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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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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내 인생의 마중물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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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함께
서옥천
서옥천

그것은 내 인생의 마중물이 아니었을까

학년마다 한 개 반만 있는 시골 초등학교에 소문이 파다했다.
20리가 훨씬 넘는 면사무소를 지나 근처 어딘가에 중학교가 들어섰다는 것이다. 영양실조로 교실 바닥에 쓰러지는 날도 여러 번 있었던 나는 중학교가 들어서든 말든 중학교 입학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남의 이야기였다.
6학년이 되자 중학교에 갈 친구들은 그 신설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2회 졸업생이 된다는 등 활기찬 모습들이었다. 진학생을 위하여 만든 2부 수업을 시작할 때는 그 아이들을 부러워하며 1부 수업 끝나기가 무섭게 보자기로 책을 둘둘 말아 허리춤에 붙들어 매고 도망가다시피 집으로 달려왔다.
집에 와서는 삯바느질하고 계신 엄마를 도와 드렸다. 손재봉틀이니 모시, 삼베나 명주, 나일론 같은 얇은 천은 뒤에서 잡아 드려야 했다. 엄마의 섬세하고 야무진 바느질 솜씨는 주변은 물론 이웃 동네까지 소문이 나긴 했지만,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고등학생인 오빠의 뒷바라지도 빠듯할 정도였다. 시골에 살면서도 바늘쌈지만 한 땅 한 조각이 없으니 팍팍한 살림살이는 불 보듯 뻔했다.
그동안 새벽밥 먹고 대전으로 기차 통학을 하거나 하숙을 하던 몇몇 남학생뿐인 마을인데 인근에 중학교가 생기고 춘삼월 신학기가 되고 보니 교복 입고 구불구불 들길을 따라 등하교하는 여학생들도 제법 눈에 들어왔다. 먼발치에서 걸어오는 친구를 보면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듯 재빨리 담벼락 뒤로 숨은 적도 있었다. 가난이 죄는 아니지만, 중학교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부끄럽고 속상했다.
무슨 공부를 어떻게 하고, 전공은 무엇을 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의 목표 그런 것은 알지도 못했다. 아니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공부만 잘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 고생하시는 엄마께 효도는 저절로 하게 되는 줄 알았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오로지 중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냥 교복을 입고 중학생이 되어 수학, 영어도 배우며 마음껏 공부 하고 싶었다. 너무나 뻔한 집안 사정을 알기에 중학교에 보내달라는 말을 꺼낼 수조차 없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다. 엄마가 속상해하실까 봐 눈물이 비치면 얼른 손등으로 훔쳤다. 어디 굴뚝 뒤에 숨어서라도 실컷 울고 싶었다. 몸에 멍이 든 듯, 상처가 난 듯 여기저기 아팠다. 슬픔에 젖어 들어 시름시름 앓아누웠다. 작은 몸뚱이가 조금씩 마르기 시작했다. 정이 많은 엄마는 눈치를 채신 듯 측은하다며 혀를 끌끌 차셨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띠동갑인 오빠는 군에서 제대하자마자 새벽밥을 먹고 직장에 다녔다. 퇴근 후엔 곧장 집으로 와 등잔불 아래서 야간대학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어느 날 엄마와 오빠가 상의한 듯 중학교에 보내줄 터이니 알아보라는 말씀에 너무나 좋아서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다음날, 파란 하늘을 머리에 이고 20여 리를 뛰다시피 면 소재지에 있는 우체국에 들어갔다. 중학교 가는 길을 여쭈니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뿌연 먼지가 날리는 신작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처음 가보는 길이다. 꽃샘바람이 목덜미로 소매 끝으로 마구 파고들었다. 얼마를 걸어 모퉁이를 돌아서니 야트막한 동산에 3층으로 된 학교가 보였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쉬는 시간인지 운동장엔 학생들이 왁자지껄 놀고 있었다.
