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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청소년

2019년 가을호
청소년이 힘들 때
국번없이 1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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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저변(底邊) -영숙이-

본문

우리들의 시간
김성국
김성국

기억의 저변(底邊)
-영숙이-

지금 나는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다. 나도 한 때는 소설을 열심히 썼다. 소위 신춘문예 당선 작가이며 소설가협회 활동도 했다. 대학원에서 현대문학을 전공하면서 야심찬 꿈을 꾸기도 하였다. 그러나 사립학교 국어교사로 채용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삶에 변곡점이 생겼다. 다는 말할 수 없지만 1년 만에 대학원을 자퇴했고 몇 년 뒤 글쓰기도 그만두었다. 그 젊은 날, 내가 남겨놓은 노고(勞苦)의 산물은 부끄럽게도 동인지 활동을 하면서 발표한 단편 소설 몇 편과 350쪽에 달하는 타인의 대필 회고록 한 권 뿐이다. 아직도 내 서랍 속에는, 젊은 날 대학 노트에 갈겨 쓴 수많은 이야기들이 빛을 보지 못하고 묻혀 있다. 이렇게 된 숱한 일들이야 어찌 다 쏟아낼 수 있으랴만 나는 그렇게 문학인들 사이에서 잊히기를 바라면서 살았다.

교직에 발을 들여놓은 뒤 30년, 참으로 덧없는 세월이 흘러가 버렸다.
2017년 ‘대전청소년’지(紙) 가을호에 정말 오랜만에 원고 청탁을 받고, 40 중반을 넘긴 제자 동철이에 대한 이야기를 기고한 적이 있다.

“저는 정말 수줍고 겁이 많은 아이였어요. 야간자율학습 시간이었는데 갑자기 배가 돌면서 싸르르 아파오는 거였어요. 1학년 교실이 4층이었고 화장실은 복도 끝에 있었잖아요. 냄새나는 재래식 화장실에 조명시설이 엉망이어서 밤엔 많이 무서웠어요. 수업 시간이나 자습 시간에 화장실 가는 것도 엄격하게 제한하던 때였는데, 마침 복도를 순시하시던 선생님께 손을 들고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했어요. 선생님께서는 그러라고 선뜻 허락해 주셨어요. 선생님께 고맙다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저는 급하게 교실에서 뛰어나왔어요. 잠시 뒤였어요. 생 땀이 날 정도로 힘들게 볼일을 보고 있는데 화장실 입구 쪽에서 선생님이 나지막이 노래를 불러주시는 거예요. ‘나 아직 안 가고 여기 서 있다.’, ‘너 무섭지 않아도 돼.’ 안에 있는 저에게 마치 그러시는 것 같았어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런 신호를 보내주신 선생님이 생각할수록 더 고맙고 감사한 거예요. 그래서 지금까지도 제 아내에게 몇 번이나 이 얘기를 하곤 합니다.”

