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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가을호
청소년이 힘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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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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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함께
엄옥례
엄옥례

타법

'탁탁!' 큐대에 맞은 공이 경쾌한 소리를 터트리며 궤적을 그린다. 득점에 성공한 선수는 다시 큐 끝을 다듬으며 눈동자를 굴린다.

카운터에 앉아 당구 경기를 바라본 지 몇 년이 되었다. 처음에는 무연히 보던 풍경이었으나 기묘한 공의 움직임에 점점 매료되었다. 타법에 따라 공은 일이삼차 함수의 그래프를 그리기도 하며, 당기고, 밀어내고, 충돌하면서 아슬아슬하게 득점할 때마다 예술 작품을 본 듯 머릿속에 잔영이 남는다.  

당구대는 완전히 수평이다. 비탈도 돌부리도 없어 얼핏, 쉽게 보이나 막상 득점을 하기란 그리 만만치 않다. 선수는 공의 거리에 따라 힘을 조절해야 하고 위치에 따라 각도도 가늠해야 한다. 나름대로 계산을 하고 공을 치지만 예측 못한 충돌이 일어나거나 큐미스가 나는 바람에 득점에 실패하기도 한다. 그렇게 공은 앞일을 다 알지 못하는 우리네 삶처럼 당구대 위에서 인생 함수의 그래프를 그린다.

오늘도 동네 김 원장, 강 사장, 박 사장이 모였다. 먼지 한 점 보이지 않는 당구대 위에 빨강, 노랑, 하양 공이 놓여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처럼 한 평 남짓한 당구대 위의 공도 알록달록하다. 색깔이 서로 다른 세 사람이 어울려 당구를 치는 모습은 마치 세상의 축소판을 보는 듯하다.

큐 끝에 쵸크를 살살 바른 김 원장이 공을 겨눈다. 키가 작고 몸집은 왜소해도 강한 기운이 느껴진다. 수학 학원 원장답게 정확하게 각도를 계산한 다음 공을 친다. 신중하게 공을 겨누는 동안 옆 사람들도 숨을 죽이며 지켜본다. 그의 타구는 다른 사람에 비해 부드럽고 간결하다. 난이도가 높은 공을 칠 때는 아이스 링크를 수놓는 피겨 선수의 스케이트처럼 궤적이 유려하다. 삼각함수를 잘 푸는 수학 선생답게 어려운 공도 잘 치기에 동네 당구장에서는 고수 대접을 받는다.

채소 가게 강 사장은 당구대에 바짝 붙어 서서 삑삑 소리를 내며 쵸크를 바른다. 잔꾀가 많은 그는 공을 모아 대량 득점을 노릴 요량으로 끌어치기를 즐긴다. 끌어치기는 힘을 적절히 조절해야 하고 다음 공을 예측하는 눈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강 사장은 욕심이 앞서 타법이 불안하다. 공이 멈추기도 전에 큐를 드는가 하면 팔에 힘이 너무 들어가 큐미스가 잦다. 그럴 때면 고개를 갸웃거리며 큐 끝을 째려보다가 당구장을 휘휘 돌며 다른 큐를 골라온다. 어쩌다 멋지게 득점할 때면 희색을 감추지 못하고 어깨를 들썩인다.

그 다음은 의자에 앉아 느긋하게 구경하던 박 사장이다. 종업원이 열 명 넘는 중화요리 집 사장답게 몸집도 왕서방 스타일이다. 그저 사람 만나기를 즐기는 사람이라 당구 기술에는 별 관심이 없다. 짜장면 말듯 면발만 잘 뽑으면 된다는 주의다. 당구도 일관성 있게 힘으로만 친다. 그러다 공이 깨지거나 당구대 바닥이 찢어질까 염려가 될 정도다. 마음을 비운 탓인지 행운 샷이 빈번히 일어난다. 그럴 때 박 사장은 그것도 기술이라며 우기다가 원성이 높아지면 입막음으로 짜장면 한 그릇씩을 돌린다.

그들의 세상살이도 당구 타법만큼이나 개성이 있다. 김 원장은 공무원을 그만두고 약학을 공부해 대형약국을 경영했다. 약국이 부도가 난 뒤, 학원을 차렸으나 기대에 못 미치는 분위기다. 다양한 재능이 오히려 탈이 되었을까. 거기에 깐깐한 성격이 난관을 자초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가 하면 강 사장은 잔 욕심이 많고 입이 쉴 새가 없다. 춘향전의 방자처럼 무엇을 해도 체통이 서지 않는다. 하지만 잔정이 많고 붙임성이 좋아 그의 채소 가게는 점심때가 지나면 물건이 동이 난다. 매일, 은행에 들렀다 오는지 보란 듯 카운터 옆 의자에 앉아 통장을 넘긴다.

강 사장에 비해 무게감이 있고 일관성이 몸에 밴 박 사장은 남보다 학력이 높거나 발 빠른 면은 없다. 그래도 성격이 호탕하고 믿음직스러워 동네에서 중요한 자리를 맡고 있다. 잡기를 모르고 자신의 일을 천직으로 여긴 뚝심 덕분에 탄탄한 부를 쌓았지 싶다.


세계적 당구 선수인 '브롬달'은 밀어치기, 그에 필적하는 '자네트'는 끌어치기를 구사한다. 경기에 들면 둘 다 숨이 막힐 듯 정교한 기술로 당구공을 부린다. 브롬달이 짜장면 뽑는데 고수가 아니듯, 김 원장, 강 사장, 박 사장, 이들 역시 당구에는 고수가 아니지만 모두 자신에게 맞는 직업을 선택하고 자신만의 타법으로 득점을 한다. 신이 사람마다 재능을 골고루 나누어주었기 망정이지 모두 다 똑같은 재능을 주었다면 사공 많은 세상은 이미 산으로 가지 않았을까.

판화 같은 당구대지만 그 위에서 펼쳐지는 풍경은 역동적이다. 당구 고수들의 진검승부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이 있다. 그런가 하면 동네 김 원장, 강 사장, 박 사장의 경기는 산만하지만 함께 즐기는 재미가 있다. 그것이 당구장에서 벌어지는 진풍경이다. 파란 당구대 위에 알록달록 공이 있어야 경기가 되듯 세상도 여러 빛깔의 사람들이 어울려 온전한 그림이 된다.

나는 살면서 어떤 기술을 구사했을까. 욕심을 내서 끌어 치기도 하고 멀리 보고 밀어치기도 해보았다. 그래도 잘 안 되면 비틀어 치기도 했다. 승부를 결정짓는 순간에 정신이 흐트러져 큐미스를 내기도 했다. 앞길이 불안해 점집 문을 두드려 화를 피하는 방법을 묻기도 했고 복권 한 장에 행운을 걸기도 했다. 귀가 얇은 탓에 훈수대로 치다가 겪은 낭패야 말하기도 쑥스럽다. 상황에 맞는 기술을 부려야 하지만 다양한 기술은커녕 주특기 하나 없으니 아무래도 나는 인생의 고수는 아닌 듯싶다.

삶에서 나는 치밀하게 계산하고 정밀한 타법을 구사하지는 못해도 큐를 손질하고 당구대를 정돈하는 기술은 제법이다. 소소한 깨달음이나 그것이 나만의 타법이다. 손님이 다 가고 당구장이 고요해지면, 오늘 득점을 셈하고 불을 끈 후, 하루의 셔터를 내린다. 세상의 한 풍경인 나도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어둠속으로 종종걸음을 걷는다

기고자 소개

엄옥례

계간 《수필세계》 신인상 등단

한국에세이포럼 회원

시흥문학상 수상

독서심리치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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