정문 기둥 뒤에 숨어 수업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종소리에 학생들이 교실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뒤 복도를 따라 서무과로 들어갔다. 초등생 같은 꼬마의 등장에 직원분이 무슨 일로 왔느냐 물었다.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망설이다가 밑도 끝도 없이 “여기 중학교에 다니고 싶어 왔다.”고 했다. 그분은 놀란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다시 물었다. 비슷한 대답을 또 했다. 그러자 “지금은 입학 절차가 모두 끝나 안 된다.”고 했다. 그래도 입학을 허락해 달라며 졸랐다.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우리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니, 충남교육청에 가서 알아보라” 했다. 찾아가는 길을 설명 듣고 집으로 돌아왔다. 퇴근한 오빠와 엄마에게 낮의 상황을 말씀드리니 대전에 다녀올 차비를 마련해 주셨다. ‘내일 잘 찾아가야 할 텐데…, 교육청에 가면 입학할 수 있겠지. 중학생이 된다니, 아니 이제 중학생이 될 텐데 이런저런 생각에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부지런히 준비하고 버스를 갈아타고 물어물어 교육청에 도착했다. 수위아저씨께 말씀을 드리니 고개를 갸우뚱하며 나를 앞세우고 사무실에 들어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으니 한번 들어보라”는 아저씨의 말에 모든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절박한 나의 마음을 그대로 말씀드렸다. 그러나 아무도 답을 하지 않았다. 그때 어느 분이 일어나 다가오시더니 나를 윗분 앞으로 데리고 가서 이야기 했다. 그분은 설명을 듣고는 집에 가서 기다리라고 했다. 그 짧은 한마디도 고마워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하고 집으로 왔다.
전화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서 연락이 오는 건지도 모르고 막연한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하루가 일 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너무나 답답하여 나흘쯤 지난 뒤 중학교에 갔다. 직원분이 기억하시곤 먼저 아는 체 해주셨다. 그리고 여기보다는 교육청에 알아보는 것이 더 빠를 것이라는 말씀을 덧붙여 주셨다.
다음날 교육청을 찾아가 수위 아저씨께 인사를 하고 곧장 사무실로 들어갔다. 지난번 안면이 있는 분께 다가가 입학 허가 나왔느냐 여쭈었다. 그러자 이름과 주소를 메모하시곤 연락하겠노라 했다. 하지만 집에서 무작정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어 또 중학교로 향했다. 헛짓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오기도 생겼다.
기약 없는 기다림과 간절함을 가슴에 안고 학교와 교육청 오가기를 되풀이하며 20여 일이 지난 어느 날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교육청 직원분이 반갑게 맞아주시면서 입학이 허락되었다는 것이다. 드디어 나도 중학생이 되는 것이었다. 아픔의 눈물인지 기쁨의 눈물인지 소리 없는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감사하다고 꾸벅꾸벅 연거푸 인사를 드렸다. “기특하다.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돼라”는 덕담까지 해 주셨다.
마음껏 울고 싶어도 울 수 없었던 날들이 참 길었다. 눈물샘이 터진 것 같았다. 가슴도 벅차올라 터질 것 같았다. 하늘을 나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꽃샘추위도 어디로 갔는지 가끔 불어오는 훈풍이 더없이 부드러웠다. 파란 하늘엔 흰 구름이 두둥실, 봄꽃이 예쁘게 핀 길을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힘차게 걸었다.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찾고 만드는 것이 희망이라 했던가? 그때 만약 중학교 진학을 하지 않았다면, 아니 입학이 끝났다고 시도하지 않았더라면 고등학교, 대학은 물론 직장까지 그리고 어쩌면 지금의 나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꿈도 꿔서는 안 될 만큼 어려웠던 나의 중학교 진학은 내 인생에 마중물과도 같은 것은 아니었을지
희망은 품는 사람에게만 존재한다는 말은 아직도 나에겐 변함없는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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