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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지도연구원

대전청소년

2021년 여름호
청소년이 힘들 때
국번없이 1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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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올까요

본문

상담실에서
이화선
이화선

봄이 올까요

감정도 곧 반품할 물건처럼 애써 모르는 척 쓱- 치워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예민하고 감정의 진폭이 유독 크다. 그래서 흘러넘치는 감정을 어디엔가 쏟아낼 그릇이 필요하다. 나에겐 그 그릇이 ‘시(時)’였다. 시를 읽고 쓰며 힘든 감정을 그나마 극복할 수 있었다. 시를 좋아하다보니 우연히 시 전시회를 기획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신나게 전시회 프로젝트에 임하고 있던 와중에 그곳에서 같이 프로젝트를 꾸려나가던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고 회복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왔었다. 차가운 물이 쏟아지는 수돗가에서 손을 계속 대본 적이 있는가? 한없이 차가운데도 불구하고 일시적으로 뜨겁게 느껴진다. 그처럼 나를 차갑게 만드는 상황 속에서 나는 뜨거워 몸부림쳤었다. 그때 나를 구제해준 사람은 지금의 상담 선생님이었다. 선생님과 처음 만난 것은 랜선 너머에서였다.
나의 힘든 마음을 친구들에게 말하기에는 짐이 될 것 같았고, 가족에게 말해도 상황을 해결할 수 없는 진부한 대답뿐이었다. 애써 떨쳐버리기에는 너무 큰 상처와 충격으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이 감정을 어떻게 추슬러야 할지 누군가에게 조언이라고 구해야 할 것 같은데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도무지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 무작정 1388에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전화 연결음을 듣고 처음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었다. 찬찬히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선생님께 내 마음을 하나하나씩 풀어나갔다. 선생님은 내가 처한 상황에 관한 맥락을 정확히 짚어주셨다. “현재 느끼는 감정이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 이름 붙여볼래요?”, “감정에 1부터 10까지의 숫자 중 어느 정도의 수치인지 점수를 매겨보세요.”라고 하시며 감정과 나를 분리하여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셨다. 그리고 약 15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나눈 이야기에서 예전부터 갖고 있던 깊이 숨겨진 문제를 찾아내주셨다.
단순한 인스턴트식의 위안이 아닌 상황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시선을 갖게 해주는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도, 이런 경험도 모두 처음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선생님은 나에게 손을 내밀어 주셨다. “약 3개월간 무료로 상담을 할 수 있는데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더 나아질 거예요.” 선생님은 대전 청소년 상담센터 사이트에 들어가서 ‘위기개입팀 팀장님’에게 상담을 받고 싶다고 비고란에 적어두라고 해주셨다. 그리고선 내 이름을 물으셨다. 나는 기꺼이 내 이름을 알려드렸다. 그러고선 이름을 알려주어서 고맙다고 하셨다. 그렇게 나는 선생님이 내밀어준 손을 잡았다. 전화 너머의 목소리에서도 따스함이 전해진 날이었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난 후에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 선생님과 첫 만남