핵심은 이런 이야기였는데 이후 나에게는 작은 변화가 생겼다. 불현 듯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28년의 시간 속에 분실한, 잃어버린 나의 어떤 한 모습을 동철이가 깊은 곳 어딘가에서 건져 올려주었다는 고마움도 있었지만, 내 가슴에 아직 완전히 식지 않은 정서적 감흥이 살짝 살짝 내 가슴을 건드려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후 많지는 않았으나 이 글을 읽은 지인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선생님 글 잘 읽었어요. 가슴이 따뜻해지더라구요.”
이 말 뒤에 나는 예기치 않은 질문을 하나 받았는데, 이후 다른 사람으로부터 똑같은 질문을 두 번 더 받으면서 내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그 학생, 동철이었나요? 노래를 불러주셨다는데 무슨 노래였는지 정말 궁금했어요. 유행가는 아니었을 것 같고…”
나에게는 느닷없는 질문으로 여겨졌지만 ‘그래. 무슨 노래였더라.’시간이 지나면서 내 자신이 더 궁금해졌다. 그러나 처음 동철이의 전화를 받았을 때 28년 만에 만나는 녀석이 생각나지 않았던 것처럼, 그 날 받은 질문에도 전혀 대답해 줄 수 없었다.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날 이후, 틈만 나면 무슨 중요한 숙제를 떠안은 초등학생처럼 고민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내 가슴이 이후 조금씩 덥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었다.
지나간 일들이 소중한 것일수록 그 기억 또한 울림이 크게 남을 텐데, 나는 많은 것들을 잊어버리면서 살았구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나는 줄곧 ‘기억’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이전의 나를 찾아보고자 노력했다.
내 안에는 과거의 어떤 인상적인 경험이나 일들이 둥지를 틀고 있었을까. 나를 알아달라고 간절하게 손짓하는 어떤 아련한 기억들은 또 없었던 것일까. 어떤 기억들은 동틀 무렵의 해처럼 나의 작은 뇌 어느 수면 아래 아직 잠겨 있을 터인데, 그 중 하나라도 내가 건져 올리려고는 하였던가. 오히려 왜 나는 자꾸 이들을 밖으로 밀어내기만 했던가. 여전히 깜빡거리며 신호를 보내고 있는 내 어릴 적 기억의 단상 하나만이라도 지금 떠올려 보는 것은 어떤가. 한동안 나는 그렇게 생각이 많았다.
‘무슨 노래를 불러주었어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주기 위해 골몰하기는 했으나 사실 무슨 노래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잊히고 사라진 기억의 밑바닥에 흩어져 있는, 그러나 아직 신선함을 간직한 조각조각들이나마 하나 둘 퍼 올리고 싶었다.
그것이 비록 엉성한 모습으로 이곳저곳 흩어져 있을망정 그것들의 줄기 하나 잡는 일이 나를 바로세울 수 있는 일이라고 믿었다. 그 줄기를 잡고 가지를 뻗어가는 쪽으로 집중하다 보면 거기에 오랫동안 잃어버린 본래의 나도 숨어 있을 것이다.
토종개 덕구가 빠져 죽은 네모난 우물과, 동구를 끼고 돌던 대숲의 스산한 서걱임, 그리고 동구 밖 논배미에 잘려진 벼의 밑둥치를 적시고 피어오르던 물안개 등 내 머릿속에는 광도(光度)가 다르게 수많은 기억의 점이 새겨져 있다.
헤아릴 수 없는 기억의 점들 사이에서 밝게 빛나는 점 몇 개 찾아낸 것은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제 다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서둘러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았다.
교사 초년병 시절의, 때가 덜 낀 예전의 나를 찾아준 동철이가 고마웠다.
이를 계기로, 내가 기억의 밑바닥에서 숨죽이고 있던 영숙이를 떠올린 것은 또 하나의 행운이었다.
영숙이는 이전 시간의 끝이었고 앞으로의 시간의 시작이었다.
기억이 하나의 나무라면, 그것의 가장 아래쪽 뿌리에서 영숙이가 기억의 작은 점이 되어 구조요청이라도 하는 발광(發光) 신호처럼 반짝거렸다.
어둠 속에서 찾은 그 신호를 놓치지 않으려 나는 메모 용지를 찾았다. 그리고는 영숙에 대한 이야기를 거침없이 써나갔다.

