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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지도연구원

대전청소년

2019년 겨울호
청소년이 힘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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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뚤어질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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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시간
손훈영
손훈영

삐뚤어질 테다

멀리 지리산 준봉들이 마주 보이는 둔철산 아래 자그마한 학교가 있다. 학교의 자유정신을 나타내주듯 제 각각 모양의 건물들이 옹기종기 자리 잡은 학교, 딸아이가 다녔던 대안학교다. 졸업한 지 한참이 지났지만 생각하면 애틋해지는 곳이 바로 이 학교다. 학기를 마무리하는 축제가 열리는 토요일, 그 근처를 지나다 들르기로 한다. 운동장에 펼쳐져 있던 시끌벅적한 난전이 거두어지고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공연이 시작된다. 풍자극 『독한 녀석들』이 압권이다. 3학년 여섯 명의 남학생이 주축이 되어 대사가 랩송으로 이어지는 연극인데 한마디로 교사들을 까는 내용이다. 졸업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녀석들’의 교사와 학교에 대한 아쉬움과 애정이 야유와 풍자라는 형식을 통하여 표현되고 있다.
딸아이가 갓 백일이 지났을 무렵, 아이를 업고 어딘가로 가던 길이었다. 버스 안이었다. 지역에서 명문으로 이름 난 한 고등학교 앞 정거장에 잠시 버스가 정차 중이었다. 늦은 밤이었는데 학교 교문 앞에 승용차 들이 뒤엉켜 아수라장이었다. 무슨 일인가 의아해하다 한참만에야 아이들을 데리러 온 학부모들의 차량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이가 어려 교육 전반에 대한 아무런 인식이 없었을 때였는데도 그 차량들이 무엇이라는 것을 안 바로 그 순간 ‘저 대열에는 끼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뇌리를 꿰뚫고 지나갔다. 그토록이나 늦은 밤 시간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아직도 학교에 남아 공부를 하고 부모마저 밤 시간을 저당 잡힌 채 피곤에 전 아이들을 실어 날라야 한다는 것은 어떤 논리나 이론 이전에 도저히 납득하고 싶지 않은 삶의 방식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도권 교육시스템에 첫 반기를 든 순간이었다. 대구의 교육 특구라는, 이른바 치맛바람이 그 어느 곳보다 극성스러웠던 동네에 살면서 ‘그 대열’에 끼지 않고 꿋꿋이 아이를 학교에 보냈다. 딸아이는 우리 동네에서 학원에 다니지 않는 유일한 아이였다. 나로서는 아이를 입시학원에 보낸다는 것은 곧 내 삶의 패배를 의미했다. 생각대로 살지 못하는 삶은 그 삶이 아무리 남 보기에 그럴싸해도 그것은 패배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일상 속에 은밀히 구축해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십대의 삶은 학교가 중심이라는 사회의 암묵적 동의를 완전 거부할 수는 없었지만 내 아이만은 아름다운 십대를 학교와 학원에 다 바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엄마 덕분에 아이는 자유방임적 분위기 속에서 학원이라는 이중고를 가볍게 털어버리고 나름 자유로운 시간을 만끽할 수 있었다. 만화도 보고 나와 함께 마음껏 영화도 보러 다녔다.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는 과감하게 아이를 결석시키고 부산으로 내달았다. 이런 일탈들이 어느 정도 가능했던 것은 적어도 초등학교 중학교에서는 정규수업만 마치면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고등학교는 시스템 자체가 완전히 대학입시 위주이기 때문에 0교시 수업을 시작으로 야간자율학습까지 하루 종일 학교에서 살아야 할 형편이었다. 뚜렷한 병은 없어도 태생적 허약체질이라 내 눈에는 늘 애처롭기만 한 딸아이가 그런 강행군을 견뎌낼 것 같지 않아 겁부터 났다.
무엇보다 모든 것이 성적으로 귀결되고 많은 것들을 대입이라는 관문을 위해 유보시키는 학교 방침을 향한 회의와 반발과는 결정적으로 타협이 되지 않았다. ‘이건 아닌데’ 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학교라는 교육 서비스를 통하여 미래 생활의 발판을 다지는 것도 학교를 가는 이유 중에 하나지만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한 개인의 평생을 관통해갈 ‘마음의 힘’을 기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전쟁’이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경쟁구조 속에서 오로지 일류대학 줄서기만을 생각해야 하는 제도권 고등학교의 현실을 생각할 때 내가 가진 학교 철학은 참으로 시대착오적이고 사치스럽기까지 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쩌랴, 어느 시대든 그 시대 의 이단아들은 있어왔고, 그 발칙한 이탈자들의 인생 최대의 미덕은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 하는 대로 사는 것’이었음을.
