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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지도연구원

대전청소년

2019년 가을호
청소년이 힘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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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자에게 필요한 겸손한 마음

본문

상담실에서
민영훈
대전청소년상담복지센터
교육연수팀장
민영훈

상담자에게 필요한 겸손한 마음

얼마 전의 일이다. 급하게 상담을 받고 싶다는 어느 어머니의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시간을 약속하고 그 분을 기다리면서 어떻게 반응을 해줘야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마침내 상담실에 딸아이와 함께 도착을 했는데, 몹시 화가 난 모습으로 보였다.
상담실로 자리를 마련하고 앉아 있는데,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자신을 몹시 무시하고, 말도 함부로 한다고 흥분된 어조로 말씀을 하신다.
천천히 자초지종을 물으니, 뭔가 엄마로서 이야기를 하면 말대꾸를 하고 존경의 태도는 고사하고 반말에 욕을 섞어서 하는데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이러다가 큰일이 나겠다는 생각에 상담실에 왔다고 한다.
참 답답한 마음이었다. 딸아이가 말을 하는 방식이 너무 거칠고, 도대체 가정에서 어머니의 위치가 어느 정도이고, 과연 남편은 이런 상황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왔었는지 궁금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남편이 말을 할 때마다 자신을 무시하는 듯하고, 딸아이하고 말다툼을 하고 있으면 남편이 나를 공감해주는 것이 아니고, 나와 딸이 하는 행동 모두가 똑같다고 한다는 것이다. 한참 얘기를 듣고 난 후에 화를 가라앉힐 수 있도록 해서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런데 이튿날 다시 전화가 왔다. 이번에도 아이 때문에 화가 나서 도저히 집에 있을 수 없다고 한다. 다시 상담실로 오시라고 말씀을 드린 후, 기다리고 있는데 얼마 안 있어 바로 도착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니, 아이가 친구들하고 스케이트를 타러 간다고 해서 간식비용까지 챙겨서 보냈는데, 친구들하고 놀고 나서 간식을 먹으려고 보았더니 돈이 없어졌다고 전화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간식도 못 먹고 울면서 전화를 하는 딸이 안쓰러워 빨리 집으로 오라고 해서 이것저것 간식을 챙겨주는데, 갑자기 왜 자기 물건을 못 챙기고 잃어버리는지 짜증이 나서 딸에게 ‘그러게 돈을 잘 챙겨야지 왜 함부로 두어서 잃어 버리냐!!!’고 얘기를 했더니 딸이 뭐 자기가 돈을 잃어버리고 싶어서 잃어 버리냐!!!는 등 말을 막하더라는 것이다. 또 다시 딸과 언쟁을 하면서 ‘간식도 먹지 마.’ 라고 하고, 집에서 나가라고 쫓아낸 다음에 너무 화가 나서 다시 상담실에 전화를 하고 온 것이다.

얘기를 듣고 있는데, 갑자기 상담자인 나에게 불편한 감정이 올라왔다. 흔히 역전이(Counter-Transference)라고 말하는 정서가 올라온 것이다. 그래서 그 어머니에게 딸아이가 화가 나서 전화를 했을 때 딸아이가 바랐던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혹시 친구들은 간식으로 맛있는 것을 먹고 있는데, 자신은 돈도 잃어버렸고, 놀다가 배도 고픈데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그래서 엄마한테 전화해서 아프고 힘든 마음을 위로 받고 싶어서 전화를 하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집에 왔으면 아이에게 맛있는 간식을 해주고 힘들었던 마음을 위로해주면 좋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어머니는 어떻게 해주셨죠? 아이의 힘든 마음을 위로해주지는 않고, 왜 돈을 잃어버렸냐. 왜 돈을 함부로 두어서 잃어버리느냐는 등 아이의 정서를 위로하기 보다는 비난을 해서 아이의 마음을 더 힘들게 하신 것 아니냐는 등의 교육적인 얘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아이를 키울 때 아이의 정서에 공감해주면서 돌봐 줄 것을 당부해주고 언제든지 우리 센터가 도울 일이 있으면 연락을 주시라고 말씀을 드리고 돌려보냈다.

사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 분에게 매우 적절한 개입을 해주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분이 딸하고 자꾸 갈등을 하고 있는 것이 자녀의 마음에 공감을 해주지 못하는 것이라고 여겼고, 그래서 딸아이의 마음을 잘 헤아리면 좀 더 좋은 관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뭔가 확신에 차있던 나는 슈퍼바이저에게 사례지도를 받으면서 나의 개입이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슈퍼바이저는 나에게 그 어머니가 왜 상담자를 찾아왔겠냐는 것이다. 먼저 그 어머니가 나를 찾아온 것은 자신이 딸아이 때문에 힘이 들었고, 그래서 뭔가 자신의 힘든 상황을 이해받고 나아가 공감을 얻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텐데, 상담자는 힘든 자신을 공감해주기는커녕 오히려 이 모든 상황이 바로 자신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며 원치도 않은 교육으로 직면을 시킨 것은 아니냐고 물었다. 그리고 그 어머니가 나에게 자신이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는지 가르침을 달라고 하지 않았는데, 상담자가 자의적 판단으로 그 분에게 부모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친 것이다.

순간 나는 ‘내가 그 분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라는 생각에 휩싸였다. 공감 받고 싶었을 그 분에게 ‘당신은 부모로서 자녀를 그렇게 돌보면 안 되죠.’ 라고 나무랐던 것이다.
직면기법은 양날의 검이다. 상담자 입장에서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철저하게 내담자 입장에서 바라봐야한다. 받아들이는 사람이 충분히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도움이 된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받아들이는 사람이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고, 수용하기 어렵다. 그래서 조심해야한다.

현대정신분석에서는 심리치료를 누구의 관점으로 봐야 옳은지 알려준다. 그것은 내담자 중심의 상담(Patient Oriented Therapy)과 상담자 중심의 상담(Therapist Oriented Therapy)의 차이에 대한 것이다.
상담자는 철저하게 내담자에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러려면 상담은 온전히 내담자 중심의 상담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상담자가 상담자 중심의 상담을 진행할 때 내담자는 상처를 입을 수 있다. 사실에 입각한 잘잘못에 대한 판단은 중요하지 않다. 그러한 판단은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상담자는 나를 찾아 온 사람이 지금 정서적으로 어떤 어려움에 처해있는지를 봐야 한다.
이 사례에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상담실에 찾아오는 많은 분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건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려주는 것이 아니다. 한 분 한 분 찾아오는 것은 자신이 지금 너무 마음이 속상하고, 힘들어서 알아달라는 것이다.

세상에는 우리 상담자보다 훨씬 지식이 뛰어난 분들이 많다. 그들을 우리가 교육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그들과 만날 수 있는 이유는 어쩌면 그들이 겪고 있는 정서적 어려움에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담자를 만나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내담자들이 상담자에게 건네는 도움이 되었다는 말속에서도 일에 대한 자신감을 얻는다. 상담자의 인격이 내담자를 돕는다는 얘기가 있다. 우리가 하는 말은 그 분들도 다 안다. 그것이 마음에서 나온 것인지 아닌지. 문제는 우리가 얼마나 진정성 있게 그 분들의 말을 가슴으로 받아 들이냐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하루하루 자신을 알아가며 겸손하려고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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