아니 그보다 더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게 내가 풀어야 할 숙제였다.
고심 끝에 마음을 여는 자리를 마련했다. 술은 지나치면 독이 되지만 적당할 땐 삶의 윤활유가 되기도 한다. 술자리의 효과는 주효했다. 그 자리에서 아들에게 나의 무지에 대한 용서를 빌었다. 아들도 세상 속에서 무참히 깨지면서 자신이 얼마나 빗나가 있는지를 깨닫는 중이라 했다. 고맙게도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부모님의 사는 모습을 생각하면 함부로 행동할 수 없었노라고 하니 왠지 가슴이 찡했다. 아들에게 이런 소리 들을 자격이 있는 엄마인가.
주말, 아들이 내려오는 날이다. 밥상을 마련하는 손길에 신명이 난다. 마주 앉은 자리는 패인 자국을 메우고 화목을 다지는 토론의 장이 되고 있다

기고자 소개

배정순

계간 《에세이문예》 등단(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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