허나 생각과 행동의 일치를 일상에서 쌓아가는 일이 언제나 용이했던 것은 아니었다. 아이의 진학문제가 두 개의 마음이 충돌하는 격렬한 결전장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지극히 소시민적으로 안온하게 살아 온 관성과 훌쩍 경계선을 뛰어넘고 싶은 아웃사이더적 욕망이 매일 힘겨루기를 했다. 생각과 현실 사이로 번갈아 찾아드는 갈등과 불안을 얼토당토않은 작금의 교육 현실을 거품 물고 질타하는 거로 해소를 했다. 그즈음 ‘사랑과 자발성의 교육’이라는 철학을 가진 어느 학교에 대한 책 한 권이 손에 들어오게 된 것은 우연이었을까.
책을 읽고 아이는 열렬해졌다. 학교라면 늘 시들하던 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다가들었다. 이런 학교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구원이라며 한사코 산청의 대안학교 진학을 고집했다. 여러 날의 숙고 끝에 중3 여름방학이 끝나가고 있던 어느 날 우리 세 식구는 함께 학교를 방문했다. 운동장 나무 그늘 밑에 삼삼오오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나무를 중심으로 자유롭게 앉고 기대어 무언가를 진지하게 토론 중이던 학생들의 여유 있는 모습들이 인상적이었다. 한여름답게 짧은 반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그 아이들이 입고 있던 티셔츠에 글자들이 박혀있었다.
‘삐뚤어질 테다’ 뜻밖의 글이 찡긋 윙크를 던지며 웃고 있었다. 금을 넘을 용기가 부족해 뭔가 망설이고 있던 우리들을 향해 ‘삐뚤어질 테다’는 산뜻하게 한 방의 야유를 날리고 있었다. 그 흰색 티셔츠는 학교 내 동아리의 여름 유니폼이었다. 별로 납득하고 싶지 않은 제도권 학교의 규칙과 원칙을 지키기에 마음이 답답하던 우리에게 그 문구는 너무도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래, 모자쯤 삐뚤게 썼다고 세상이 무너지지는 않아. ‘삐뚤어질 테다’라는 여섯 음절을 본 뒤 그동안의 망설임을 접고 그 학교를 선택했다.
일종의 교육실험장이 될 대안학교를 선택한 뒤 우리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 앞에서 당혹스런 얼굴을 수습해야 할 때가 많았다. 자신의 남친이라며 눈썹 위에 피어싱을 하고 파랗게 물들인 머리를 한 동급생을 소개했을 때, 얼굴이 노래지던 남편에게 ‘예술가 삘’ 운운하며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 말로 안심을 시켜야 할 때도 있었다. 입시 위주의 공부를 거의 시키지 않는 대안학교에서 딸아이는 자신의 기획 아래 무리 없이 대학에 진학했다. 그런 아이를 두고 가장 자주 들은 말은 일반 고등학교에 갔더라면 ‘더 좋은 대학’에 갔을 거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 하더라도 ‘좋은 대학’ 외 많은 것들이 거세된 일반 학교는 가지 않을 것이다. 제도권 학교에서 밤낮없이 공부만 해 일류 대학을 백 프로 보장받을 수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의 길이 아니었다. ‘자발적 이류’인 우리 아이의 재산은 그 학교에서 쌓아온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감수성이고, 지리산 종주에서 얻은 정기와 둔철산 골짜기로 쏟아지던 무수한 별들이 몸 안에 심어준 살아있는 야성이기 때문이다.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별 헤는 맘으로 없는 길 가려 하네~’
딸아이는 눈물을 터뜨렸다. 졸업식 날 교가를 부르며 흘리던 딸의 눈물은 남들과 다른 선택에 대한 내 안심의 근거가 되어 주었다. 교가를 부르며 진심으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감수성이면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안학교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되는 복잡한 심정으로 학교와 아이를 지켜봐야 할 때가 많았지만 딸아이의 눈물은 그동안의 소소한 갈등을 봄눈 녹듯 사라지게 해주었다.
‘사랑하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설레는 마음으로 낯선 길 가려 하네~’
그날의 교가가 아직도 귓전을 두드린다. 풍성한 감수성이 곧 마음의 힘이고 삶의 기쁨은 약동하는 심장에서 우러나온다는 생각은 지금까지 내 삶의 금과옥조였다. 잘 벼려진 뜨거운 감성은 삶의 진실을 더듬을 수 있는 예민한 촉수가 되어줄 것이다. 그 진실이 아픔으로 오든 기쁨으로 오든 기꺼이 그것에 감응할 수 있는 민감한 가슴으로 이 세상을 살아갔으면 하는 것은 우리 부부가 딸에게 가지는 단 하나의 바람이다
손훈영

기고자 소개

손훈영

수필가, 계간 《수필세계》 신인상 등단

한국에세이포럼 회원

대구매일신문,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

수필집 『그 여자의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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