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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지도연구원

대전청소년

2019년 가을호
청소년이 힘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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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목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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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함께
권춘애
권춘애

마지막 목욕

목욕탕 안은 김이 잔뜩 서려있어 사람의 형체가 희미하게 보인다. 자리를 잡고 시간이 지나자 안개가 걷힌 듯 탕안이 환하다. 오늘따라 실내는 한산해서 드문드문 사람들이 앉아 있을 뿐이다.

맞은편 욕조 근처에 서너 살 돼 보이는 아이가 눈에 띈다. 장난감 바가지에 물을 퍼서 엄마 등에 열심히 붓는다. 젊은 여자는 “아이, 시원해!”라며 아이의 장난에 장단을 맞춘다. 아이는 까르륵 거리며 싱그럽게 웃는다. 젊은 모녀의 물장난이 정겹게 보인다. 멍하니 바라보다가 떠올리고 싶지 않은 옛날 기억에 젖는다.

아이가 태어나고 한 달쯤 지나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다. 선천성 심장병이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은 것이다. 병을 고치기 위해 전국의 유명한 병원을 수소문해서 찾아다녔다. 서울까지 오르내려야 했지만 피곤함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의사들마다 약간의 견해 차이가 있었다. 간혹 아이가 커가면서 살이 차 구멍이 막히는 경우가 있다는 말에 희망을 가졌다.

간절한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심실과 좌심실 사이 힘줄 부분이라 수술 자체도 어렵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려운 수술이니 미국으로 보내면 어떻겠냐는 주위의 말을 들었다. 미국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알아보았다. 심장재단에 등록을 하면 가능하다는 말을 들었다. 등록을 하고 기회가 주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언제 수술을 받게 될지 알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희망을 가지기로 했다. 연락을 기다리는 동안 한 달에 한 번씩 서울 S 병원 심장전문의 선생님을 찾아가 검진을 받았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고부터는 부쩍 힘들어했다. 심실의 구멍으로 인해 판막이 점점 손상되고 있었다. 의사선생님은 미국에 갈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으니 수술을 결정하라고 했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빙빙 돌고 아득했다. 앞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입원을 하고 바로 수술 전 검진을 시작했다. 수술에 필요한 검사도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잘 참고 이겨내 주었다.

수술 전 날이었다. 수술 동의서를 읽어보고 사인을 하라고 했다. 수술이 잘 되어 살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도 적혀 있지 않았다. 반면, 의사가 수술을 아무리 잘 해도 죽을 수 있다는, 내가 생각하기엔 순전히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글귀만 빼곡히 적혀있었다. 심장을 꺼내 수술을 할 동안 임시로 달고 있어야 하는 기계 심장도 간혹 불량품이 있고, 재수 없이 내 아이에게 그 불량품이 걸리게 되면 수술과 상관없이 죽을 수 있다는‧‧‧ 죽을 수 있는 확률만 나열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어느 한 문장 따질 수도 없었다. 믿고 맡길 수밖에 없었기에 눈물을 훔치며 사인을 했다.

병실로 간호사가 찾아와 열쇠 하나를 건네주었다. 병원 안에 있는 목욕탕 열쇠라고 했다. 내일이면 아이와 영영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니 마지막으로 목욕을 시키라고 했다. 상대방의 마음은 눈곱만치도 헤아리지 않고 직업적으로 뱉는 무심한 말투에 억장이 무너졌다. 간호사의 냉정한 그 한마디는 내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혔다. 억만 개의 바늘이 동시에 내 가슴을 찔러댔다. 어찌 그리 냉정할 수가 있는지 쳐다보기도 싫고 말도 섞기 싫었다.

목욕탕 문을 열었다. 작은 공간의 허름한 목욕탕이었다. 욕조에 따뜻한 물부터 가득 받았다. 아이를 안아 물속에 내려놓고 등짝을 안으니 뼈만 앙상했다.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앞을 가려 아이를 똑바로 볼 수가 없어 등만 쓰다듬었다. 내 몸속을 돌던 피가 일순간 멈춰 서고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냉정한 간호사의 말처럼 아이와의 마지막 목욕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에 흐르는 눈물을 삼키고 또 삼켰다.

아이가 손으로 물을 튕겼다. 수술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철부지 아이였다. 엄마가 흔들리면 아이는 어떻게 되나 하는 생각에 입술을 깨물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앙상한 등에 따뜻한 물을 끼얹었다. 내일이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간지럽다고 깔깔 웃었다. 우는 모습을 보여 불안을 안겨 줄까 봐 나는 몇 번이나 세수를 했다. 아이 몸에 비누칠을 하고 물을 끼얹고 또 비누칠을 하고 물을 끼얹었다.

미안하다, 이런 고통을 안겨줘서 미안하다고 웅얼거리는 말은 삼키는 울음 속에 파묻혔다. 울음을 꾹꾹 삼키며 배우처럼 웃는 연기를 했었다. 그렇게 목욕을 끝내고 아이를 꼭 안고 병실로 오기까지의 그 시간이 나에겐 무간지옥을 헤매는 시간이었다.

아무리 힘든 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희미해지고 잊히기 마련이라고 했다. 이제 기억에서조차도 희미해졌을 정도의 세월이 흘렀건만, 오늘같이 목욕탕에서 아이들과 마주하게 되면 영화필름이 돌아가듯이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숨조차 쉴 수 없었던 그 아픈 순간의 기억들은 얼마의 시간이 더 지나야 잊힐까. 지우개로 싹싹 문질러 깡그리 지울 수는 없는 걸까.

맞은편 쪽 아이는 아직도 엄마의 등에 물을 부으며 깔깔거린다. 나는 애써 기억을 지우려 등을 돌린다

기고자 소개

권춘애

《문학예술》 수필 등단

《아동문예》 동화 등단

한국문인협회, 한국에세이포럼 회원

수필집 『별을 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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