○○읍에 있는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우리 학교는 입학 후 3학년까지 새로운 반 편성 없이 진급하던 것이 관례였다. 그래서인지 아주 오래된 친구들이지만 지금도 기억나는 친구가 여럿 있다. 당시 교장선생님의 손녀라는 소문이 돌던 이영숙이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가 있었다. 부반장이었다.
어느 날 담임 선생님께서 영숙이를 불러 내셨다.
영숙이의 존재가 처음 머릿속에 각인된 날이었다.
담임선생님 성함은 송영자 선생님이셨다. 그 날 영숙이가 처음 눈에 들어온 것처럼 선생님의 인자한 미소도 처음 보았다. 선생님은 교단 아래에서 교탁 쪽으로 몸을 약간 기댄 모습으로 영숙이를 호명하셨다.
하얀 색 원피스를 입고 교단에 오른 영숙이는 나와는 다른 세계의 아이 같았다. 당시 대부분의 여학생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귀의 중간 까지 머리를 짧게 깎아 올렸다. 앞머리는 눈썹 위에서 일자로 잘라 독일군 모자와도 같은 모양의 머리 스타일을 바가지처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영숙이는 달랐다. 지금도 젊은 대학생들에게나 볼 수 있는 예쁜 숏커트 머리였다. 귀 옆으로 여러 개의 검은색 실핀도 보였다. 그 머리 모양이 낯설지 않았다. 그리고 틀림없이 예쁘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 영숙이의 얼굴 살처럼 느껴지는 흰 옷이 어린 내 눈에 확 들어왔다. 허리 쪽으로 잘록한 원피스였다. 노란색 나비 모양의 문양이 수놓아진 원피스가 고급스러워 순간 빛이 났다.
교단에 오른 영숙이가 수줍은 듯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렇게 엷은 미소를 감추면서 수줍은 듯 상체를 한 번 비틀었다.
“자 여러분, 영숙이가 율동도 참 잘하지만 노래도 정말 잘 해요. 우리 함께 영숙이의 노래를 들어볼까요.”
선생님의 말씀에, 영숙이가 입꼬리를 올리며 선생님과 눈을 마주쳤다. 선생님이 곧바로 눈을 크게 뜨고 입꼬리를 늘이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영숙이가 잠시 망설였다. 키가 작은 나는 맨 앞자리 중앙에 앉아 있었다.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정적이 흘렀다.
바로 그 때
“자 박수~”
영숙이만 바라보던 선생님이 이번엔 우리 쪽을 쳐다보셨다. 선생님이 유도하는 박수 소리가 꼴깍 침 넘어가는 소리를 삼켜버렸다. 일정치 않은 고사리 박수가 실내에서 엇박자를 냈다. 나도 덩달아 손뼉을 쳤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영숙이가 율동과 노래를 거의 동시에 시작했다.
제 자리 걸음을 하면서 양 손은 동그란 모양으로 넓게 원을 그렸다.
“찾아 오는 사람 없어~”
박자를 맞추며 머리를 천천히 좌우로 까딱 까딱 흔들었다.
“밝~은 달~만 쳐다 보니~”
계속 제 자리 걸음을 하면서 양 손을 아까와는 반대 방향으로 동그랗게 말아 올렸다. 연속 동작으로 고개를 창문 쪽으로 돌리면서 아주 천천히 시선을 하늘 방향으로 향했다. 덩달아 내 눈도 홀린 듯 창밖으로 움직였다. 푸르고 푸른 하늘이 보였다. 그 푸르름에 기대고 서 있는 플라타너스도 보였다. 푸르름 속에서 햇빛이 눈부셨다.
“외롭기 한이 없다~”
이번에는 양 손을 가슴에 X자 모양으로 다소곳이 얹으며 눈을 감았다.
“내 동무 어디 두고 이 홀로 앉아서~”
처음 듣는 노래였다.
영숙이는 여전히 박자를 타고 제 자리 걸음을 하는 중이었다.
“이 일 저 일을 생각하니~ 눈물만 흐~른다~”
조심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가녀린 움직임이었으나 익숙해 보이는 율동이 계속되었다.
이 광경을 영숙이의 코앞에서 보고 들으면서 나는 순간 어지럼증을 느꼈다.
노래는 어느새 2절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 다음부터는 노래 가사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뿐사뿐 가볍게 제 자리 걸음을 계속 하는 동작과, 잠깐 잠깐 그윽하게 감았다가 뜨는 영숙이의 눈과, 그 눈을 품고 있는 영숙이의 고요해 보이는 표정이 내 눈으로 머리로 가슴으로 아주 진하게 전해졌다.


이렇게 한 번 떠오른 영숙이에 대한 기억은 물방울을 이루다 샘물처럼 맑은 물줄기를 만들었다. 나는 우선 무슨 노래를 불러주었는지 제일 궁금해 한, 내 친구 여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쩐 일이냐? 네가 먼저 전화를 다 하구.”
반가움을 감추는 친구에게 다짜고짜 용건부터 전해주었다.
“나, 기억났어. 그 노래…”
“무슨 말이야?”
친구가 벌써 잊은 모양이었다.
“내 제자 동철이 말야.”
“동철이? 아, 그 수필.”
이제야 생각난 듯 친구가 반색을 했다. 많이 궁금하지 않았던 거로군. 그러나 괜찮았다.
다소 맥이 빠지긴 했으나 나는 친구에게 알려주기는 해야 할 것 같았다.
“현제명이라는 작곡가… 그 사람 알고 있지? 그 분이 작사 작곡 했더라구.”
애초부터 그 노래가 무슨 노래였는지는 상관없지 않았던가.
어쨌거나, 내 기억의 바닥까지 샅샅이 훑어내려 가다가 찾아낸 영숙이 아닌가.
그 영숙이를 바라보며 그녀를 가슴에 담아 두었던, 어리지만 매우 예민했던 내 여덟 살의 나를 찾았으면 된 것이다.

“아주 오래된 노래더라구… ‘고향 생각’이었어.”

기고자 소개

김성국
대전서일여자고등학교 교사
1990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영재(英才)와 달팽이집’ 당선
대전소설가 협회 ․ 대일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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