집에서 1시간 반 정도의 거리에 있는 청소년 상담 센터에 도착했다. 목소리만 알고 있는 선생님은 어떤 모습일지, 나의 첫인상을 어떻게 보실지 기대되고 궁금했다. 대기실에서 선생님을 기다리던 중에 선생님께서 내 이름을 불러주셨다. 키 크고 쌍꺼풀이 큰 모습이었다. 선생님은 자기소개 이전에 선생님은 자신의 이름을 맞춰보라고 하셨다. 그때 절찬리에 방영 중이었던 드라마 ‘펜트 하우스’에 나오는 여배우의 이름과 같다고 하셨다. “어...제가 펜트 하우스를 안 봐서요.” 그러자 선생님은 이름의 초성을 알려주셨다. ‘ㅇㅈ’에서 나는 선생님께서 연세가 있으신 줄 알고 조금 올드한 이름을 불러댔다. ‘연자, 영자’ 등등... 그 이름을 외칠 때마다 당황하는 선생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리고 드디어 맞추게 되었다. ‘유진’이 선생님의 성함이었다. 그렇다. 선생님은 이름 하나를 알려주는데도 기억에 남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준비해오셨다. 그러고 나서 선생님은 나에게 상담하면서 세 가지를 함께 약속하자고 하셨다. ‘첫째, 솔직할 것. 둘째, 상담을 하면서 느껴지는 생각과 감정을 받아들일 것. 셋째, 상담의 끝까지 마무리할 것.’ 그래야 상담을 하며 치유의 길로 갈 수 있을 테니. 그리고 매주 선생님이 내주는 글쓰기 미션을 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셨다. 무조건 나의 대답은 ‘예스’였다. 첫 만남을 위해 정성을 쏟아 오신 게 보였기에 못할 이유가 없었다. 다음 시간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은 한 권의 노트, 그리고 그 노트의 이름은 ‘마음노트’였다. 그리고 내가 기획했던 전시회의 굿즈들을 선생님께 선물로 드렸다. 선생님은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그렇게 상담이 시작되었다.
# 답은 네 안에 있어
상담을 할수록 ‘마음노트’에 나의 마음이 담긴 글의 파편으로 가득 채워나갔다. 선생님은 상담을 하며 마음을 털어놓고 미션을 통해서 나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힘을 기르도록 해주셨다. 그리고 나를 하나하나 헤아려주시며 자책했던 순간에는 따스하게 감싸주셨고 감정이 길을 잃었을 땐 객관적인 시각을 기를 수 있도록 질문을 던져주셨다. 가장 기억에 남는 미션은, 과거의 한순간에 묶여있어서 늘 괴로워하는 나를 위해서 그때의 부정적인 감정을 긍정적인 감정으로 승화하는 시를 써오라고 하셨다. 선생님께서 내가 써온 시를 읽어달라고 하셔서 시를 낭송했던 기억이 있다. 아래가 그때 쓴 시이다.
아픈 마음
쫓아가니
거기에
시가 놓여 있어
시를 친구삼아
날갯짓 연습하니
어느새 내
날갯짓이 시가 되었어
마음자리를 못 찾아 늘 헤매고 타인에게서 답을 구하려던 나에게 선생님은 “답은 네 안에 있다.”라고 말씀하시며 나는 ‘글쓰기’라는 도구를 쥐고 있다고 일깨워주셨다. 선생님께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진심’이었다. 인생은 할 걸음 한 걸음 내 두발로 내디뎌가는 것임을 알려 주셨고 삶의 의미를 부여해주셨다. 겨울 속에 살던 나에게 조금만 더 기다리면 봄이 온다고 말해주는 것과 같았다. 아직 더 치유할 감정들이 남아있는데 벌써 3개월이 지나버렸다. 다행히도 선생님은 재상담을 진행하는 게 어떠하겠냐고 여쭤보셨고, 또 나는 당연히 ‘예스’를 외쳤다.
종은 누가 울리지 않으면 종이 아니라 했다. 내 삶 속에 들어와 나라는 종을 울려준 사람들이 있다. 내 삶 속에서 한 편의 시가 된 사람들이다. 그들 덕분에 오늘도 펜을 쥐고 이렇게 글을 쓴다. 그들이 나를 세차게 울려주어서, 지금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어쩌면, 내 시를 완성시켜준 것은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누군가의 아픔을 알아보고 손 내미는 행위 자체가 시(詩)가 아닐런지. 다음에 이어질 상담을 위해서 나는 조금 더 내 마음에 귀 기울이기로 한다. 선생님과 나 사이에 어떤 시가 쓰여질지 고대하고 기다리면서. 조심스럽게 삶이 다가오는 소리를 듣는다. 봄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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