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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지도연구원

대전청소년

2020년 여름호
청소년이 힘들 때
국번없이 1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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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아닌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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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시간
김춘희
김춘희

노래 아닌 노래

언제부턴가 생긴 버릇이 있다. 생각이나 감정을 흩트리고 싶을 때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린다. 형식을 갖춘 노래가 아니라 현재의 심리상태와 어긋나는 가사를 한 소절 정도 만들어 곡을 붙인, 짧고 단순한 반복조의 노래다. 그러니 가사에 어떠한 감정이 실리지 않고 리듬만 있을 뿐이다. 잘 돌아가던 카세트 테이프가 후크에 걸려 한 부분만 계속 반복되듯이 기계적인 소리를 내다가 내가 지금 무슨 노래를 하고 있지 할 때쯤이면 자동적으로 멈춘다. 그러면서 나를 본다. 또 감정에다 탈을 씌웠구나 하다가 이내 동생 생각으로 이어진다.
동생은 장남으로서 아버지의 희망이었다. 아버지는 아침 일찍 일터로 가시다가 학교 탱자 울타리 사이로 새어 나오는 구령 소리에 운동장 조회가 끝날 때까지 귀를 기울이며  한 자리에 선 채로 계시곤 했다. 운동장으로 울려 퍼지는 동생의 우렁찬 목소리가 고단했던 아버지의 삶에 동력이 되었다. 전교 회장이었던 동생의 “차렷!”, “열중 쉬어!”, “교장 선생님께 경례!” 힘찬 구령 소리에 저절로 힘이 생긴다고 하셨다.
동생은 중학교를 입학하자마자 서울로 전학을 갔다. 개천에서 용이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기원으로 작은집에 맡겨진 동생은 중학시절을 서울에서 보냈다. 촌놈이라는 놀림에 자연스레 기가 죽은 동생은 그곳 토박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공부만이 살 길이고 부모님께 효도하는 길이라고 학업에 매진했다. 그렇게 서울살이만 할 줄 알았던 동생은 작은아버지의 사업 계획으로 갑자기 작은아버지와 함께 지방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지도에서만 보던 곳으로 따라 내려오게 된 동생은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그곳에서 고등학교 입학을 했다. 낯선 곳에서의 적응이 또 시작된 것이었다.
그 해에 나는 대입 학력고사를 치렀다. 대학을 지원한 후 발표를 기다리는 기간 동안 때마침 방학이기도 해서 동생을 보러 갔다. 동생은 기타를 언제 배웠는지 노래를 부르며 의젓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즐겨 듣는 팝송이라며 테이프에 녹음을 해줘서 동생이 없을 때 듣고 또 들었다. 우리는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오누이 정을 한꺼번에 나누기라도 하듯 정겨운 시간을 보냈다. 훗날에 동생과 보내는 이 시간이  추억이 되어 대중가요보다 팝송을 즐겨 들으며 팝송 마니아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동생과 다정한 시간을 보내던 중, 하루는 작은아버지가 운영하는 공장 마당 구석의 화장실에서 노랫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했더니 동생이었다. 노래를 무슨 화장실에서 부르냐고 했다. 동생은 피식 웃었다. 처음 서울로 갔을 때 엄마가 너무 보고 싶으면 화장실로 가서 노래를 부르면서 울었는데 그게 지금까지 습관처럼 이어져 화장실에만 가면 노래를 부른다고 했다. 파문이 이는 동생의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그때까지 몰랐었다. 서울로 전학 간다기에 마냥 부러웠고, 타지에서 공부하는 동생이 부모님의 특혜를 받는 것 같아 시샘도 났었다. 하지만 그 한 마디에서 양심이 비틀거리며 동생이 한없이 작아 보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창 엄마 품을 맴돌 나이에 모든 것이 어색하고 낯선 타지에서 부모형제가 얼마나 보고 싶고 그리웠을까. 보고픈 마음을  노래로 달랬을 동생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렸다. 슬플 때 감정을 숨기며 거꾸러 즐거운 듯이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참으로 처연한 것이었다. 
모든 것을 숙명처럼 안고 대학 진학을 위해 또 다시 서울로 객지생활을 갔던 동생은 독립하여 자취를 하면서 또 화장실에서 얼마나 많은 노래를 불렀을까 싶다. 그때 모든 것을 홀로 감당했을 동생은  스스로 부딪히며 익힌 지혜와 강인함이 삶의 토대가 되었을 것이라고 위안 삼으니 그나마 내 마음이 좀 수월해진다.     
머나먼 타향에서 보고픔과 그리움을 삭이며 우골탑에서 공부했던 동생은 이제 굴지의 대기업에서 중책을 맡고 있다. 하지만 임원으로서의 무거운 짐을 진 채 복잡한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어딘가 화장실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을지 모를 동생이 짠하게 다가온다. 
동생에 대한 연민이 체화되었을까? 나도 동생처럼 언제부턴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노래 아닌 노래를 부른다. 생각이나 감정을 흩트리기 위해서  심리상태에다 가면假面을 씌우고 생뚱맞은 가사를 지어서 곡을 붙인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세상에 없는  짧은 노래를 반복해 부르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감정을 순화하여 자신과 타협의 시간을 가지는 중이라고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나는 지금 노래 아닌 노래를 붙들고는 내 속에 있는 동생을 보면서 나도 본다
김춘희

기고자 소개

김춘희

수필가

《시와 수필》 신인상 등단

알바트로스 문학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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